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골일기: 하아!! 이제 좀 살겠네.

젊은 시절 TV를 보거나 이웃의 상경노인네들을 보면, 그저 안절부절 하는 모습을 봤었다. 가령 시골노인네들이 도시의 아들딸집에 왔다가 답답하다며 며칠 만에 시골로 내려가는 건 고사하고 하루 밤도 못 견디겠다고 휑하니 내려가는 경우가 있다. 그런 모습을 보고 참 별난 노인네 아니면 성질도 괴팍한 노인네라고 단정 지었고 심지어 ‘저거! 거짓말 생쑈’라고까지 폄하 했었다.

“아버님! 하루 밤은 주무시고 가세요! 저 때문에 그러시죠?”, “아니다. 그냥 답답해서 그런다.” 서울 집에만 가면 꼭 며느리와 한 차례 나누는 대화다. 그런데 가만히 생각해 보면, A항공사 승무원인 며느리가 해외 비행이라도 나가면 하루 밤 어떨 땐 이틀 밤 그 이상도 자다가 며느리가 귀국하면 그만 주섬주섬 짐을 싸들고 며느리가 죄스럽고 송구스러워 할 만한 타이밍을 잡고 집을 나서면 “아버님! 하루 밤은 주무시고 가세요! 저 때문에 그러시죠?”라는 불만(?)스런 대화가 꼭 튀어 나온다.

그런데 말은 언제나 “아니다. 그냥 답답해서 그런다.”라고 했지만 행동은 며느리 때문이 맞다. 저는 한다고… 가만히 앉아 있으면 과일도 깎아내 오고 차나 커피도 내려오지만 오히려 그게 더 불편하다. 저 하던 일 그대로 하면 좋겠는데 내가 있음에 신경이 쓰이는 게 분명하다. 며느리가 내게 신경을 쓰고 있다는 사실 그게 또 불편한 것이다. 그나마 마누라가 함께 있으면 그래도 좀 나은데 나나 저나 어린 손녀 셋만 덩그마니 남아 있을 땐 그 불편함이 극대화 된다.

3년짼가? 4년짼가? 산골생활을 즐기기 위해 서울 집을 세를 놓을까 하다가 원래 떨어져 사는 아들내외를 불러들여 집도 관리하고 무엇보다 층간소음으로 끔찍한 일도 벌어지는데 아이 맘껏 뛰 놀게 키우라는 그럴듯한 명목으로 불러 들였다. 그 사이 어쩌다 서울에 볼 일이 있거나 해외출장 나갈 경우에만 가끔 상경을 하여 꼭 1박을 해야 할 경우를 제외하곤 하루 밤을 못 견디고 산골로 내려 왔었다.

지난여름 가업이나 다름없는 가게를 맡아 하던 아들놈이 별로 적성에 맞지 않는지….제 사업을 하겠단다. 크나 작으나 잘되거나 아니거나 그래도 오늘 이만큼의 여유를 가져다 준 가업(?)을 당장 처분할 수 없어 환갑 넘은 아내가 노구를 이끌고 가게를 다시 맡아 하는 바람에 주말부부가 돼 버리고 말았다. 아내가 주말이면 꼭 내려왔는데 날이 거듭될수록 귀찮아지는지‘이번 주는 안 내려 갈 거예요!’하면 섭섭한 생각이 든다. 일주일 꼬박 기다렸는데…어떨 땐 나도 서울로 올라가고 주말에나 이곳에 내려와? 하는 생각이 들지만 약간의 치매 끼가 있는 장모님 때문에라도 그리 할 수는 없다.

벌써 4년이 되간다. A항공사의 S.F공항 사고 말이다. 그 당시 승무원으로 그 비행기를 탔다가 크게 다친 며느리가 아직도 통원치료를 다니지만 겨울만 되면 그 통증이 심해져 금년엔 아예 따뜻한 해외로 제 남편과 아이까지 두 달간 정양을 가겠다기에 내심 쾌재를 부르고 겉으로는 그렇게 장기간 집을 비우면 어쩌나? 짐짓 걱정을 했었는데… 그 두 달이 이리 빨리 갈 줄이야…

지난 일요일 아들며느리 그리고 손녀가 귀국을 했다. 그 전날 전국적으로 꽤 많은 눈이 내렸다. 저녁때가 되니 또 몸이 반응을 한다. 낮에 몇 시간 며느리를 보니 또 불편하다. 아내는 눈이 많이 왔으니 밤 운전은 안 된다며 밝은 날 내려가라고 한다. 그러마! 대답하고 그리 하려고 했다.

무엇을 먹었는지 기억이 나지 않지만 그날 저녁 먹은 게 속이 거북하다. 방귀가 자꾸 나오고….화장실도 가고 싶고…집안에 화장실 셋이나 있고 이미 안방 꺼는 며느리 독차지도 됐는데 꼭 거실 것을 이용하는 듯 한 것도 마음에 안 들고 불편하다. 방귀 소리가 아무리 큰들 저희 방(안방)까지 들릴 리 없건만 그래도 불안하다.

도저히 안 되겠다. 또 주섬주섬 가방을 챙기고 까치발로 도둑고양이처럼 다른 방에서 골아떨어진 아내에겐 이별의 키스도 못하고 현관문을 열려는 찰나“어머! 아버님! 내려가시게요!?”,“쉬~잇! 아무도 깨우지 마라! 내일 내려가나 지금가나 마찬가지다.”그 밤 그예 내려오고 말았다. 며칠 간 외출로 털어 놓은 보일러 탓에 서늘한 냉기를 맞으며 제일 먼저 한 게 아랫배에 힘을 주고 있는 대로 방귀를 시원하게 뀐 것이다. 하아!! 이제 좀 살겠네.

 

 

 

 

덧붙임,

가업을 팽개치고 나간 아들은 의류수출업을 하고 있다.

이 불황에 그래도….. 봄이 되면 아파트 하나 사서 이사하겠단다.

다른 때 같으면 붙잡겠는데….. 얼씨구나 하고 두 말 없이

그리 하라고 했다. 봄 부턴 서울 집에서도 방귀 맘대로 뀔 수 있어

좋다. 나는 행복한 사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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