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골일기: 여유.

지난주일 절강성 항주는 일주일 내내 최고 섭씨38-39도를 오르내렸다. 한마디로 길거리에 나서면 숨이 턱턱 막혔다. 다행히 업무를 보는 거래처들의 빵빵한 에어컨 덕분에 그리 더운 줄 모르고 지냈고 호텔은 호텔대로 역시 24시간 냉방을 해 주는 관계로 지낼 만 했다.

늘 그러했지만 출장을 마치고 인천공항에 내리던 날(황사나 미세먼지가 어쩌고 해도 우리의 공기와 중국의 공기는 맛과 청량감이 다르다.)긴팔을 준비하지 않은 게 후회될 만큼 서늘하고 상쾌했다. 중국에 비해 모든 게 작고 적지만 그 대신 왠지 찰지고 딴딴하고 옹골진 게 우리네다. 이런 우리를 향해 오늘 아침 중국 놈들이 노골적으로‘우리네의 사드배치가 최악의 경우 중공군을 부르는 결과를 가져올 것’이라며 공갈협박을 하고 있다. 참…죽지 못해서 환장한 놈들 같다. 그 옛날 살수대첩의 맛을 다시 보려면 무슨 수작을 못 부리겠으며 소정방이 쫓겨 가듯 달아나려면 무슨 gr을 못 하겠는가.

아이고! 참…날씨 얘기하다가 그만… 참..이거도 병이다. 중국 놈들 얘기만 하면 흥분부터 된다.

암튼 엄살을 떠는 게 아니라 뭐, 이 정도는(섭씨38-39도) 우리의 어떤 지방도 기록했다지만, 사실 산골 속은 아무리 뜨거워도 정자나무나 그늘 막에 들어서면 그리 더운 줄 모르고 지낸다. 그 기에다 금년 여름엔 뜨거운 여름이라기보다는 긴 장맛비로 습한 여름이라고 하는 게 더 어울린다.

이곳과 서울 집을 오갈 때 항상 밤 열시 이후 아니면 새벽 4시 전후해서 움직인다. 고속도로에 차량이 없기 때문에 졸음(아직 단 한 번도 없지만…)운전만 피할 수 있다면 아주 쾌적한 드라이브를 시간여 즐기며 다닐 수 있다. 그제는 귀국길이 좀 피곤했던지 깊은 잠에 빠졌다. 일어나 보니 다섯 시가 가깝다. 대충 세수를 하고 마누라 방으로 가‘나 내려가!’라는 속삭임과 함께 가벼운 뽀뽀를 해 주고 집을 나섰는데 먼동이 살짝 트려는 5시20분이다.

세상에~! 그 새벽시간임에도 내부순환도로가 약간 밀린다는 느낌이 들 정도로 차량이 많다. 아주 막히지는 않았지만 평소 다니든 시간에 비해선 원활한 소통은 아니다. 구리 톨게이트를 지나 동서울 톨게이트까지 확실히 차량이 많음을 느끼겠다. 평소 같으면 좀 달릴 수 있는 구간이지만 어떤 곳은 정속주행110k 미만인 구간도 있을 만큼 차량이 많다. 내말은 그런 신 새벽에 출근전쟁이 벌어지고 있는 것이다. 딱하기도 가련 하기도….사는 게 뭔지… 그 짧은 시간에 차량 밀리는 모습에 삶의 무게를 떠 올린다. 하기는 먹고 살려니 어쩔 수 없이 출퇴근이 가능한 지역에 살아야겠지만, 나 젊은 시절도 저랬겠지? 하는 생각이 미치면, 그 끔찍한 세상을 잘도 참고 살아나온 나 자신이 대견하기까지 하다.

서울 집을 나설 때부터 좀 한기를 느꼈다. 일주일 비워 둔 집을 들어서니 발바닥이 시릴 정도로 차갑다. 잠시 생각할 겨를도 없이 보일러를 켰다. 약 한 시간…바닥이 미지근해 진다. 어제 오늘도 일어나자마자 보일러를 켰다. 산골은 벌써 월동준비를 할 때가 된 것이다. 다음 월요일이나 화요일엔 난방용 펠렛을 주문하려고 마음먹고 있다.

그러고 보면 전문 농사꾼은 아니지만 일주일씩 농토를 떠나 있다오면 남들을 따라가지 못한 것 같아 괜히 불안해 진다. 다른 이들은 벌써 배추며 김장꺼리를 다 심은 모양인데…어제 아침 급히(특히 사돈어른 댁 배추밭 사진을 보고 더욱 조바심이 났었다.)제천 시장으로 나가 배추모종과 알타리, 무, 쪽파를 사다 심고 나니 한결 마음이 놓인다.

