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골일기: 장모님의 정 떼기.

정말 지겨웠다. 때론 어찌할 바를 모르겠다. 온갖 몽니 온갖 심술을 다 부리셨다. 새벽이고 한 밤중이고 없었다. 현관문이 부서져라 두들기고‘돈 좀 달라, 약 사와라, 병원에 가자, 서울 작은 아들에게 데려다 달라…’그러나 그 어느 것 하나 그 자리에서 들어 줄 수 없는 억지요 강요다. 치매 끼 있는 노인이니 하고 한수 접었어도 어찌할 수 없는 울화와 분노. 그것은 장모님에게 직접 보내는 그것이 아니라 마누라를 포함한 처가식솔 5남매에게 보내는 원망 같은 것이었다.

 

그러나 그 마저도 아야 소리 한 번 제대로 못 지르는 마음속의 아픔. 후회 같은 것이었다. 멀쩡한 아들 두 놈이 건재하건만 오갈 데 없어‘나 좀 사우 집에서 주게 해 줘! 남 좀 사우한테로 데려가 줘!’라며 호소를 할 땐‘그래! 이참에 덕(德)이나 쌓자! 하다못해 내 새끼 그 새끼의 새끼…에게라도 쌓은 덕의 덕이 돌아가겠지?’ 하는 욕심이 분명히 있었다.

 

장모님의 몽니는 작년 김장철에 접어들며 심해지기 시작했다. 그렇게 시작된 장모님의 몽니는 겨울이 깊어가는 만큼 자심(滋甚)해 졌다. 오죽했으면 더 이상은 덕(德)짓기도 쌓기도 포기하겠다는 글을 올린 게 일주일여 전이다.

 

그 글 마지막 회를 올리던 며칠 후 그날도 조반은 드셨는지? 아래채 장모님 방문을 열고 방안을 둘러보니 늘tv를 보시든가 그 옆쪽의 벽에 달린 거울을 향해 머리를 매만지던 모습이 보이지를 않는다. 그 순간 아마도 찬 공기가 열린 샤워실로 들어갔는지 장모님이 그곳에서 나오시는데…. 90노인의 축 널어진 살가죽만 붙은 젖가슴과 마치 괴기영화에 나오는…덜 말린 머리카락을 앞으로 늘어뜨린 그 모습에 나는 거의 기절하다시피 했다. 그리고 그 모습이 눈앞에 아른거려 새벽잠에 깨어 화장실에 갈 때마다 가위에 눌리곤 했었던 것이다. 참…이젠 하다하다 이런 식으로 심술을 부리시는구나….내가 장모님께 뭘 그리 잘못했는데….

 

지난 토요일 오후, 그날은 하루 종일 바깥출입을 하지 않았다. 몸살. 감기기운에 거실에 자리를 펴고 먹은 감기약에 취해 자다 깨다를 반복하고tv를 보다 말다하며 저녁에 올 마누라를 픽업할 생각만 하고 있는데 또 현관문 두드리는 소리가 들린다. 이전 같이 부서져라 흔드는 게 아니었지만‘아이고! 또 시작이군.’생각하며 문을 열자 뜻밖에 마을 이장 부인이다. 그녀는 나를 보자말자‘할머니가 쓰러지셨어요!’라며 거의 울상이 되어 소리를 친다. 잠옷 바람이고 뭐고 간에 급히 뛰어 내려가 그녀가 가리키는 쪽을 바라보니 꼬부라진 자세로 개 집 앞에 쓰러져 계신다. 장모님은 늘 두 마리의 개밥을 손수 챙기셨다.

