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골일기: 횡설수설 겨울나기.

지난 12월 초 아들 며느리 그리고 손녀가 남태평양의 따뜻한 남쪽 나라로 장기여행을 갔다. 두 달 가까운 기간이라 아예 가정집을 월세 냈단다. 2013년 7월7일 샌프란시스코에서 일어난 아시아나 사고기의 승무원이었던 며느리는 벌써 3년 반이 넘었는데 아직도 그 때 사고로 통원치료를 다니고 있다. 그러나 겨울철(혹한기)이면 통원치료보다는 따뜻하게 지내는 게 더 치료에 효과적이라는 진단에 따라 매년 겨울이면 민가를 세 내어 제주도에 머물기도 했지만 금년엔 남태평양모처에 있는 섬나라로 갔다.

 

미안해서 하는 소린지 아니면 진짜인지….떠나기 전 몇 차례인가 마누라랑 동부인해서 꼭 오란다. 처음엔 다녀올까 생각하고 나름 공간을 찾아보니 이 달엔 도대체 짬이 안 난다. 비록 산골의 농한기라지만 그래도 스케쥴이라는 게 있고 유독 이 달에 몇 군데 참여해야할 행사도 있는 관계로, 하여 1월의 적당한 시기를 잡으니 금년엔 설날이 1월에 끼었고 또 그 땐 비행기 삯이 두 배에 가깝다. 뭐, 먹고 살 일도 아닌데 그렇게 비싸게는…하고 포기 했다. 또 어차피 3월엔 캐나다에 보름 정도 가야할 일도 있고 이래저래.

 

서울 집이 문제다. 사실 아들 며느리가 있을 땐 서울에 올라가도 볼 일만 보고 한 밤중에 내려오거나 가끔 잠을 자는 경우라도 토끼잠을 자다가 새벽에 혹시 아이들 깰 것이 염려되어 까치발로 살그머니 문을 여닫고 불이 나캐 내려오곤 했는데 그나마 아이들이 없으니 이번엔 혼자 있는 마누라가 걱정이다.

 

어떤 어머니가 짚신장사 아들과 우산장사 하는 아들을 두었는데 비가 오면 오는 대로 안 오면 안 오는 대로 아들들 걱정을 했다던데, 마누라 걱정 때문에 서울 집을 가면 이곳에 홀로 남아 계시는 장모님 걱정이 되는 것이다. 그래서 생각해 낸 것이 평일엔 서울 집에서 금요일에서 월요일까진 천등산 자락에서 보내고 있다.

 

솔직히 산골의 겨울은 무료하기 짝이 없다.(그래서 옛날 양반들 농한기 때 노름을 그리 했나 보다. 하긴 지금도 우리 마을에 어울리는 꾼들이 몇몇 있는 모양이지만 나는 원래 그런 투전놀이엔 관심이 없다.) 더구나 근간(금년 겨울)엔 최순실 사태로 인해 tv를 켜도 하루 종일 그놈의 순실이 얘기며 청문회뿐이니 tv켜는 것조차도 두렵고 짜증난다.

 

그렇다고 서울은 또 어떤가? 거짓말이 아니라 정말 공기 맛도 다르고 이삼 일 묵고나면 폐에 뭔지 모를 찌꺼기가 낀 것 같고 호흡도 폐부로 하는 게 아니라 코 구멍으로만 하고 있자니 숨이 답답하다. 또 그 소란함은 어떻고…..골짜기는 너무 심심해서 도시는 너무 답답해서….