그제야 집 주위를 둘러보는 여유가 생긴다. 아이고! 이런! 이런! 불행 중 다행이다. 아래 채 뒤쪽엔 원래 큰 고목의 밤나무 두 그루가 있었는데 토종밤이라 씨알도 작고 별로 먹을 게 못 되 위채를 지으며 잘라서 화목으로 땠었다. 그리고 그 위쪽으로 수령 수백 년은 됨직한 30m는 훨싼 넘을 큰 고목이 있었는데 가끔 그 놈을 목측(目測)하며 저 놈이 쓰러지면 아래 채 지붕은 괜찮겠지….??? 했는데, 말이 씨가 됐는지 나 없는 사이 강풍이 불었는지 그 놈이 쓰러져 아래 채 텃밭(장모님 살아생전 붙여 잡숫든…)을 완전히 덮었다. 정말 다행인 것은 아래 채 지붕까진 미치지 못했다. 문제는 그 아래 실한 산초나무, 대추나무, 엄나무들이 완전히 압사(壓死)를 했다. 더 다행인 것은 마누라의 역작(?) 된장과 고추장, 간장 항아리는 무사하다.

 지금 앞산(천등산이 아닌…)너머로 해가 꼴깍인다. 가끔 나를 아는 어떤 이들은‘산골에서 뭣하고 지내느냐?’고 묻는다. 어떤 답이 정답인지는 모르겠다. 오가다 이런 싯귀가 있다는 걸 안다. 이게 답이었으면 한다.

靑山兮要我以無語 (청산혜요아이무어)

청산은 나를 보고 말없이 살라하고

蒼空兮要我以無垢 (창공혜요아이무구)

창공은 나를 보고 티없이 살라하네

聊無愛而無憎兮 (료무애이무증혜)

사랑도 벗어놓고 미움도 벗어놓고

如水如風而終我 (여수여풍이종아)

물같이 바람같이 살다가 가라하네

靑山兮要我以無語 (청산혜요아이무어)

청산은 나를 보고 말없이 살라하고

蒼空兮要我以無垢 (창공혜요아이무구)

창공은 나를 보고 티없이 살라하네

聊無怒而無惜兮 (료무노이무석혜)

성냄도 벗어놓고 탐욕도 벗어놓고

如水如風而終我 (여수여풍이종아)

물같이 바람같이 살다가 가라하네                 지은이: 나옹선사 (검색창에서 퍼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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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추 240여 포기, 쪽파 400-500쪽. 무 300여 구멍, 알타리 20여 평….이 정도면 아들딸 3남매, 서울 집 또 아곳 내 것까지 충분….IMG_5078

이게 유기농의 흔적이다. 농약 한 번 안 친 결과다. 참담할 정도다. 언젠가’유기농이란 없다’라는 썰을 풀었다가 농학자라는 인간이 댓글을 달며 그 끝에 이르기를’당신 유기농 업자들에게 고발 당하고 싶냐?’며 공갈 비스무리 하게 했지만, 지금도 내 신념은 그 때나 지금이나 조금도 다르지 않다. 내가 유기농을 하고 싶어서 한 게 아니다. 게을러서 농약 줄 시간이 없었기 때문이다. 그게 유기농 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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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직도 이런저런 수확물들이 많이 남아있다. 매달려 있지만 게으른 탓에 그냥 방치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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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외만 해도 그렇다. 여름 내내 서울로 올려 보내기도 또 직접 내려와 따가기도 했지만 지겨운지 이젠 덜 먹는단다. 다음 주 마누라 내려오면 참외 짱아치나 만들어 보라고 할 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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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나무에도 제법 실한 배가 매달려 있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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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숭아 나무에도 잔뜩 복숭아가 매달려 있지만 그냥 방치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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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지가 부러지도록 사과도 매달려 있지만 누구도 흥미가 없고 손을 안 댄다.

 

정작 오늘의 썰題 ‘여유‘는 이런 것에서 찾고 싶다. 예전 같으면 없어서 못 먹을 것들이 넘쳐나 건드리지 않는 그게 산골살이의 여유인 것이다. 당신들은 이 여유로움이 부럽지 않으신가? 이게 산골살이의 진정한 재미 아니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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