죄 짓고 살지 말자!

P와의 인연은 내 인생의 전환점이었다. 그와의 인연이 오늘의 나를 있게 했다고 단언할 수 있다. 인천 모처에서 하꼬방 같은 공장을 하고 있을 때 P를 만났다. 100% 수출로 공장을 꾸려 나갈 때 그는 내가 거래하던 선박회사의 담당이었다. 내 공장의 담당으로 왔을 때 그는 그야말로 사회 초년생인 프레쉬맨이었다. 그가 담당으로 배치 될 때만 하더라도 공장은 그야말로 굴러간 게 아니라 날아갔다. 수출물량이 하꼬방 같은 공장에 비하면 엄청난 물량의 컨테이너가 소용되었다. 매월 선임으로 지불하는 금액이 클 수밖에.

 

수년을 잘 유지해 왔다. 여러 가지 사정으로 공장에 어두운 그림자가 드리우고 부도가 날 때 다른 것도 다 그러했지만 P가 근무하는 선사(船社)에 지불하지 못한 거액의 선임이 문제였다. 정말 붙임성 있는 친구였고 매사에 의욕적인 친구였는데… 나 때문에 다니는 회사에서 불이익을 당하거나 기가 꺾일 수 있다는 생각에 어떻게든 구제해 주고 싶었다. 거액의 부도를 냈지만 부정수표 단속법 위반 법집행 유예기간 동안 모든 수단과 방법을 동원하여 그 친구가 다니는 선사의 부도를 깨끗이 정리해 주었다.

 

아무튼 5-6년 지난 후의 김포공항. 재기를 꿈꾸며 독일 프랑크푸르트로 출장을 가는 길이었다. 출국 게이트 앞에서 이런저런 상념에 잠겨있을 때 누군가가 내 어깨를 살짝 건드리며“혹시 오 사장님 아니십니꺼?”라며 거친 부산사투리로 말을 건 낸다. 돌아보니 세상에…P다.

 

그 반가움이란…수인사를 닦고 알고 보니 그도 같은 목적으로(당시 프랑크푸르트엔 세계적으로 가장 큰 소비재 전시회가 매년 개최 되었었다)같은 비행기를 타게 되었다. 내가 그에게 끝까지 지켜 준 의리(?) 또는 신용 때문에 회사 생활을 잘할 수 있었고 과장 승진까지 하고 무역꾼들의 뒤치다꺼리만할 게 아니라 본인도 직접 무역을 해 보고 싶어 모 중견 업체로 이직을 하여 당시는 이사(理事)직함을 가지고 같은 목적지로 출장을 가는 길이었다.

 

업종은 달랐지만 전시회기간 동안 같은 호텔에 머물며 동거인처럼 붙어 다니며 업무를 마치고 호텔로 돌아오면 독일맥주로 지참한 우리 소주로(옛날엔 견본 발송 시 팩소주와 오징어를 함께 발송했었음)목을 축이며 정말 많은 얘기들을 나누는 가운데 그가 나를 중국진출(그가 다니는 회사는 한. 중 수교 전부터 진출해 있었음)로 인도했고 그런 과정에서 그의 도움이 정말 컸었다. 그 후로 그와는 호형호제를 하며 돈독한 관계를 유지해 오고 있다.

 

만약이라고 가정해 보자. 그에게 실망을 안겨 주었더라면? 그날 김포공항에서 멱살잡이를 하지 않았을까? 출장은커녕 출국과정에서 개망신을 당하지 않았을까? 설령 개인적으로 그런 과정이 없었더라도 그가 내게 어떻게 대했을 것인지 미루어 짐작이 가고도 남는다. 특히 오늘의 내가 있도록 인도하고 도움을 받을 수 있었겠는가? 죄 짓고 살지 말자는 얘기다.

