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누라 말을 들어야 겠지???

그제 산골엔 꽤 많은 눈이 쌓였다. 도시같이 제설차가 다녀가는 것도 아니고… 준 고속도로인 국도까지 빠져나가는 게 관건이다. 어쩔까? 그래! 라고 나름 해답을 내린 게 농사용 사륜구동 화물차였다. 마을 입구만 빠져 나가면 될 것이라는 생각에 촌놈 첫 서울 구경 가듯 화물차는 입구까지 조심스럽게 기다시피 빠져 나왔다. 거짓말 안 보태고 입구의 휘어진 길에 갑자기 SUV차량 한 대가 보인다. 양쪽이 서로 놀라 급제동을 했음에도 그리고 최 저속으로 구동을 했음에도 쫘~악 밀려 10cm도 채 안 되게 정지를 한다. 마을로 들어오는 차야 큰 문제는 없지만 내 차는 천애까지는 아니더라도 마을 노인회장님네 2-3m 낭떠러지 밭두렁에 처박히면 객사할 수도 있었다. 순간 모골이 송연하고 식은땀이 난다. 목숨을 건 상경이다.

늘 찜찜했다. 그것은 밀린 숙제였다. 안 되겠다.. 다음엔 정말 꼭 가봐야지 다짐에 다짐을 한 그날이 어제다. 사실 두어 번 그 숙제를 하려고 산골짜기를 빠져나와 서울 집에서 잤지만 막상 날이 밝으면‘내가 왜?’라는 짜증과 의문이 생기며 포기를 했다. 하지만 어제는 달랐다. 목숨을 건 상경 해 놓고 숙제를 않는 다면…. 글쎄…뭐라고 표현할 방뻡이 없다.

집 앞 대로에서 택시를 잡으려는데‘빈택시’라는 불을 밝힌 택시가 많건만 내가 가고자 하는 방향이 아닌 반대 방향으로 모두 빠져 나간다. 음~! 집히는 데가 있다. 얼마 쯤 그 와중에도 다행히 한 대가 내 앞에 서 준다. 그 시간대면 교통통제가 됐을 것이라는 짐작에“아저씨 갈 수 있는데 까지 가주세요!”라며 목적지를 얘기하자“아직은 갈 수 있을 거 입니다요”그러나 청운동 주민센타 앞에 도착하니 벌써 경찰차량이 바리케이트를 치고 겨우 차량 한 대만 통과할 수 있게 통제를 한다.

택시 안에서 세 통의 전화를 받았다. 철석같이 약속을 했으니…‘오샘 빨리 안 오시능교?’에서‘형님 어디 쯤…?’ 아따! 그 사람들 먹고 살 일도 아닌데 어지간히 보챈다고 생각하는 사이 광화문 아니 정확하게는 3호 선이든가?경복궁역 앞엔 더 이상 차량이 나갈 수 없다. 평소 같으면 5천 원 정도의 요금이지만 미안한 김에 만 원짜리 한 장을 내밀고 급히 내렸다.

하늘에선 눈발이 계속 내린다. 내리는 눈도 맞고 미끄러지기도 하며 우여곡절 끝에怨도 많고 恨도 많은 조선일보 사옥 쯤 이르자 인파 때문에 길을 갈 수가 없다. 평소 같으면‘참…밥 처먹고 할 일 없으면 집구석에서 TV나 볼 것이지…뭔 gr염병이 뻗쳐서…’라며 욕이 저절로 튀어 나왔을 테지만 어제는 달랐다. 내 갈 길을 막는 인파가 애국하자는 인파가 아니던가. 내말이….광화문까진 인파가 별로 없었기에 수월 했다는 얘기다. 그런 걸 뭐…백만이니 이 백만이니 설레발을 칠까? 그러나 태극기와 촛불이 길 하나를 사이에 두고 세 싸움을 한다는 건 이 민족의, 이 나라의, 나아가 세대의 비극이라는 생각에 발걸음이 무거웠다.

솔직히 약속한 몇몇 분과는 서로 다른 곳에서 만났던 분들이다. 만약 만나게 되면 피차 애국동지적 입장에 소개를 시키고 한데 뭉쳐서 애국적 행동을 하시라고 권고할 참이었다. 참 이상도 하지? 전혀 모르는 사이라고 생각하고 약속장소에 도착해 보니 그 분들이 이미 동지로 똘똘 뭉쳐있지 않는가. 그런 허튼 생각을 한 내가 머쓱할 뿐 아니라 오히려 정말 손 한 번 잡아보기를 아니면 눈 한 번 맞춰 보기를 원했던 조토마의 대 논객 몇 분의 존안을 뵐 수 있었던 것은 애국 대열에 참석한 특별 보너스 였다. 와우~! 내가 그런 양반들의 손을 다 잡아 보다니.. 가문의 영광이 아닐 수 없다. 면면이 어쩌면 그렇게 당당들 하시고 눈빛들이 형형하실까? 감히 눈을 맞추지 못하고 우러러 뵈었다. 아! 20년 가까운 조토마 애국동지도 근 10년 만에 아니면 더… 뵙고 그 반가움에 허그를 몇 차례나 했다. 아쉬운 것은 꼭 보고 싶었던 …매주 현장에 계셨다는 동지는 그날따라 집안의 큰 일 때문에 결석(?)을 하셨단다.

