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골일기: 대동계 날

언젠가 소개 했지만 우리 면내 전체 부락 수는 28개 부락으로 이루어 졌다. 그 28개의 부락 전체가 특별한 사유가 없다면 매년 12월20일이면 각 마을별로 대동계를 개최하고 마을의 대소사를 마감하며 10여 일 후부터 시작되는 새로운 한 해를 위한 설계도 하는 것이다.

이장이 나누어 주는 마을 동정(洞政?)유인물엔 우리 마을의 총 가구 수는 72가구로 명시 되어 있다. 처음 이곳에 발을 들여 놓았을 때 50여 가구라고 했으니 그동안 대충 스무 가구가 불어난 것이다. 아무리 귀촌 또는 귀농인구가 늘어나는 게 대세라지만 우리 마을 만큼 신장률이 높은 곳은 아마 전국적으로도 그 사례가 없을 것 같다. 물론 어떤 지역에 한꺼번에 공동주택이 들어선다거나 어떤 재해를 입고 갑자기 임시거처를 만드는 경우는 제외하고 말이다.

아무튼 그렇게 시간 반 정도 대동계를 마치고 마감과 시작을 위한 마을잔치가 벌어졌다. 부녀회에서 정성껏 마련한 음식(비록 산골이지만 금년엔 뷔페식으로…)과 주안상이 마련되고 술이 몇 순배 돌았을까? 내 앞에 앉아서 소주잔을 홀짝이든 문철(79세)이 형님이 내게“경수가 집이 팔렸다던데요.”하는 것이었다.

좀은 놀라운 소식이다. 그는 내게 땅을 팔고 내 집과는 조금 아래쪽의 언덕에 새 집을 짓고 살고 있는 인물이다. 그가 이곳에 이주한 것은 벌써 15년이 되었다는 것이다. 그 정도의 세월이면 단순히 이주라는 표현 보다는 정착이라고 봐야 할 것이다. 그런 그가 수년 전부터 집(새롭게 지은..)을 팔고 이곳을 뜬다는 소문이 자자했으나 매매가 쉽게 이루어지지 않다가 갑자기 팔린 모양이다.

나 보다는 열 살 아래다. 내가 그의 땅을 매입할 때 크게 가격을 깎거나 뜸을 들이지 않고 그가 원하는 가격(사실 내가 마음에 드는 물건이면 무엇이든 흥정을 오래 하지 않는다.)을 그대로 주고 샀기에 나를 두고 화끈 하다며 ‘형님’으로 호칭 하겠다하여 호형호제하며 지내는 사이였고, 그래서 그런지 (내)개인적으로 인간성이나 인사성이 나쁜 사람은 아니었다. 다만 버릇이랄까 습관이랄까? 술이 몇 잔 들어가면 말끝마다‘씨팔’이라는 육두문자가 접속사처럼 붙어 다니는…그렇다고 크게 주사를 부리는 사람은 아니었지만 마을 사람들로부터 왕따를 당하여 마을의 모임에 나타나지 않는, 어쩌면 왕따를 스스로 자초한 인물인 것이다.

남매를 두었는데 머리가 좋았는지 딸은 치과의사로 또 그 사위는 변호사로 아들 역시 서울하고도 S대를 나와 현재 모지방의 공중보건의로 근무하고 있는, 이를테면 다복한 인물이다. 그런 그가 이 마을을 뜬다니 나로선 아쉽다는 것 보다는 좀 뜨악한 그런 기분이다.

문철 형님의 뒷얘기를 종합해 보면 아들딸이 모두 성공해서 산골생활이 싫어서는 아닌 모양이다. 왜냐하면 집과 땅을 판 돈으로 불과 십 수km떨어진 관내의 읍 소재지에 새로운 터전을 마련한다고 하니 아마도 우리 마을과는 더 이상의 정도 인연도 맺고 싶지 않은 것인가 보다.

마을잔치를 파하고 먼저 집으로 돌아오며 나 스스로를 평가해 본다. 비록 마을의 터줏대감은 아니지만 주류의 반열에 오른 것은 장담할 수 있다. “형님들!! 제발 국유지나 시유지 나무 남벌 하지 마십시오! 형님들!! 제발 폐비닐 태우지 좀 마시오!! 등등..”마을회의 때 건의라는 이름으로 농반 진반으로 얘기하면 고깝게 받아들이는 게 아니라 그게 통할 수 있으니 주류라 해도 잘못된 것은 아닐 것이다. 즉, 말 빨이 통하니….

내가 이 마을로 이주한 햇수가 벌써 7년짼가. 그 시간동안 마을 주민들과 화합하려고 노력을 많이 한 편이다. 나 보다 한두 살이라도 많으면 무조건 형님! 형수님! 먼저 머리를 숙여 인사를 했고, 이장 선거에 출마 할 것도 아니며 마을의 대소사에 빠짐없이 참석했고, 무슨 행사가 있다면 얼마라도 찬조를 하며 보다 가까워지려고 노력을 한 결과 이제는 그런 행사가 있을 시 내가 나타나지 않으면 마을 형님들과 형수님들이 안부를 물어 올 정도이니 이만하면 귀촌 성공사례가 아닐까?

사람들은 귀농이나 귀촌의 두려움(?)으로 가장 먼저 꼽는 것은 ‘터줏대감들의 텃세’를 얘기 한다. 얼마나 어리석은 생각인가. 행하기도 전에 부딪혀 보기도 전에 이미 한 수 접고 겁부터 먹은 것이다. 산골도 사람 사는 세상이고 그들이 도깨비나 지옥의 야차가 아닌데 무엇이 두려운가? 한마디로 어쭙잖은 자존심과 오만함이 아니라면 나를 숙이고 먼저 그들에게 다가 갈 수는 없을까? 마음먹기 따라 얼마나 간단한 것인가. 이런 정도도 못하는 인간이라면 어떤 것들이 가능할까?

새누리가 그예 분당 사태까지 가는 모양이다. 왕따를 시켰는지 스스로 자초했는지 모르지만 갈라서는 모양이다. 문득 그런 생각이 든다. 주류, 비주류, 친박, 비박, 왕따 등등…. 친박이라며 터줏대감 노릇을 하고 왕따를 시키지는 않았는지? 아니면 술 몇 잔만 들어가면‘씨팔’이라는 불필요한 접속사를 구사해서 왕따를 자초한 경수 아우 경우는 아닌지? 어느 쪽이든 그냥 답답하다.

2 Comments

  1. 비사벌

    2016년 12월 23일 at 9:48 오전

    오선생님 올해도 이제 다 갔네요. 내년에도 좋은글 많이
    부탁드립니다. 요사이 저희병원에도 독감환자가 너무 많이 옵니다.
    건강 조심하세요.

    • ss8000

      2016년 12월 24일 at 2:19 오전

      비 선생님! 죄송합니다.
      악몽을 꾸다가 깨어 댓글을 읽고 응답을 드린다는 게 그만 스팸 처리를 했습니다.
      아차! 싶어 자세히 보니 되살리기 방법이 있지만, 그게 불그죽죽한 색깔로 변합니다. ㅎㅎㅎ…

      저는 몇 년 째 독감주사를 맞지 않고 있습니다.
      면역력을 키워 보려고 합니다.
      정히 죽갔으면 선생님께 SOS치겠습니다. ㅎㅎㅎ..

      제 말씀은 선생님께서 먼저 건강에 유념 하십시오.

Leave a Reply

이메일은 공개되지 않습니다. 필수 입력창은 * 로 표시되어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