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골일기: 내년에 또 하자!!!

전편‘산골일기: 무모한 노익장’에도 밝혔지만, 아무튼 만용(蠻勇)을 부려가며 고추80판(2800 여 포기)과 고구마 300평(2000여 포기) 그리고 20여 종의 각종 채소와 옥수수 등을 심긴 심었다. 이삼일 몸살(근육통)을 앓고 나니 육체는 견딜 만한데 그 뒤처리를 위해 걱정이 앞선다. 우선 작물을 심은 골과 골 사이 즉, 헛골에 비닐 칠 생각을 하니 앞이 아득하다.

농사일을 해 보니 가장 힘든 부분이 풀과의 전쟁이다. 오죽하면 김(제초)을 매고 돌아보면 또 풀이 나있다고 했을까? 사실 귀촌을 하면 파란 잔디도 가꾸며 멋진 전원생활을 해 보겠다고 야심만만했으나 두어 해 지나고 보니 잔디는커녕 돋아나는 잡초 때문에 마당 전체를 거금을 들여 아스콘으로 덮었을 정도로 징글징글한 게 풀과의 전쟁이다.

따라서 무엇 보다 헛골에 돋아날 잡초 때문이라도 대책을 마련하는 게 비닐치기인 것이다. 다른 작업이야 시간만 주어지면 힘이 들거나 말거나 혼자서라도 할 수 있지만 비닐 치기는 혼자 할 수 있는 일이 아니다. 주말을 이용해 아내가 도와준다고 해도 크게 도움이 될 것 같지가 않다. 헛골 비닐치기는 최소 세 사람이 팀을 이루어야 그나마 할 수 있는 일이기 때문이다.

아내는 사람(놉)을 사라고 하지만 요즘 농촌의 하루 품삯이 남자 10만원에 여자 8만원을 줘도 사람 구하기가 하늘에 별 따기이다. 그마저도 빠릿빠릿한 젊은이는 천연기념물이고 60대 일꾼도 없다. 허리 꼬부라진 70대 이상의 노친 네들 구하기도 힘이 든다.(나는 이럴 때마다 도시의 쪽방에서 무위도식하는 늙다리들과 일용직을 찾기 위해 인간시장에 나서는 젊은이들이 얄밉다. 새벽시장에 나섰다가 발길을 돌리는 젊은이와 또 몇 푼 되지 않는 노인연금에 기대어 궁상떠는 것 보다는 차라리 시골로 내려와 건전한 육체노동을 해 가며 생활비나 용돈을 벌면 좀 좋을까? 하는 생각에…)

장가를 가고 살림을 나고 삼남매를 낳고 독립된 한 가족의 가장이 된 후 풍파에 시달리며 살아가다가 하던 일이 잘못 되어 오갈 데 없어 다시 부모 슬하의 본가로 돌아와 무위도식 할 때였다. 아버지는 북촌(가회동) 동네에서 복덕방을 하셨는데 거간 꺼리가 있건 없건 집에 돌아오시면 잠시도 몸을 쉬지 않으셨다. 그런 아버지가 나는 늘 불편했다. 당장 무엇을 어떻게 할 수 없는 상태였기도 하지만 늙은 아버지가 하다못해 옥상에서 허드렛일 하시는 게 정말 조마조마 불편했던 것이다.

하여 마지못해 옥상으로 올라가 이것저것 좀 도와 드리려고 하면‘저리 못가!?’하며 불호령이 떨어지곤 했다. 도대체 왜? 무엇 때문에 저러실까? 아무 말 못하고 머쓱하여 내려와 숨듯 방에 처박히기도 했었다. 비록 실패는 했지만 그래도 젊은 힘은 남아 있는데… 늙은 아버지 힘 좀 들어 드리려 했는데…. 노인네 성질 한 번 괴팍하다고 늘 생각했었다.

아무튼 이런저런 걱정으로 비닐치기는 포기할 생각이었다. 작년 500평의 밭에 콩을 심었다가 헛골 비닐작업을 않는 바람에 결국 콩 추수를 포기했기 때문에 비닐작업을 않는다는 것은 그 해 농사를 포기하는 것과 다름이 아니다. 올 농사도 괜히 헛힘만 썼다며 낙망하고 있을 때 아내로부터 전화가 왔다. 아들과 며느리 더하여 제 처형(호주교포로 체험 삶의 현장…)까지 함께 내려와 일을 도와주겠다는 전화였다.