그 추운 날씨에 하늘도 憤하고 怒했는지 눈발은 그침 없고, 애국동지들의 분노의 함성은 하늘까지 닿는 듯했다. 그러나 그 분들과 달리 나는 춥기만 하다.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뭘까? 그래! 나 같은 덜 애국자는 따로 할 일이 있다. 이 추위를 무릅쓰고 애국 하시는 분들을 위해 따뜻한 식사라도 한 끼 챙겨드리자. 1차 집회를 마치고 스무 분 남짓한 애국동지를 모시고 북창동 뒷골목의 중국집으로 모시고 갔다.

내가 그 장소에 간 것은 솔직히 애국대열에 합류하겠다는 것은 아니다. 그 분들은 매주 심지어 어떤 동지(이 분만 딱 이름을 밝히자. 송창석 동지)는 매주 중국에서 비행기를 타고 나와 그 대열에 합류 했다가 다시 월요일 비행기로 사업 처인 중국으로 날아가는 분도 있는데, 감히 다 된 밥에 숟가락 들고 덤빈다는 게 가당키나 한가? 첨부터 내 목적은 그 분들에게 식사 대접만 해 드리는 것이었다. 더구나 자신의 팔다리가 다 잘려 나가는 모습에도 일언반구 말씀도 없는 대통령이 밉기 조차한 마당에….

식사를 마치고 2차 집회장소를 발길을 옮기는 애국동지들에게 오늘의 내 소임을 다 했으니 나는 이만 집으로 가겠다고 고별인사를 드리고 고명하신 분들의 손을 일일이 다시 한 번 더 잡는 기회를 가지고 돌아서는 발길이 천근이다. 그 가운데는 부산에서 밀양에서 진주에서 인천에서 수원에서 부평에서 …산지사방에서 오신 동지들의 눈초리가 뒤 꼭지에 꽂혔지만 염체불구 후안무치….

어차피 차도 다닐 수 없을 것이고 광화문을 거쳐 청와대를 경유하여 집을 가겠다고 작정을 하고 광화문 4거리를 지나니 낮에 올 때보다는 이쪽도 인간들이 꽤 운집해 있고 대형 스크린에 어떤 젊은 놈이 노가리를 풀고 있다. 인파 사이를 빠져나와 미대사관 근처에 다 달으니 부평에서 자영업을 한다는 놈이 죽는 소리를 한다. 100만 자영업자가 도산을 했다는 등 어쩌고..‘박느혜는 퇴진 하라!’ 저쩌고. 그런데 스크린을 슬쩍 바라보니 얼굴에 개기름이 번들거리는 정말 아주 잘 처먹고 살진 돼지 같은 놈이 그런 개 소리를 하는 것이었다. 차라리 비루먹은 개 같은 놈이 그랬다면 이해를 했을지도… 속으로 ‘저 새끼 저거 동원 된 3류 딴따라다’라는 생각이 미치자 그만 분노가 치민다. 마침 앞에 다정히 어깨를 나란히 후라쉬(촛불형태의..)를 들고 깔깔거리며 지나는 젊은 계집들이 있기에“그게 왜? 박근혜 탓이요?”그러자 그 중 한 계집“뭐라고요?”라며 따진다. “아니~ 저 놈 얘기 하는 거 말이요~ 그 게 왜 박근혜 탓이냐고?”그러자 다시 그 계집“아저씨! 뭐라고 하셨어요?”라고 또 따지자 일행은 그 계집에게“얘! 얘! 그만둬!”라고 하자 그 계집 마지막으로“아저씨 어느 나라 사람 이예요!?”라며 앙칼지게 대든다.

아차! 싶었다. 동지들과 헤어질 때 몇몇 분의 동지가 그런 얘기를 했다.“광화문 지날 때 태극기 감추십시오.”덜컥 겁이나 들고 있던 태극기를 한 동지에게 건네주고 광화문을 들어섰는데..

눈길에서 죽을 고비를 넘기고 온 보람도 없이 여기서 맞아 죽을 수도 있겠는 생각에 갑자기 비겁함이 밀려온다. 나이가 좀 덜 먹었거나 반주로 마신 술기운이 좀 더 있었더라면 나도 그 계집한테 안 졌을 텐데… 하긴 첨부터 계집을 상대로 했으니 겁을 먹고 들어간 것이다.

