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골일기: 곰과 여우

평생을 속아 산다지만,,, 그래도 가끔 이번엔 설마? 하며 기대를 하는 경우가 있다. 그렇지만 늘 혹시나 하는 기대와는 달리 역시로 종착하고 만다. 이래저래 실망이 크고‘내 다시는….’하며 다짐을 하지만 그래도 또 다른 기대를 하고 마는 것이다. 우리 부부얘기다.

대충 한 달이 좀 지났나? 월전‘아내의 입’이라는 글을 올리기도 했지만, 연애시절부터 마누라는 잘 웃지도 말이 많지도 않았다. 오히려 나 자신이 그런 마누라를 웃겨보려고 노력하고 사내답지 않게 재잘 대는 편이었다. 3년여를 쫓아 다녔는데 어찌 보면 마지못해(사내의 상사였으니…) 데이트를 해 주는 것 같기도 어떨 땐 억지로 데이터 장소에 나와 짜증스러운 것 같기도 해 속도 상했고 그런 시간들이 오래(3년씩이나…)지속되며 은근히 자존심이 상하기까지 했다.

오징어를 워낙 좋아하는 관계로 파견근무지인 공장(천안) 앞 슈퍼의 마른 오징어는 나 때문에 걸려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는데 하루는 여주인 되는 양반이 조용히 나를 불러 심각한 표정으로 선을 보지 않겠느냐는 것이다. 말인 즉, 상대는 강원도 속초의 오징어잡이 배의 선주 딸인데 얼굴도 예쁠 뿐 아니라 집안이 재력도 있다며, 내가 워낙 오징어를 좋아하는 관계로 소개를 시키고 싶다는 것이다.(이 얘기는 마누라도 알고 있다.)

자존심에 생채기가 나려고 하려는 참에 그런 유혹(?)은 오히려 힘이 됐다.‘오냐! 꿩 아니면 닭이다’라는 식의 믿을 구석이 생겨 어쩌면 마지막이 될지 모르는 데이트를 신청하고 함께 길을 걷는데 갑자기 아랫배를 부여잡더니 안절부절 쩔쩔매는 것이었다. 당황스럽기도 또 짜증스럽기도 했지만 지나가는 택시를 타고 병원의 응급실로 가 보니‘급성맹장염’ 그길로 입원수속 밟고 수술을 하고…. 아무튼 퇴원 시에 당시 네 달치가 넘는 월급을 고스란히 이 여자한테 바쳤고 그게 고마웠는지 어쨌는지 결혼에 골인하고 부부의 연을 맺고 아이 3남매 낳았다. 아이고! 내 오징어!!(가끔 그런 엄한 생각을 한다. 특히 부부싸움을 할 때면…)

40여 년 전이나 오늘날이나 우리 마누라 말 수 적고 잘 안 웃는 건 한결 같다. 연애시절 술 한모금도 할 줄 모르기에 술을 안 마셔 그런가? 하고 억지로 술을 권해 보기도,,,그 결과 요즘 맥주 한 캔 소주 두 잔 정도는 거뜬하지만 그 한결같음은 조금의 변화도 없다. 참, 정말로, 억수로 재미없는 여자다.

조블이 없어지고 위블이 새롭게 태동했다는 건 조블에 관여한 블로거라면 다들 아신다. 지난 달 위블의 매니저님으로부터“나만의 위블로그 머그컵 이벤트가 시작됩니다”라는 광고가 뜬다. 그리고 영광스럽게도 그 이벤트 주인공 한 사람으로 뽑혔다. 그리고 그 머그컵에는 “유치환 시인의‘사랑하였으므로 나는 진정 행복하였네라’와 김남조 시인의 ‘너를 위하여 나 살거니 소중한 건 무엇이나 너에게 주마 이미 준 것은 잊어버리고 못다준 사랑만을 기억하리라 나의 사람아’”라는 두 개의 문구를 양자택일 하면 정성스럽게 만들어 보내 준다는 것이었다. 어디로 보내 준다거나 어떻게 보내 주겠다는 말도 없이….

솔직히 김남조 시인의“너를 위하여 나 살거니 소중한 건 무엇이나 너에게 주마 이미 준 것은 잊어버리고 못다준 사랑만을 기억하리라 나의 사람아”라는 시구는 처음 보는 것이지만, 40여년을 함께한 마누라에게 보내는 내 마음과 일치하는 아주 절절한 내용이라 그것으로 선택하고 까맣게 잊어 버렸다.

며칠 뒤 한 밤에 며느리로부터 전화가 온다.“아버님! 조그만 택배가 왔는데….”, “글쎄다. 택배가 올 데가 없는데…요즘 홈쇼핑에 주문한 것도 없는데…뭘까?”, “그럼 뜯어서 사진을 보내 드릴께요.”, “오케이! 그렇게 하렴”

우리 위블 매니저님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그 머그컵을 서울 집으로 택배 한 것이다. 그게 어떤 이벤튼데…마누라에게 감동을 주려고 심사숙고한, 마누라만을 위한 김남조 시인의 시구를 그렇게 쉽게 들켜버리다니. 그래서 급히“얘! 얘! 그거 잘 보관해 두거라!”마치 탑 씨크릿이나 되는 양 비밀유지를 당부하고 얼마 후 중국출장을 가기 위해 서울 집에 도착한 후 그 머그컵을 마누라에게 내밀었겠다.

