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골일기: 장모님 흔적.

장모님 가신지가 벌써 한 달이 다 되간다. 아래채를 지날 때면 아직도 장모님이 살아 계신 듯 하다. 창밖을 내다 보다 지나가는 나를‘진이(큰딸아이. 사실 큰딸아이 태어나자 친손녀는 뒤로하고 큰딸아이를 더 돌보셨다.)아범! 이리 와봐!’불러 세워 이것저것 주문도 많이 하셨고, 처음 얼마간은 그 주문이 오히려 살가움으로 다가왔었는데…시간이 흐를수록 치매에 기초한 것으로 판명이 났을 때 그것은 귀찮음 또는 거부반응 나아가 짜증으로 변해 버렸다.

팔자가 꼭 그맘때 돌아가시게 됐던 모양이다. 늘 그랬다. 뭔가 울적하거나 울화통이 터지면 시도 때도 없이 현관문을 부서져라 두들기신다. 그리곤 돈 받을 게 있으니 아들 집에 데려 달라, 한 밤 중 병원에 가자, 있지도 않은 내 돈 달라, 역시 새벽녘에 미장원 가자, 시내에 방 얻어 달라 등등…시비 꺼리를 들고 와 한 바탕 소란을 피운 후 내려가시곤 했는데….

두 달 전인 연초에 폭설이 내리던 날 그 날도 당장 해결할 수 없는 어떤 문제를 또 들고 오셔서 내 염장을 한껏 지르시고 내려 가셨는데….윗 채에서 아래채로 내려가려면 약간의 경사진 곳이 있다. 아마도 그곳에서 낙상을 하셨나 보다. 나를 흔들어 놓고 내려 가셨으니 불쾌한 심사로 내다보지도 않았는데, 그 때마침 처형이(평소엔 오지도 않던x이 눈길을 달려 어찌 왔는지..??)눈밭에서 낙상을 입고 꼼짝 못하는 장모님을 발견하고 방으로 모셨다며 전화가 왔던 것이다.

아무튼 이러다 큰 일 치른다며 나도 마누라도 처가 식솔 모두가 병원으로 모시려 했더니‘죽어도 여기서 죽는다며 병원 절대불가’라고 하셔서 어쩔 수 없이 비상약과 파스로 처방(?)을 했는데, 묘하게도 일주일가량 고생을 하시더니 거뜬하게 일어나서 평소대로 생활하는 것이다. 그랬던 양반이 두 달 후(3월11일) 개밥을 주시다가 개집 앞에서 심장마비로 돌아 가셨으니, 이게 팔자인지 운명인지???

장모님 가시고 캐나다에 거주하는 큰 딸네 집에 약 보름 그리고 다시 보름 가까이…솔직히 비어있는 아래채엔 별로 가고 싶지 않다. 더구나 장모님 쓰러지셨던 개집 앞을 지날 땐 일부러 먼 산을 보거나 외면하며 지나다녔는데 언제까지 그럴 수는 없기에 장모님의 흔적을 지우려고  개(아메리칸 코카 스파니엘)와 개집을 어제 다른 장소로 이사를 시켰고, 그 자리를 화단으로 만들 예정으로 먼저 다알리아 몇 뿌리를 심었다. 장모님의 혼이 계신다면 예쁜 꽃으로 피어 나셨으면 좋겠다.

그리고 방안을 둘러 보니 누가 정리한 사람 없건만 쓰시던 그대로 잘 정리된 채로 남아있다.(워낙 깔끔한 성격이셨다.) 내친 김에 화장실 문을 열어 보니 군자란盆에 소담스런 꽃이 피어 있다. 사실 이 분은 근10년 전 김포 사돈어른께서 내게 선물한 것을 지난 가을 장모님이 탐을 내시기에 드렸던 것인데 장모님 가신 후 이토록 소담스런 꽃을 남기실 줄이야.

장모님, 솔직한 심정으로 한 치 건너 관계 아니던가? 장대 같은 아들 두 놈이 잘 처먹고 잘 살고 있으며 제 어미를 모시지 않으려 하기에 그 반감으로 이곳으로 모셨지만 치매 이전의 괴팍한 성격이 다 들어나고 갈등이 고조된 터였는데(꽃 피고 새우는 춘삼월이 되면 장모님 소원대로 병원 가까운 시내 쪽으로 방을 얻어 드리려고 했다.) 그렇게 가실 줄이야……..

