산골일기:처남 늠(3부)

아무튼 그 돈 10만 원 내 용돈 쓰자고 부탁한 것도 아니건만 21만원 국가에서 나오니 그것으로 충분할 것이라는 놈의 주둥이를 콱 쥐어박지 못한 게 한이 된 그날이다. 놈이 돌아가고 정신을 차려보니 억울하고 분통 터지고 온몸을 주체 할 수가 없다. 결국 깍두기를 담그며 마음을 달랬지만 그 후에도 울화가 치밀고 견딜 수가 없다.

저녁때가 되어 막걸리 한 잔 걸치고(사실 항상 저녁 대용이다)아래채 장모님에게로 내려갔다. 그런데 좌정도하기 전 장모님이 먼저“작은 애더러 달달이 10만원 씩 달라고 했다며…??? 내가 무슨 돈이 필요하다고…. 정 필요하면 전화를 하라고 하던데. 10만 원이고 얼마고필요한 만큼 보내 주겠다던데…”그 말씀에 노인네가 불쌍한 게 아니라 얄미워진다. 서울 올라가 놈에게 돈 받아야 한다고 할 때는 언제고….그리고 여태 21만원으로 살아오신 걸로 아시는 모양이다. 그렇다고 매달 얼마씩 장모님을 위해 생활비를 썼다고 생색 낼 수도 없고. 답답한 마음이지만 그쯤에서 끝내고 나오려는데“꼭 돈이 필요하면 내 돈1500만 원에서 좀 쓰라고 하던데…”그 말씀에 또 다스렸던 분노가 폭발하며 꼭지가 돌아 버린다.

장모님이 이곳에 오시게 된 동기가 여럿 있지만 그1500만 원도 이유 중 하나였다. 그 돈은 사글세 보증금으로 우리부부가 드린 것이다. 그런데 그 돈이 탐난 큰 아들놈이 지가 모신다고 문경으로 모셔갔고 작은 아들놈은 그 돈과는 무관하니 큰아들에게 그 돈 가져도 좋으니 자신에게 암적 존재인 엄마만 떨어져 나가면 될 것이라고 생각하고 그 돈이 제 돈이라고 했다가 내게 ‘개xx’라는 욕을 얻어 처먹고 사과까지 한 돈인데, 그 돈이 마치 제 돈 인양 우선 그 돈에서 쓰라고 했다니 내 꼭지가 도는 것도 무리는 아니다.

그렇다고 노인네 앞에서 길길이 뛸 수 없고 딱 한마디 했다“어머니! 이 달 안으로 방 비우십시오. 제가 더는 어머니와 이곳에서 생활 할 수가 없습니다.”아주 단호하게 그리고 장모님 알아들을 수 있을 정도의 톤과 데시빌로 말씀을 드리고 올라왔다.

10여 분이 지났을까? 잠긴 현관문을 부수듯 흔드는 소리가 들린다. 100% 장모님이다. 그러나 문을 열지 않았다. 그래도 계속…현관문 부서질 게 두려워 어쩔 수 없이 열어드리자 거실로 들어오신다. 그리고“사우가 이해 혀! 사우가 이해 혀! 생각이 짧아서 그러니께 그저 사우가 이해 혀!”같은 말씀을 수차례 하신다. 듣다듣다“왜? 저만 이해해야합니까? 제가 처갓집에 무슨 죄라도 저질렀습니까? 저 처갓집에 할 만큼 했습니다. 더는 이런 식으로 못 삽니다.”속사포로 쏘아 댔다.

작은처남, 70년대 중반 작은처남은 군 제대를 하고 오갈 데가 없었다. 내가 다니던 회사에 수출포장 반에 자리를 만들어 취업을 시키고 나름 조장에서 반장으로 승급하는데 힘도 좀 써 주었고 그 사이 한 아가씨와 눈이 맞아 결혼도 했고 그 아가씨가 지금의 처남댁이다. 따지고 보면 이런 소소한 것까지 내 은덕을 입었음이 아니던가? 그런데 돈10만 원을 가지고(나도 별 걸 다 가지고 생색을 내지만)….이런! 개xx!!!!

그렇게 장모님과 결론도 못 내린 대화를 하고 또 얼마가 지났을까? 전화가 운다. 보아하니 작은처남이다. 다짜고짜“생각을 해 보니 내가 생각이 짧았습니다. 이해하세요! 그리고10….”만원 소리가 나오기 바로 전“이런10팔! 뭐 10만 원씩 보내겠다고? 야! 이 개 자 식(애꿎은 큰처남까지…)들아! 그 돈이 나 먹고 나 살자고 보태라고 한 거냐? 니들 형제들이 서로 니들 엄마 못 모신다고 니미락 내미락 하기에 보기 안타까워 모시고 온 거지 그리고 모시고 왔으면 내가 10만 원 얘기하기 전 니늠들이 자발 적으로 보태야 하는 게 순서고 도리 아니냐? 설령 그 게 아니더라도 내가 무슨 죄가 있어 니들도 못 모시는 엄마를 모시면 수고비로 생각해도 괜찮을 것이다. 야! 이 개 자 식들아! 이제와 100만 원을 준다고 얼씨구나 하고 받겠니? 足같은 놈들!!!”역시 놈이 듣거나 말거나 속사로 쏘아 붙이고 일방적으로 전화를 끊어 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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