 

오래 전 중국 출장에서 우연히 수집한 견본을 아내의 가게에 진열한 결과 어떤 업체가 보고 그기에 자신들의 디자인을 보탠 새로운 견본이 某홈쇼핑에서 대박을 쳤다는 것이다. 완판. 그 방송을 캐나다에서 인터넷으로 보았다. 속으로 재 주문이 있을 거라는 예상은 했지만, 귀국하자마자 예상대로 첫 주문 보다 량은 많지 않아도 또 주문이 왔다. 여독도 풀리기 전 급히 중국엘 왔는데… 워낙 수요가 많지 않은 아이템이라 지난번에 거의 싹쓸이 하다시피 해서 동일 제품을 아무리 찾아도 구할 수가 없다.

 

가로250m x 세로250m 정방형의 상가건물엔 수천 개의 상점들이 들어서 있다. 이틀째 돌아다녔지만 구하고자 하는 아이템은 눈에 뜨이지 않는다. 낭패다. 간단하게 물건이 없다고 통보하면 그만일 수도 있다. 아무리 뒤져도 없는 물건을 직접 만들 수도 없고….그러나 상도의가 그렇게 무책임 할 수 없는 것.

 

얼마나 돌아다녔는지 70 노구의 다리에 쥐가 오를 것 같아 상가 안의 쉼터 벤치에 잠시 앉아 쉬며 바로 앞의 어떤 상점 안을 초점 잃은 눈으로 바라보고 있는데 어떤 여인네와 눈이 마주쳤는가 싶었는데 그녀와 내가 서로 이구동성으로‘어!?’라며 놀라워했다. (10년은 훌쩍 넘은 듯하다. 보따리장사를 할 당시 모든 제품은 산동성 칭따오(물론 주거지와 사무실도…)에서 구입하고 국내로 보내졌었다. 당시 나의 주 거래처였고 그들과 나는 다른 상인들의 질시나 부러움의 대상이 될 만큼 큰 거래를 했었다. 역시 작지만 오늘의 내가 있도록 기여한 업체다. 뿐만 아니라 그들 또한 내가 있었기에 얼마간의 부를 창출하고 지금은(어제 들은 얘기로…)칭따오에서 취급하는 업종 중 가장 큰 업체가 되었다고 자랑한다.)

 

반가움이란….서로 악수도 모자라 허그를 하고…어쨌든 부부가 함께 물건구입을 하러 지금 이곳에 와 있단다. 정담을 나누고‘칭따오에 놀러 와! 한국에 오면 크게 대접하마! 니 외이프 안 늙는다. 너도 그대로다’등 서로를 격려하며 상점 안을 훑어보는데, 세상에~! 내가 구하고자 하는 제품이 그곳에 있다. 오~! 하느님! 그들과는 재회를 약속하며 헤어졌다.

 

원하는 수량의 4분의3밖에 없다. 그리고 가격이 서로 상충 하고 있다. 그렇지만 나는 그곳에 처음 가는 상점이지만 그들이 나(아내)의 크기를 엄청 소개해 준다. 즉, 첫 거래가 얼마나 중요한지를 설명해 주며 가격의 접점을 찾으라는 조언을 해 준다.

 

날이 새면 나머지 4분의1 발품을 팔아서 찾아 나설 것이다. 가격은 어떻게든 접점을 찾을 것이다. 설령 밑지는 한이 있어도 우리 물건을 찾는 고객에게 편의를 제공할 것이다. 문득 그런 생각이 뇌리를 친다. 내가 그들에게 죄 짓지 않았기로 황천후토 천지신명이 나를 그 벤치로 인도 하신 것이다. 또한 죄 짓지 말고 살자는 얘기다.

 

덧붙임,

오늘의 나를 있게 한 P를 안 만난 지 3-4년 된 거 같다.

큰아들 놈이 장가갈 때가 됐는데….

이번 계기로 귀국하면 연락 한 번 해 봐야겠다.

말로만 죄 짓지 말라고 하며 내가 너무 무심했다.

