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골일기: 나이가 들긴 든 모양이다.

당 나라 때 시성(詩聖) 두보(杜甫)의 삶도 어지간히 팍팍했던 모양이다. 요즘으로 치면 취준생(就準生)이 되어, 노량진 근처 원룸 또는 고시원을 오가며 대기업은 고사하고 하다못해 중견기업에 취업을 하려고 전국을 떠돌다 30이 넘어 다시 수도 장안으로 돌아와 공시생(公試生)이 되어 벼슬살이를 원했으나 얼마지 않아 안록산(安祿山)의 난이 일어나고, 피란을 가려다가 한강다리가 끊기는 바람에 빨.갱.이들에게 사로잡혀 대충 1.4후퇴 때 쯤 탈출해서 피난처의 나라님이 계시는 행재소로 가자 그 공(적지에서 탈출한 공?)으로 말단9급 정도의 벼슬살이를 시작했고 드디어 국군과 UN군이 수도를 탈환하자 나라님을 따라 환도하는 도중‘곡강’이라는 곳에 당도하니 경치가 어찌나 아름다운지 시심(詩心)절로 동하여 곡강시(曲江詩)라는 것을 지었는데 그 마지막 소절에 이르기를‘인생칠십고래희(人生七十古來稀)…자고로 인생 칠십은 고래로 드물도다.’라고 탄했단다.

 어디 두보의 읊조림만 그랬을까? 오늘날을 두고 백세시대니 뭐니 하지만 내 개인적으로 두보가 탄했던‘인생70’이전의 세계만 하더라도 소위 염병이라고 일컫는 장질부사가 창궐하여 고고지성을 지르다 말고 몹쓸 장질부사로 생을 마감한 영유아가 부지기수였다니 그때 그런 역질(疫疾)에 살아남아 오늘을 영위 하는 것 자체가 행운이 아닐까?

 돌고 돌아 엄한 얘기로 여기까지 왔지만, 이 나이 먹기 전 어르신들 말씀에 10년만…혹은 5년 만이라도..또는 작년 다르고 올 다르다…’고 말씀들 하시지만 그게 무엇을 의미 하는지 크게 신경 쓰지도 알려고도 하지 않았고 지금도 그런 것들을 소원하거나 바람 해 본 적도 없다. 그만큼 아직도 육체적으로는 젊은 사람 못지않은 안팎(?)의 노동력을 지니고 있다. 즉, 나이는 먹었지만 육체는 아직 건장하다고 장담한다.(다만 속병이 있는지 없는지는 잘 모르겠고…)하긴 100세 시대에 나이 70 먹었다고 노인인연 하는 것도 외람되고 방정맞다 아니할 수 없는 것이다.

 그런데 강인한 육체에 비교하면 정신적으로 나이 먹어가는 걸 뚜렷이 느낄 때가 있다. 특히 이전에 없던 이런저런 영양제니 뭐니 하는 약병들이 서가의 책들과 나란히 놓여 있다는 사실이다. 그런 것들이 과연 몸에 이롭고 생명을 연장해 주는 건지 모르겠지만 해해연연 종류도 널어나는 것 같고 특히 아이들이 모모한 곳으로 여행이라도 다녀오면 다른 것보다 이건이래서 몸에 좋고 저건 저래서 유익하다며 약병을 내 미니 아니 받을 수도 없고…. 하긴 값은 차치하고 그 어떤 선물보다 가볍고 부피가 작으니 더 바람직한 것인지 모르겠지만…. 어쨌든 이런 사실이 나로 하여 ‘아하! 나이가 들어가고 있구나….’하는 생각을 갖게 되는 것이다.

 젊은 시절 나만큼 가부장적인 남편이고 아빠도 없었을 것이다. 얼마나 그 정도가 심했으면 지금도 기억하는 아내의 악담 내지 저주“나이 먹거든 보자!”단순한 표현이 아니라 아내와 아이들을 쥐 잡듯 했다. 그렇다고 폭력을 쓰거나 아이들을 때리진(나는 가끔 아이 3남매를 뺨 한 대 안 때리고 키웠다고 자랑한다)않았지만, 내겐 기차화통 삶아먹은 듯한 목소리가 있었다. 젊은 시절 고함을 한 번 치면 아래 위층의 주민들이 지진이 난 줄 달려왔고, 때론 대들보와 지붕이 흔들거렸을 정도의 고함이 있었다. 아내는 가끔‘제발! 큰 소리 좀 치지 말라!’는 부탁을 넘어 통사정을 하며 살다가 어떨 땐 만약 우리가 헤어진다면‘자기의 그 gr같은 고함지르는 버릇 때문일 것’이라고 장담을 했을 정도다.

그러고 보니 언제부터인가 나 자신도 모르게 시나브로 내 목소리가 잦아들었는가? 아니면 아내의 항의가 이전 같지 않은 느낌을 가졌을 때 역시‘아하! 이젠 나도 나이가 들어가는 구나…’하는 생각을 또 갖는 게 두 번째 것이다.

 며칠 전 억수 같은 장맛비에 아무것도 할 수 없어 아내와 둘이 거실에서 앉아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며 시간을 보내고 있는데 아내가 갑자기 방귀를 냅다 뀌는 것이다. 그것도 장마 탓에 눅진한 집안을 조금이라도 말리기 위해 에어컨 제습 모드와 선풍기까지 튼 그쪽 방향에서. 솔직히 옛날 같으면 불호령이 떨어지고 어떤 형벌(?)이 주어질지 모르는 상황이었지만, 그 황당한 사태를 맞고도 전혀 치죄를 할 수 없는 나 자신을 발견하고‘아하! 내가 나이가 들긴 든 모양이다’

 연륜(年輪), 나무는 한 해를 보내면 나이테를 하나씩 만들어 간다. 인간의 연륜 또한 나이테 같은 것 아닐까? 하나씩 쌓아가는 나이테로 바람에 흔들리지 않는 뿌리 깊은 낭이나 거목(巨木)도 되는 것처럼, 연륜을 쌓다보면 쌓은 만큼의 삶의 깊이가 생기고 지나온 세월을 반추하며 옳고 그름을 후회와 반성 그리고 분수나 격에 맞는 다짐 같은 것을 하는 것 아닐까? 그게 또한 나이 듦일 것이다.

 

덧붙임,

여보! 마누라! 지난 세월 숨죽여가며 뀌었던 방귀 마음 놓고 뀌시게!!!! 내 당신 탓 아니 하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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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이 먹어감을 실감나게 알려주는 약병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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