그나저나 무료하고 지루한 이 기나긴 겨울을 어찌 보낼꼬? 무료함을 달래기 위해 오랜만에(겨울엔 잘 안 나가는…)2층 발코니에 나가봤다. 며칠 전 분분이 내렸던 잔설이 아직 을씨년스럽게 남아 있다. 개울 건너 이 반장 형님네 집에서 군불 때는 연기가 피어오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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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어오르는 연기를 보니 어릴 적 생각이 난다. 이맘쯤의 겨울엔 도대체 점심이라는 게 없었다. 그렇다고 아침을 배불리 먹은 것도 아니고 점심때만 되면 배가 몹시 고파왔다. 배가 너무 고파 배고프단 소릴 하면‘해 짧으니 저녁 일찍 해 먹자’라는 할머니 말씀이 어린 마음에도 섭섭하지만 거역할 수 없는 명령 같은 것이었다.

이어 해거름 할 때 부엌으로 나간 엄마가 그리고 잠시 후 굴뚝에 연기라도 나면 왜 그리 반갑던지, 진부한 얘기로 눈물 젖은 빵맛을 요즘 아이들이 어찌 알까마는, 지난날 굴뚝에 피어오르는 연기를 보며 곧 배불릴 생각에 들떠 있었지만, 오늘의 굴뚝 연기는 온몸을 다사롭게 녹일 군불이라는 사실에 격세지감을 느낀다.

 

문득 저 연기를 바라보며 배곯지 않고 이만큼이라도 살아갈 수 있도록 해주신 분을 생각하면 감지덕지해야 하지만 그 분의 따님이 오늘날 곤란지경에 빠져 은혜도 모르는 금수가 되어 날카로운 이빨로 물어뜯는 염량세태가 안타깝기만 하여 이 겨울나기가 더 버거운지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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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날씨는 정국 만큼이나 회색 빛이다.  흐릿한 속에도 천등산은 꿋꿋하다.

4 Comments

  1. 데레사

    2016년 12월 27일 at 10:54 오전

    요즘 젊은이들이 보릿고개도 알리가 없지요.
    배가 고프면 왜 그리 눈물은 나든지요.

    우리 세대가 박정희대통령을 존경하는
    이유중 하나가 기아를 해결 해 준것이지요.
    그걸 놓고 그때 누가 그자리에 있었어도
    해결했을 거라는 궤변을 하는 자들과는
    말도 섞고 싶지 않아요.

    • ss8000

      2016년 12월 28일 at 5:16 오전

      문제는 자라는 아이들에게 전수하고 가르칠 교과서입니다.
      선대부터 교육 받기를 차카게 살아라, 열심히 살아라,…
      아무튼 살아가며 좋은 일하고 이웃과도 화목하라는 걸 소위 도덕책이라는
      것을 통해 교육 받아 왔습니다마는, 요즘은 경쟁에서 이겨야 하고 살아남아야 하고…
      그런 것들을 가르치니 선대들의 고생담이나 은공 따위가 귀에 들어 오겠습니까?

      역사 책만 왜곡하는 게 아닙니다.
      삶 자체를 왜곡해 가르친 까닭에 이 나라가
      삼강오륜은 길바닥에 나뒹굴고 삭막한 세상이 되었습니다.

  2. journeyman

    2016년 12월 27일 at 4:28 오후

    열정적으로 글을 쓰시기에 하루가 모자라실 줄 알았는데 산골생활이 무료하시다니 조금은 의외인 걸요…

    • ss8000

      2016년 12월 28일 at 5:21 오전

      ㅎㅎㅎ….
      산골의 농사꾼이 농사 안 지으면 할 일이 뭐 있겠습니까.
      그래서 무료한 거지요.

      그리고 제가 하루 종일 컴에 껌딱지처럼 붙어 잇는 것 같아도
      새벽 잠 깨어 두세 시간 외엔 컴에 잘 앉지 않습니다.

      머 서류 정리하는 거도 아니고
      전자 책 읽을 일도 아니고
      동영상 감상할 것도 아닌데….

      아주 특별한 경우를 제외(토론마당 같은데 또는 足같은 신문기사에 댓글 달기
      그러다 삭제를 많이 당하긴 하지만…)하고는….

      언제 이곳으로도 여행 한 번 오시오.
      내가 좋은 술 한 병 내 놓겠소이다. ㅎ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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