그러고 보니 귀촌 7년 차임에도 아들놈에게 단 한 번도 일을 도와달라는 얘기를 해 본 적도 또 아들 역시 먼저 돕겠다는 얘기도 없었다. 문득 왜 그랬을까? 생각해 본 즉, 별로 도움이 될 것 같지 않다는 것과 저 할 일 따로 있고 내 할 일 따로 있는데 일부러 이곳까지 내려오라고(휴식 취하러 오는 것은 예외로 하고…)할 수도 필요도 느끼지 않았던 것 같았다. 그리고 무엇보다 힘이 들지만 아직은 자식들(딸들 포함) 힘까지 빌릴 만큼 노동력이 쇠하진 않기 때문이다. 어쩌면 나의 이런 마음이 지난 날 내 아버지의 마음이 아니었을까? 달리 표현하면 방구석에 죽치지 말고 밖으로 나가라는…..아버지의 주문 같은 것.

지난 토요일 약속대로 지원군이 내려왔다. 각각 업무를 분담하여 체계적으로 작업을 한 결과 혼자라면 엄두도 못 내고 포기했어야 할 올 농사(비닐치기)를 무사히 마치고 일요일 저녁 귀경을 했다. 농사의 반은 마친 것이나 진배없다. 이제 때맞추어 영양제(시비)와 탄저병 예방만 가끔 해 주면 된다.

이래저래 기분이 정말 좋다. 아내에게 전화를 했다.“진작 아들놈 힘 좀 빌릴걸 그랬어. 우리 내년에도 또 고추 심자!!”(사실 전편에 다시는 영농 않고 아내 손 꼭 잡고 주유천하나 하자고 다짐한 끝인데…)라는 내 말엔 묵묵부답이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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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추밭에도 문전옥답에도 지원군의 도움으로 잡초 억제용 비닐작업을 마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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콩나물이랑 시금치 무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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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치찌개 끓이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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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묵탕도 끓이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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된장찌개도 끓고….

방풍나물, 겨자채, 상추, 쑥갓 등의 쌈채도 준비하고….

이상은 지원군이 온다는 기별을 받고 지원군을 위해 정성 껏 만든 내 방식의 가정식이다. 나 스스로는 워낙 고기를 좋아 하지 않지만, 삼겹살은 별도로 구워 먹도록 준비해 두었다.(요즘 농촌 일손 구하는 마음이 이럴 것이다. 칙사 대접.)

 

덧붙임,

어제 이곳에 바람이 억수로 불었다. 지난 일요일 아들놈을 비롯한 지원군의 도움을 받은 고추밭 비닐작업을 가 보았다. 이런! 제길할!!! 아들놈과 지원군이 작업한 비닐이 몽땅 다 벗겨졌다. 원인을 살펴보니 비닐을 지지하는 나무젓가락을 대각선으로 꼽아야 하는데 일직선으로 꼽은 탓이다. 아내에게 전화 했다“다시는 일 돕는다고 하지 말라!”고. 비닐이 엉켜서 더 곤란하게 생겼다. 그래도 어쩌나 동창이 밝아지면 노고지리 우짖기 전 지원군의 망가진 작업을 보수 해야지…..

4 Comments

  1. 김수남

    2017년 5월 26일 at 6:14 오전

    바람이 참으로 야속합니다.지원군의 정성을 그렇게 허무하게 앗아가버렸으니요.노하우가 생겼으니 내년엔 바람도 겁나지 않으실 방법을 터특하신 것으로 위로를 얻으시면 좋겠습니다.지원병의 마음과 함께 하실 때의 기쁨으로 날아간 비닐 챙겨는 작업도 운동삼아 즐거이
    해 내시길 응원합니다.그 풍경이 눈에 선합니다.농사 일 하시던 부모님 생각도 많이 납니다.고향과 부모님은 멀리 와서 사니 더욱 그리워집니다.이 땅에서 더 뵐 수 없는 슬픔은 있지만 천국에서 편히 안식하실 부모님이심도 위로가 되고 감사합니다.

    찌개가 참으로 맛있어 보입니다.사진만으로도요.
    나눠주신 소식 감사히 미소 지으며 잘 보았습니다.감사합니다.

    • ss8000

      2017년 5월 26일 at 7:27 오전

      네 조언 하신대로 보수작업을 운동삼아
      여유있게 하겠습니다.^^

      지금 막 나가려는 참입니다.
      격려 감사드립니다.

  2. 데레사

    2017년 5월 26일 at 8:54 오전

    또 일하러 나가시는군요.
    그놈의 바람을 내가 땟지 해줘야 겠습니다.
    얼마나 속상합니까?

    • ss8000

      2017년 5월 27일 at 4:52 오전

      어제도 죽다 살았습니다.
      아! 정말 이젠 ㄴ일(농사)이 지겨워 집니다.
      제 스스로가 왜 이토록 제 자신에게
      가혹(?)한지 모르겠습니다.

      내년부턴 정말 먹을 정도의 밭만 갈고
      심으려고 마음 먹고 잇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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