이런! 제길 할! 소 닭 보듯 한다. 내가 뭐랬던가. 40여 년 전이나 오늘날이나 우리 마누라 말 수 적고 잘 안 웃는 건 한결 같다. “너를 위하여 나 살거니 소중한 건 무엇이나 너에게 주마 이미 준 것은 잊어버리고 못다준 사랑만을 기억하리라 나의 사람아”이 얼마나 슬림(?)하고 아름다운 자태의 표현인가? 그럼에도 우리 마누라 감동은커녕 피식 웃고 만다. 참말로 정말로 억수로 맥 빠진다. 도대체 무슨 여자가 저래???

옛 선인들 말씀 가로되, 여우랑은 살아도 곰 하고는 못산다던데…. 곰 같은 우리 마누라 아이고! 복장 터진다 복장 터져!!! 그래도 우짜겠노? 나는 끝까지“너를 위하여 나 살거니 소중한 건 무엇이나 너에게 주마 이미 준 것은 잊어버리고 못다준 사랑만을 기억하리라 나의 사람아”다. 목숨이 붙어 있는 한….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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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붙임,

‘말이나 행동이 곱고 우아하다. 또는 얌전하고 점잖다.’라는 의미의

순수 우리말‘음전하다’라는 말이 있다.

 

나는 이 말을 사실이 어떤지 모르지만‘신사임당’에게 가끔 대입시키고 싶다.

그리고 혹시 우리 마누라 전생이 그분 이 아니었을까? 하고

내가 너무 지체(?)높은 마누라를 얻은 게 아닐까? 고민도 한다.

 

이거 마누라 자랑이야? 비방이야?

20 Comments

  1. 벤조

    2017년 5월 19일 at 4:49 오전

    배우자용으로 한개 더 달라고 해서’사랑하였으므로 행복하였네라…”
    새겨가지고 답장으로 받으세요. ㅎㅎ
    애타는 사랑, 몇십년인가요?
    너무 재미있어 흔적 남기고 갑니다.

    • ss8000

      2017년 5월 19일 at 6:10 오전

      아! 오랜만에 뵙겠습니다.
      별고 없으시지요?

      벤조님을 뵈니
      아지매(미세스 오)가 더욱 그립고
      생각이 납니다.

      이역에서 늘 강녕하시기 바랍니다.
      예, 매니저님께 특별히 소청 좀 드려야 겠습니다. ㅎㅎㅎ…

      근데 전사지를 새로 개발(?)해야 하기 때문에
      쉽지는 않을 것 같습니다.

  2. 데레사

    2017년 5월 19일 at 7:52 오전

    저는 사랑하였으므로 행복하였네라를 받았어요.
    워낙 사랑타령을 좋아해서요. ㅎ

    • ss8000

      2017년 5월 19일 at 7:40 오후

      이밴트 접수 하신 거 봤습니다.
      저도 첨앤 그걸로 하려다가 가만히 생각해 보니
      하였네라… 라는 대목에서 과거사 같은 느낌이 들어
      포기 했습니다. ㅎㅎㅎ..

  3. journeyman

    2017년 5월 19일 at 11:03 오전

    저 역시 결혼 후에 깨달은 바가 있었습니다.
    여우 하고는 살아도 곰 하고는 못 산다는 말.
    제 집사람도 곰과라서 울화통 터질 때가 종종 있는데
    선생님 글을 보니 저는 명함도 못 내밀겠다 싶습니다.
    아내에게 여보라 못하고 자기야라고 부르는 것도 그렇고
    오선생님과 저는 비슷한 면이 많은가 봅니다.

    • ss8000

      2017년 5월 19일 at 7:44 오후

      매니저님, 우리 그래도 행복한 줄 알아야 합니다.
      곰들은 절대 거짓 말이나 화려한 허풍 떨지 않습니다.
      곰들은 우직(?)할 뿐이지 남편들을 마음으로 섬긴다는 거
      알아 주어야 합니다.

      곰…어쩌구 해도 괜히 복에 겨워 하는 소리입니다.ㅎㅎㅎ..
      하긴 젊은 날은 많이 불만 스러웠지만
      나이가 먹고 보니 그게 얼마나 진득한 사랑인지
      알겠더라니까요.

      곰들을 위하여 화~이~팅!!!^^

  4. 김수남

    2017년 5월 19일 at 1:22 오후

    사모님 모습이 그려집니다.
    그윽하시고 속이 깊으신 분이시고 마음이 따뜻하신 분이심이요.
    그러시니 또 묵묵히 3자녀 분들을 잘 키워내셨겠지요.

    선생님도 너무 멋지십니다.
    김남조님의 싯구로 선생님 마음을 그대로 잘 전해 드리신 것이 사모님께
    큰 에너지로 담겨 계실거에요.
    표현 안하시지만 이미 또 마음을 잘 읽으시니 굳이 더 말씀이 필요 없으셨을거에요.

    두 분 늘 더욱 건강하셔서 서로에게 큰 힘과 위로가 되시며
    더욱 사랑과 행복 가득하신 매일 되시길 기도합니다.

    • ss8000

      2017년 5월 19일 at 7:47 오후

      알고 있습니다.
      제 아내는 늘 진득하게 내조ㅓ해 준다는 사실을.
      나이가 먹어 갈수록 아내의 고마움을
      마음 깊이 새기고 있답니다.

      항상 드리는 말씀이지만
      주시는 격려 아낌 없이 접수 하겠습니다.
      감사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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