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골일기: 덕(德)을 짓는 다는 것(4부)

참..좀 거시기 하긴 하다. 돈 얘기를 하자니…열 마리 분의 돼지족발과 다시 여러 가지의 고기를 포함하여 그날 시장을 본 게 약30만 원(정확하게 278,000)이었다. 돌아오는 길 농협마트에 들려 갖은 양념꺼리 조미료 등등. 정부에서 당신에게 매월 지급하는 21만원이면 모든 게 해결 되는 줄 아는 양반(마누라는 내게 장모님용 카드를 하나를 발급해 주었다), 그리고 돌아서면 돈 아직 남아 있지? 하도 기가 막혀‘이런 저런 물건 사드렸잖습니까’하면 그래도 돈이 좀 남았을 것이라고 하는 양반. 이런 부분이 치매라고 생각하면 매월25일 21만원 입금되는 것을 기억하고 빨리 찾아오라는 그리고 그날 얼마를 썼다고 보고하면 잔고가 얼마 남았다는 걸 정확히 기억하는…모든 게 불가사의 할 뿐이다.

돼지족발을 24시간도 넘게 곤 모양이다. 그런 사이 가스가 떨어져 가스 주문을 해 드리기까지 했다. 무거워 들 수 없으니 도와 달라고 기별을 하시기에 가 보았더니 큰 들 통(20L가 훨씬 넘는..) 두 개에 찰랑거리며 담겨 있다. 그것을 바깥으로 내 놓으란다. 어쨌든 다음날 그 양동이가 보이질 않는다. ‘어머니! 어제 곤 돼지족발 어떡하셨어요?’아무소리가 없으시다. 못 알아 들으셨나? 하고 다시 큰 소리로‘돼지 족발이요!?’

원래 돼지족발을 장시간 고면 진하고 뽀얀 국물이 우러나는데 어제 고은 건 국산 돼지가 아닌지 국물이 시커멓고 먹을 수 없을 거 같아 뒤꼍에(김장김치 버린 곳, 성질나게 모든 음식물 찌꺼기를 이곳에 자꾸 버린다. 길고양이와 쥐가 들끓는다) 몽땅 버렸다는 것이다. 버린 족발은 젤 리가 되어 산처럼 쌓여 있었고 그것을 목격한 내 분노는 저 발아래서 머리 꼭대기까지 스멀거리며 기어올라 왔지만 어찌할 방법이 없다. 이런 게 스트레스로 내 마음 속에 다시 몸속에 축적되고 쌓여 가는 것이다. 그러나 이 마저도 자그마한 단편에 속하는 얘기일 뿐이다.

처음 그랬다. 장인어른 돌아가시고 방화동의 작은 아들과 함께 몇 년(근처에서 사셨다는 의미, 성격상 며느리와 한 집에 살 형편이 안 됐음)동안, 가끔 모자 간 다툼이 있다는 것을 풍문에 듣긴 했지만 그 원인이 장모님께 있었다는 생각은 전혀 해 보지 않고, 나는 작은 처남에게‘홀로 되신 노모 하나 제대로 못 모시느냐’며 지청구를 퍼부었었고, 5-6년 작은 아들(며느리 포함)과 티격태격 하다 충북 옥천의 친정 조카네 아랫방으로 이사를 가신다기에 잘 됐다며 축하(?)도 드리고 사시는 동안 몇 번인가 그곳으로 문안까지 갔었는데 3년인가? 장맛비가 몹시 내리던 여름날 그 놈(친정 조카)이랑은 도저히 못살겠다며 대전의 큰 딸년(그 때 처형이 대전에 있었음)에게로 이주 한다기에 다시 친정 조카 놈에게도 욕을 한 바가지 퍼부었었고, 그렇게 큰 딸년 근처에서 1년 남짓 생활하다가 지겹다며 다시 서울 방화동 작은 아들에게 온다기에 그래도 아들과 함께 하는 게 정답이라며 전세금을 내가 내 드리며 이사를 시켰고 그렇게 근 10년 가까이 잘 사시는가 했는데 어느 날 작은 아들내외와 대판을 하고 큰 아들이 있는 경북 문경에 가서 여생을 보내겠다고 해서 문경으로 거처를 옮겼다는 소문을 듣고(큰 처남과는 금전문제 때문에 수 년 간 왕래가 없던 터라…)이젠‘여생을 잘 보내시겠지?’ 했는데 한 달이 좀 넘었던가? 하루에 수십 통의 전화를 하며‘죽어도 이곳(큰처남)은 싫으니 나 좀 그곳(제천)으로 데려가 달라!’는 하소연(사실 하소연이 아니더라도 내가 모시고 싶었다)에 날을 잡아 이곳으로 모셨던 게 재작년 11월 하순 첫눈이 분분하던 그날이었다.