삼우제를 올리고 집으로 돌아온 날 무언가‘탁 탁 탁’하는 소리가 난다. 어디서 나는 소릴까? 마누라와 의아해 하는데 정신을 집중해 들어 본즉 이름도 모를 새 한 마리가 이층 현관으로 난 창문을 계속 쪼는 것이었다. 무심결에 마누라 앞에서‘사람이 죽으면 새도 되고 뱀도 되고 한다는데…’ 마누라 대뜸‘저 새 우리 엄마 아닐까?’란다.

그렇다면 당장이라도 안으로 모시고 싶지만 유리창을 깰 수도 없고, 눈치 있는 장모님 혼백이라면 현관문으로 들어오시라고 현관문도 열어 보았건만 계속 그 유리창만 부리가 뭉개지도록 쫀다. 몇 시간 아니 하루 이틀 저러다 말겠지 했는데 한 달이 가까이 지난 어제도 두드린다. 진짜 장모님 혼백일까?

장례식장에서 살아생전 속을 그리도 썩히던 처형x과 처남 놈 꼬락서니가 얄미워 그만 울라고 소리를 쳤던 게 섭섭하셨던가? 장모님은 아직도 살아 계신 듯 내 주위에 그 흔적으로 맴돌고 계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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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모님 살아생전 매끼니 두유, 쌍화탕, 활명수, 판피린, 우황청심원을 복용해야만 하셨다. 솔직히 약값도 만만치 않았다. 작은 처남 놈에게 매월 10만 원만 보태라고 했다가 면박만 받고….(지금도 그 생각만 하면 개xx 足가튼x 욕이 나온다.) 아무튼 박스 떼기로 사다가 보관하고 있다가 날짜에 맞추어 가져다 드린다. 못 다 잡숫고 남긴 것들. 그럼에도 속이 멀쩡 하셨다니… 약 힘으로 사신 건지? 불가사의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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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모님 샤워실에서 소담한 꽃을 피운 군자란. 어제 윗 채로 가지고 올라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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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김장철 때 파 다듬어 줄 테니 가져 오라시기에 한 아름 갖다 드렸더니 다 다듬곤’이 거 내가 할 께…’당혹스럽게 하셨는데..

지금 생각해 보면 참 욕심도 많으셨다. 배추농사 지었지만 당신 김치 담근다고 배추를 다 차지 하는 바람에 모자라는 배추 사서 김장을 담궜던 거…(지금 생각해도 웃음이 나온다.) 며칠 전 장모님 텃밭 마련해 준 곳에 가보니 파들이 튼실하게 자라고 있다. 나 먹으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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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도 하지..?? 어제도 저렇게 쪼아 댄다. 부리가 망가 지지는 않았는지? 오늘도 또 오려는지..? 소음공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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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Comments

  1. 김수남

    2017년 4월 9일 at 1:10 오후

    장모님 모시고 사신 자체만으로도 정말 훌륭하십니다.치매기가 계신 어르신을 모셨으니 더더욱 정말 대단하십니다.섬기신 그 수고를 자녀 분들께 복으로 다 또 채워져가실거라 생각합니다.성경에도 부모님께 잘 하면 이 땅에서 장수하고 잘 된다고 말씀합니다.더구나 장모님을 모시고 사셨으니 오선생님께서는 분명 이 땅에서 장수하시고 남은 여생도 편안하시고 좋으실거라 믿습니다.자녀 분들도 더욱 또 잘 되시거고요.남은 흔적들이 정말 마음 짠해집니다.그간 장모님 섬기시느라 애많이 쓰셨습니다.군자란의 꽃이 피었는 것을 보니 정말 장모님께서 선생님 내외분께 진심으로 고마워하시는 마음이 꽃으로 활짝 핀 것 같습니다. 새도 계속 오는 것을 보니 정말 장모님 생각이 여러모로 더 나게 되시겠어요.그 새가 선생님 댁이 너무 좋은가봅니다.

    • ss8000

      2017년 4월 10일 at 4:45 오전

      늘 과찬으로 몸둘바를 모르게 하십니다.
      부끄럽습니다. 사실 장모님의 치매로 인한 불협화음에
      가끔 목이 쉬도록 소리도 질렀답니다.

      이제와 생각해 보면 할 짓이 아니고
      크게 후회가 됩니다.

      제 어머니도 10여 년을 치매 앓다가
      돌아 가셨는데… 경험을 하고도 미숙하게 행동한 게
      몹시 부끄럽고 후회됩니다.

      이역에서 늘 행복한 글을 올려 주실 때마다
      미소진 채로 읽습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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