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골일기: 대보름날의 자긍심.

피난을 간 곳은 지금처럼 산골오지였었다. 생각해 보면, 계절적으로 딱 이때쯤이었을 것이다. 왜냐하면 그날도 눈이 정강이까지 파고들 만큼 쌓였었고 더구나 밤길이었다. 그러나 그날이 보름이었는지 어쨌는지는 모르지만 달이 무척 밝은 밤이었다. 새하얗게 쌓인 눈길에 밝은 달빛은 백주 대낮이 부럽지 않을 만큼 훤했다. 그 밤 친구네 집으로 마실을 갔다가 돌아오는 길 내 호주머니엔 전리품 딱지가 가득했었다. 그날 승리의 기쁨에 발목이 푹푹 빠지는 눈길도 추운 줄 모를 만큼 개선장군 같은 귀가 길이 머릿속에 각인 되었던 모양이다. 지금도 밝은 달만 보면 어릴 적 그 달빛이 생각나며 교교(皎皎)하다는 단어를 떠 올리곤 한다.

날씨 탓이었나? 금년 대보름날은 달구경을 제대로 못했다. 달이 뜨지 않은 게 아니라 흐린 탓에 달무리가 지고 제대로 된 달을 구경 못했다는 얘기다. 그렇다고 대보름달을 바라보고 금년 한해의 신수를 빈다거나 하는 것은 아니고 해 본 적도 없다.

아침부터 마을이장은 이장전용 스피커를 통해 신나는 뽕짝 두어 곡 귀청이 찢어지게 들려주고‘주미~인 여러분께~에 알립니다. 오느~을 대보름을 맞아 마을회관에서~어 마을

르시~인 위로 잔치 겸 척사대회가 있을 거~신 즈~윽 한 분도~오 빠짐 업~씨이~참석하셔서~어 자리르~을 빛내 주시기~이 바랍니다~아. 다시 한 번 알립니다아~…’

매일 만보 걷기운동을 한다. 사실 10리 길이 넘는 면소재지까지 매일 다녀오면 1만2-3천 보 가량 된다. 꼭 일정하진 않다. 코스를 달리할 때마다 걸음 수는 달라진다. 그러나 만보 이상은 늘 채운다. 그날은 작심 하고 아침 일찍 그날의 할당량을(?)채우기 위해 집을 나섰고 시간에 맞추어 마을회관으로 갔다.

회관 마당에는 이미 마을주민 대다수가 모인 듯하다. 드럼통 반을 자른 화로(?)에는 백탄이 이글거리며 타고 있고 다시 그 위에 놓인 철망 석쇠엔 대하. 새조개를 포함한 어패류와 삼겹살에 LA갈비가 지글지글 익어 가며 연신 마을 분들 입속으로 소주잔과 함께 그 맛을 더하는 중이었다.

우리 면내 마을이 27개 부락이라는데 금년 대보름맞이 마을잔치 및 척사대회를 달랑 우리 마을만 한다는 것이다. 바로 다름 아닌 AI와 구제역의 창궐 때문이라는 것이다.

벌써 7년째인가 보다. 이 마을에 자리 잡은 게. 눈발이 분분이 내리던 날 옷가지 몇 점 그리고 당장 끓여먹을 주방기구 몇 개 그렇게 이곳 살림이 시작 되었고, 그 겨울을 지나 봄이 오고 반팔이 그리울 즈음 나는 거의 정신이 나갔다. 파리가 창궐하며 아무리 잡고 살충제를 뿌려도 한이 없는 것이다. 바깥은 당연하고 거실로 방안으로 파리와의 전쟁은 끝이 없었다. 그 낭패감 후회….

마을 전체를 둘러보지 않은 상태에서 이곳이 너무 마음에 들어 덜컥 사버렸으니 그것도 한 겨울철. 집에서 직선거리로 불과 백여m 떨어진 곳에 축사가 있었다는 사실을 몰랐던 것이다. 파리군단의 본부는 바로 그 축사였던 것이다. 아! 이곳에 잘못 왔구나.

거짓말 안 보태고 한두 달 뒤(파리와의 전쟁에서 패한 후)더 이상은 견딜 수 없어 그 길로 면소재지에 있는 부동산으로 달려가 얼마간 손실을 입고라도 좋으니 이 터전을 팔아달라며 매물로 내 놓았다. 사실 덩어리가 좀 크다. 나 좋아 사긴 했지만 산골마을 이정도의 덩어리는 쉽게 매매가 이루어지지 않는다. 그렇게 또 시간은 흘러 가을이 오고 날씨가 차지며 파리의 창궐이 줄어들 즈음 낭보가 하나 날아왔다.

축사를 경영하던 친구가 무리를 했는지 부도를 내고 축사가 경매에 붙여졌다는데 누군가 그 축사를 낙찰 받았다는 소식을 들은 것이다. 알아본 결과 낙찰 받은 사람은 축사를 할 계획은 없고 다시 매물로 내 놓았다는 것이다. 그 매물을 우여곡절 끝에 1차경매가 보다 웃돈을 얹어 내가 사버린 것이다.

축사 허물고 축사를 경영하던 사람의 스레트 집도 허물고 쌓인 소의 배설물을 어찌하지 못하여 덤프터럭200여 대의 흙을 쏟아 붙고 그렇게 밭을 만들어 버린 것이다. 혹시라도 이곳에 거주했던 옛사람이 본다면 한마디로 상전이 벽해가 되고 벽해가 상전이 된 모양새가 된 것이다. 마을주민 모두가 안다. 웃돈 얹어 산 땅 값은 차치하고 그곳에 수천만의 거금이 투입되어 지금의 밭이 된 것을…

결론, 우리 마을엔 소는커녕 돼지 한 마리 키우지 않는 청정마을이다. 가끔 마을 분들이 내게 덕담을 해 주신다. ‘당신 덕분에 살만한 마을이 됐다고…’신. 구 이장에게 늘 하는 얘기가 있다. 혹시 주거를 우리 마을로 하려는 사람 중에 소 한 마리 돼지 한 마리라도 들여오는 날 그날은 옛날 축사 터에 대대적인 축사가 다시 만들어 질 것이라는 반농반진의 협박 비슷한 것을….

우리 마을만 열린 잔치와 척사대회를 기리며 마을 주민들과 소주잔을 기우리며‘이게 다 당신 덕분이라는…’덕담에 금년 대보름이 즐거웠고 자긍심을 가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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척사대회에서 예선전에 나가 떨어져 받은 상품 세척제. 낫은 마을 분 중에 추렴한 이가 모든 가구에 하나 씩 돌렸다.

4 Comments

  1. 데레사

    2017년 2월 15일 at 7:34 오전

    그렇게 축사를 없앴으니 마을에는 공로자지요.
    참 잘하셨어요.

    • ss8000

      2017년 2월 16일 at 6:54 오전

      중요한 것은 그 후 축사 인근의
      토지(밭)가 몽땅 팔려 나갔고
      집이 두어 채 들어 섰습니다.

      적지만 토지가도 좀 올랐고요.(투기는 절대 아닙니다)^^

  2. journeyman

    2017년 2월 15일 at 4:20 오후

    오선생님의 산골생활은 언제 들어도 드라마틱합니다. ^^

    • ss8000

      2017년 2월 16일 at 6:56 오전

      ㅎㅎㅎ…
      팀장님도 은퇴 하걸랑 귀촌을 하셔서
      전원생활 해 보십시오.

      할 만 합니다.
      즐겁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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