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대중 칼럼] 박근혜의 ‘죽어서 사는 길’ 독후감.

출처 : http://news.chosun.com/site/data/html_dir/2017/09/25/2017092503019.html

 

산골에 살면 매일 거미줄 한두 개는 발견한다. 마치 무슨 레이더망처럼 촘촘한 거미줄에 걸린 곤충의 사체를 보면 분명 가련한 생각이 든다. 어쩌다… 아프리카 세랭게티 초원까지 갈 필요 없다. 약육강식(弱肉强食) 이 단어면 충분하다.

 

거미줄에 걸릴 때 그곳을 벗어나려고 얼마나 몸부림을 쳤을까? 거미줄에 걸리는 것은 거의 거미보다 몸집이 작은 곤충이지만, 아주 이례적으로 거미 보다 훨씬 어쩌면 거미를 쪼아 먹을 수 있는 새가 걸려드는 때도 있다. 거미 따위는 언감생심(焉敢生心)… 그런데 날개 짓을 잘못 했거나 방심을 했거나,,,참으로 가련하다.

 

새가 거미줄에 걸릴 줄 상상이나 해 봤는가? 그런데 그게 팩트고 현실이다. 거미줄에 걸린 모든 것들은 돌돌 말려 있다. 빠져 나가겠다고 얼마나 몸부림이나 발버둥을 쳤을까? 아주 가끔은 벗어나는 놈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몸부림치면 칠수록 옥죄는 게 거미줄이다. 때론 금방 걸려 퍼덕이는 놈들도 있다. 그러나 시간이 오래 가지 않는다.

 

비행을 잘못 하다가 걸린 놈을 그 자리에서 방생(?)하면 창공으로 날아오르지만, 조금이라도 시간이 지체한 놈은 일껏 살려 주어도 파닥 꺼리다 숨이 넘어 간다. 이미 시간이 너무 경과한 것이다. 요즘 말로 골든타임을 놓친 것이다. 가련하고 불쌍한 새여!!!!

 

최고 권력은 새와 같은 존재다. 권력을 잡고 있을 때 잘 썼어야 했다. 본의든 아니든 방향을 잘못 잡은 비행이었다. 불의(不意)로 거미줄에 걸렸을 때 거미를 먼저 쪼았어야 했다. 그런 수순을 밟지 않고 이제와 후회 하고 있는 것이다. 문제는 걸린 지 오래 되었지만 아직도 숨이 붙어 있는 모양이다. 그러나 이미 얘기 했거니와 몸부림치면 칠수록 악마 같은 독거미의 촉수에 빠져 나올 수 없다.

 

나는 종교를 믿지 않지만 보시(布施)라는 말이 있는 모양이다. 가련한 중생들에게 무엇이든 베푸는 것을 말하는 것인데 구제를 목표로 삼는 이타(利他) 정신의 극치라는 사전적 의미가 있는 모양이다.

 

몸부림 쳐도 빠져 나올 수 없다면. 설령 빠져 나와도 시간이 경과하여 힘을 쓸 수 없다면 자아(自我)를 희생하고 보시하는 심정으로 국가와 국민을 살리자는 의미심장한‘김대중 고문’의 칼럼 독후감이다.

 

끝.

 

덧붙임,

친朴. 반朴 양朴으로 나뉘어 대갈朴 깨지게 싸우다 쪽朴 찼으면 됐지, 그것도 모자라 광朴들은 비름朴(벽(wall)’의 갱상도 사투리)에 똥칠 할 때까지 오로지‘朴’朴께 모른다. 너무들 그러니 이젠 천朴 한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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