 

이장의 아들은 제천 시내 기숙학교에 다니며 매주말 본가를 찾는다. 그 아이 오면 기르는 개를 훈련시킨다며 풀어 놓고 뛰어 다닌다. ‘보더 콜리’라고 양치기 개 수놈이다. 이놈이 꽤 덩치도 클 뿐 아니라 참 부산한 놈이라 가끔 우리 집 콩이(진도견 암컷)를 보러 뛰어 들어오곤 한다. 그 놈이 갑자기 우리 집으로 뛰어 들었는데 와 보니 할머니 한 분이 개 집 앞에 쓰러져 계시더라는 것이다. 겁을 먹고(나와는 사실 일면식도 없다) 제 엄마에게 연락을 했고 제 엄마는 다시 내게 연락한 것이다.

 

급히 119에 연락을 하려하자 119는 자신이 신고를 해서 지금 오고 있단다. 쓰러진 장모님을 바로 세우려니 만지지 말라는 것이다. 그러나 영화나 드라마에 본 것처럼 목에 손을 대 보니 얼음장같이 싸늘하고 다시 코에 손을 대 보니 호흡이 없으시다. 그 사이 119구급대가 달려오고 심폐소술에 몇 가지 절차를 거치드니‘사망진단’을 내리고 잠시 후 지역 파출소 본서 형사 시체감식반 등 경찰차 예닐곱 대가 달려와 감식과 조사를 끝내고야 장례식장으로 모시고 갔다. 그 모든 절차를 혼자 치루려니 얼마나 당황스럽고 황당하며 겁이 나던지…온몸을 사시나무 떨 듯 했던 것이다.

 

장모님은 큰 아들이 살고 있는 문경 근처의 사찰에 모셨다. 그리고 어제 장모님의 삼우제를 마쳤다. 가만히 생각해 보면 이 모든 게 장모님의 철저한 정 떼기가 아닌가 싶다. 돌아가시기 며칠 전부터 식기며 기타 집기 심지어 냉장고의 김치마저 버리라며 명하셨던 것하며 그렇게 잡숫던 우황청심원. 가스활명수. 쌍화탕. 펜잘 등을 더 사오라는 말씀도 없었다. 더구나 돌아가시기 하루 전날 깨끗하게 목욕도 하시고 젖은 머리로 나를 놀라게 하시지 않았던가. 사람이 줄을 때 안 하던 짓(?)을 한다는 게 이를 두고 이름일 거다. 더구나 마누라는 그날 새벽 생전 꾸지 않던 악몽에 시달렸단다.

 

그제 밤 꿈속에 장모님이 보이셨다. 무슨 꽃 밭 같은, 꽃이 만발한 곳인데 그곳에서 소녀처럼 뛰어 다니시는 꿈이었다. 살아생전 좀 더 잘해 드렸어야 하는데 아니 덕(德)짓기에 보다 공을 들였어야 하는 건데.. 참 어리석고 가증스런 생각을 해 본다. 장모님!! 저 얄미우셨지요? 이제 그 미움 내려놓으시고 평안히 계십시오.

 

사실 장모님께서 정 떼기만 하신 것은 아니다. 돌아가시던 날 중국출장이 계획 되어 있었지만, 거래처에서‘사드문제로 시끄러우니 오지 말라’는 통보로 계획을 취소했었는데 그날 나라도 없었더라면 어찌 되었을까? 장례식은 지난 월요일 치루었지만 어제 치룬 장모님의 삼우제와 할아버지의 기제사가 겹치긴 했어도 오전에 삼우제를 지내고 다시 서울 집에서 조부님의 기제사를 무사히 지냈다. 무엇보다 오늘(16일) 수 개 월전 예약해 둔, 캐나다의 큰 딸아이에게 쌍둥이 손녀와 함께 가는 날이다. 장모님 가시며 이것까지 용의주도하게 계산 하신 것 같다.

잘 다녀 오겠습니다.

2 Comments

  1. 초아

    2017년 3월 17일 at 6:04 오전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그동안 수고많으셨습니다.
    장모님께서 확실하게 정 떼기를 해주셨네요.

    • ss8000

      2017년 3월 18일 at 9:10 오전

      네, 그런 결과….그리 됐습니다. ㅎㅎㅎ..
      늘 역사적 유물의 좋은
      사진과 좋은 글 잘 보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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