4 Comments

  1. 백발의천사

    2017년 12월 12일 at 10:21 오전

    오늘의 이야기는 참 감동적입니다.
    저도 선박회사에서 40년을 근무했습니다. 우리나라 컨테이너 초창기에 고생 좀 했던 사람입니다.ㅎㅎ
    참 잘하셨네요. 당시 부도 후의 뒷정리에 얼마나 힘들었겠습니까? 그런데도 한 젊은 사람의 앞길을 막지 않은 건 정말 잘한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오선생님 말씀대로 오늘의 오선생님을 있게 한 사람이라는 표현이 과장이 아닙니다. 인과응보(因果應報)라는 말이 있지 않습니까?
    죄지으면 나중에 벌(罰) 받습니다. 노자의 도덕경에 나오는 말이라고 하지요. 천망회회 소이불루(天網恢恢 疎而不漏) – 하늘의 그물은 성긴 듯 해도 무엇 하나 빠트리는 법은 없다. 살아 보니 틀린 말이 아니더군요. 지금 저 수많은 죄 짓고 있는 사람들, 후일 언젠가 벌 받을 겁니다.

    • ss8000

      2017년 12월 13일 at 3:13 오전

      아! 그러셨군요.
      선사에 근무하신 화이트 칼라…
      저는 당시 은행원과 선사에 근무하는 분들이 제일 젠틀하게 보였습니다.
      은행원은 대출 때문에…ㅋㅋ…
      선사에 근무하는 양반들엔 船腹을 확보 하느라….

      무역을 배울 초창기 땐 배 잡으러 다니는 거부터 배웠습니다.
      초창기엔 컨프런스냐 난칸이냐를 두고 고민도 하고…
      이젠 무역용어를 다 잊어 먹었지만,,,, 존경할 직군에 계셨군요 ㅎㅎ….

      정말 P에게 많은 신세를 지고 도움을 받았습니다.
      저는 지금 중국에서 잠이 안와 꺼적이며 자판을 두들고
      있습니다. 귁ㄱ 하면 정말 P에게 전화라도 하고 오랜만에
      식사라도 하려고 합니다.

      제 진의에 공감해 주시니 감사할 따름입니다. 꾸벅~!^^

      • 백발의천사

        2017년 12월 14일 at 11:15 오전

        아이고 젠틀이라니 당치도 않습니다. 거의 노가다 였지요. 부산 갯가에서 겨울이면 칼바람 맞고 여름이면 땀 범벅이 되어 몇달동안 쉬지도 못하고 그저 수출 수출 하면서 청춘을 보냈었죠. 그래도 지금 생각해 보면 우리나라 이만큼 먹고 사는데 손톱 만한 기여는 했을 겁니다. 알아주든 안 알아주든 저 스스로 그렇게 생각하고 살아갑니다 ㅎㅎㅎ 오선생님 같은 분들이 있어 오늘날 우리나라 경제대국(?)소리 듣고 있지요. 젊은 세대들 그걸 모르니…. ㅠ ㅠ

        • ss8000

          2017년 12월 14일 at 2:38 오후

          별 말씀을…
          언제나 분에 넘치는 과찬으로 사람 몸둘바를 몰라 하게
          하시는 재주를 가지셨습니다.

          하긴 젊은 시절 정말 땡전 한 닢이라도
          외화 벌리 하는 데 정열을 바쳤습니다.
          그리 벌어들이고 안 쓰고 했는데…

          이 足같은 빨.갱.이들이 저희 상전 놈에게 무상으로
          마구 퍼주기 하는 바람에 나라꼬라지가 요모양 요꼬라지로 전락했습니다.

          우리가 맨날 이곳에서 이럴 게 아니라
          어디 해장국이라도 한 사발 술국으로 놓고 회포나 풀어야 할텐데….

Leave a Reply

이메일은 공개되지 않습니다. 필수 입력창은 * 로 표시되어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