당시 아래채엔 나의 큰누나와 매형 내외가 기거를 했었고 장모님을 모셔야하는 관계로 집을 비워달라는 부탁과 함께 그리하겠다는 일정이 잡혀 있었기에 임시 숙소로 100여m 떨어져 있는 처제의 원룸에서 생활 하실 때까지만 하더라도 아침저녁으로 그곳으로 가 문안도 드리고 농담도 하며 재미나게 보냈었는데, 누나 내외가 이사를 하고 아래채로 모셔오고 한 달도 지나지 않아 뭔가 몸에 맞지 않는 옷을 잘못 입고 있는 느낌? 왠지 모르게 가슴이 답답해 오고…아무튼 장모님으로부터 몹시 불편한 상황들이 전개되기 시작했던 것이다

4 Comments

  1. 데레사

    2017년 3월 7일 at 7:00 오전

    반드시 치매검사 받도록 해보세요.
    절대로 점상 아닙니다.
    치매가 한번에 점신줄을 다 놓는것은 아니거든요.
    어느 부분은 멀쩡한 경우도 많으니까 일단
    검사부터 해보세요.
    치매도 평소 성딜대로 걸리나 봅디다.

    • ss8000

      2017년 3월 7일 at 7:07 오전

      그런데 문제는 치매 판정이 나도 어찌할 방법이 없다는 겁니다.
      언젠가 병원에 같이 가서 초기 증세라며 판정을 받았습니다.
      그런데 사위는 안 된다는 겁니다. 아들이 와야 한답니다.

      아들 개 새끼들이 그냥 나 몰라라 하는데 방법이 없습니다.
      그래서 더욱 울화통이 터집니다.

      솔직히 경비만 해도 그렇습니다.
      작은 처남 새끼 10만원이 전부입니다.
      매월 돈백만원 좌우 들어 가는데….
      내 돈은 어디 따ㅑㅇ 파서 만든건지….
      그러나 백번을 애기해도 돈 때문에 불만이 있는 건 아닙니다.
      하도 속이 상하니 돈을 결부 시키는 거지…

  2. 데레사

    2017년 3월 7일 at 9:31 오후

    우리 사는곳은 주간보호소도 있고 요양보호사도
    오던데 그곳은 안되나요?
    원래 성질도 그런데 치매증세 까지 합쳐지면
    주변 식구가 너무 힘들어요.
    등급 받으면 요양원 가도 얼마 안들던데요.
    의논해서 요양원으로 모시면 안될까요?
    사위 지레 말라 죽겠습니다.

    • ss8000

      2017년 3월 8일 at 3:44 오전

      그게 웃겨요.
      마누라도 누구 누구네는 그런 판정을 받아
      복지산가? 하는 사람들이 일주일에 몇 회 오고 …
      그런 얘기만 할 뿐 저희 오빠들이랑 상의 해서 할 생각을
      않습니다. 그리고 큰 오빠에게 보내야 겠다. 작은 오빠에게 보내야 겠다는
      식으로만 나오니.. 제가 서둘면 비겁해 보이고 해서 그냥 계속…이렇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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