아무튼 광화문을 지나 청와대를 향해 올라갔다. 청와대 정문을 몇 백m앞두고 또 경찰의 바리케이트가 쳐져있고 일단의 군중을 전경들이 포위하듯 둘러서 있다. 그런데 그곳에서도 ‘박근혜를 구속하라! 어쩌고…’한마디로 독안의 쥐새끼들 같았다. 쥐새끼들이 뭐라던 나와는 불심상관 가까이 다가가니 건장한 젊은이(아마 청와대 경비대 소속의..)하나가‘선생님! 더 이상 못 가십니다. 길을 통제 했습니다’란다. 그 말에 그만 성질이 확 돋는다. “이런 미친놈들!! 왜 여기까지 와서 gr염병을 하고 자빠졌어!?”독백이었지만 소리가 좀 높았던 모양이다. 쥐새끼들 사이에서 “저건 또 뭐야!?”라는 고함이 터져 나오며“넌 애비 애미도 없냐?” 나 참! 기가 막혀! 목소리를 들어 보니 아무리 처먹어도 40줄 안밖 같은데 욕을 해도 가당키나 한 욕인가? 그래서 내 입에서 미친놈들! 이라는 말이 튀어 나왔을 게다.

소시 적 같으면 그런 개소리에 맞아 죽는 한이 있더라도 참을 내가 아니지만 70노인이 뭔 힘이 있겠나…또 내가 그렇게라도 독백을 내 질렀던 것은 믿는 구석이 있기 때문이다. 전경들이 그렇게 많은데 설마 내가 맞아죽게 내버려 두겠어? 그런데 아까 길이 막혔다고 내게 친절을 베풀던 그 젊은이 내게 속삭이듯“선생님! 그냥 가시지요!”라며 다시 한 번 친절을 베푼다. 솔직히 안 그래도 그냥 갈 참이었다. 눈길에서 죽을 고비를 넘기고 또 적진 속의 광화문을 뚫고 온 보람도 없이 집 근처에서 맞아 죽을 수는 없지 않은가?

다시 몇 백m거슬러 내려와 통의동 쪽에서 택시를 잡으려니 도대체 택시가 없다. 마음이 급하다. 시계를 보니‘월계수 양복점 신사들’TV연속극이 이미 지났다. 아! 그러고 보니 연속극상 월계수 양복점이 효자동으로 나오던데… 그 양복전이 어디쯤일까? 그런데 택시는 오지 않고 춥기는 하고…마누라에게 전화를 했다. ‘이만저만 여기까지 왔는데 몇 번 버스를 타야 집 근처로 가지? 그리고 연속극 하나도 빼지 말고 잘 봤다가 내용 알려 달라..’ 과연 얼마 후 그 번호의 버스가 온다. 거짓말 안 보태고 10 몇 년 만에 타 보는 공용 버스다.

청운동 동사무소를 거치고 경복 고등학교 그 다음이 옛날 도상(경기상고)이었는데 그 사이 학교명이 바뀐 모양이다. 아무튼 귀에 설익은 학교명을 안내한다. 부암동 고개를 넘어서며 가만히 생각해 보니‘아이고! 하루에 만보걷기운동을 해야 하는데…’라는 생각이 퍼뜩 든다. 아까 얼핏 보니(시청에서…)2000여 보였었는데.. 하림각 앞에서 내렸다. 어차피 오늘 분의 연속극은 포기 했다며…. 그러구러 집에 도착하여 본즉 10,900보다. 간신히 만보를 채웠다.

다 아는 우스개. 백전백승의 장군이 있었다. 그러나 지독한 공처가였다. 어느 날 자신의 신세를 한탄하며 나 같은 놈이 또 있을까? 수하 장졸들을 연병장에 집합시킨 뒤 말뚝을 두 개 꼽고 마누라 말 잘 듣는 장졸은 이쪽 그렇지 않은 장졸은 저쪽에 서라고 명령을 했다. 그런데 한 사람을 빼고 모두 이쪽에 섰는데 딱 한 병사가 저쪽 말뚝에 서 있더라는 것이다. 장군이 하도 기특하여‘자넨 어째서 이곳에 서 있는가?’라고 하자, 그 병사‘오늘 아침 마누라가 사람 많은데 가지 말라고 했습니다!!!’라고 크게 대답하더란다.

집에 도착한 나를 보고 울 마누라 이젠 그런데 가지 말라고 한다. 마누라 말을 들어야 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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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Comments

  1. 데레사

    2017년 1월 22일 at 12:13 오후

    잘 하셨습니다.
    고생하셨구요.

    • ss8000

      2017년 1월 22일 at 12:44 오후

      고생이라니요.
      정말 고생 많으신 애국지사 분들이 많았습니다.
      그 분들의 노고가 십분 받아들여져 탄핵정국이
      빨리 끝났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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