절이 싫으면 중이 떠나야….

정확하다면 그해가 1977일 것이다. 병역 의무3년 여 남짓 후 군문을 나오고 첫 직장을 들어 간 지 4년 쯤 되던 해였다. 그리 크지 않은 중소업체였지만 매년 수출의 날 기념식 때 단골로 표창을 받을 만큼 탄탄한 회사였다. 본사는 소공동의 모 빌딩, 1공장은 구로동단, 2공장은 충남천안에 3공장은 충남 온양 그리고 해외 공장은 스리랑카에

 

어느 날, 기약할 수 없지만 1~2년만 2공장 파견근무 발령이 났다. 물론 파견지에서 나름 열심히 근무하고 있을 때 국가의 시책에 의해 새로운 법을 실시했는데 그게 바로부가가치세법이었다. 이전에 없던 생소한 법을 실시하기 전, 전국의 관계자들을 각 지방의 일정한 장소에 모아 교육을 시키고,,,,,아무튼 처음 실시되는 법이라 많은 혼란과 부작용이 발생되던 시기였다.

 

내가 그 해를 기억하는 것은 개인적으로 두 가지의 큰 사건(?)이 있었기 때문이다.

 

첫째,

마음에 내키지 않은 공장에 파견근무를 갔다가 그곳에서 아내에게 첫 눈에 반해 파견이 아닌 정식발령을 요청 하고 몇 년을 쫓아다닌 끝에 소원을 이루고 사내 결혼까지 꼴인 한 해.

 

둘째,

부가가치세가 실시되며 이런저런 부작용(?)이 파생되며 본사로 보내 진 회계 상의 서류 하나 때문에 당시로는 거금인 수백만 원의 추징을 당한 사태가 벌어진 것이다. 그런 사태가 벌어지기 전 본사의 회계부서에 자료를 차질 없이 준비하고 보내주었건만 해당부서의 장과 직원(물론 나 보다는 상위직급)이 처음 실시되는 부가세에 대한 개념의 숙지를 잘못했는지 어떤 과정을 하나 간과한 결과다.

 

그러나 아무리 내 잘못이 없다고는 하지만 본사와 지사 그것도 직급이 한참 낮은 나와 싸움(?)이 되질 않았다. 청천벽력이었다. 결국 모든 잘못은 나 오병규 개인의 잘못으로 낙인찍혔고 그리고 본사로 호출이 되어 청문회 비슷한 추궁이 시작되며 몇 마디 변명을 널어놓을 기회도 주지 않았다. 또 변명을 한들 소용도 없었다. 그리고 청문회가 끝 난 다음 중역실에 따로 불려가 전말서(顚末書)각서를 쓰게 되었다.

 

재미난(?)사실은, 회장님과 사장님 그리고 또 다른 중역 두 분 그리고 나와는 본사 근무 시 호형호제하며 정말 친했던 경리과장님 등이 배석하였고, 사장님께서 불러 주는 대로각서를 써 내려가기 시작했다.

 

잠깐! 사장님은 회장님의 부인되신다. , 회장님의 사모님이 아닌 사장님 자격으로 내게 각서를 써 게 하는 거다. 각서의 내용을 이 자리에서 다 밝힐 순 없고, 일반적인 각서 양식에 사장님의 의사(意思: 나 자신의 의사는 완전 배제 된)100% 포함된 그런 각서. 각서의 중간에 이런 대목이 있었다따라서 본인은 회사에 끼친 손해액을 매월 일정부분 급료에서 공제하고…”, 이것저것 사장님 말씀대로 써 내려가던 볼펜이 그 대목까지 쓰고 나니 갑자기 머릿속으로부터 쥐가 나가 시작하는 것이었다. 그리고 서툰 계산으로 암산을 해 본즉 그 금액을 몽땅 상환하려면 월급을 한 푼 집에 안 가져가도 10, 회사의 하해 같이 너그러우신 배려로 반을 가져가면 20년 가까이 걸리는 것이었다.(당신 내 월급이 38천원이었던 것도 기억한다.)

 

! 내 인생 조졌구나! ! 내 인생이 이렇게 종을 치는 구나. 그리고 부모님께 효도는 둘째 치고 만삭의 마누라가 눈앞에서 아른 거렸다. 그 순간, 그동안 써 내려왔던 그 소중한 각서를 박박 찢으며사장님! 저는 이 각서 못 쓰겠습니다. 회계부장님이나 경리과장님 체면을 봐서 제가 덤터기를 쓰기로 했지만 이렇게는 못하겠습니다. 저는 이 사간부터 이 회사 직원이 아닙니다. 법대로 하십시오.”

 

그리고 벌떡 일어나 청문회장(?)을 나오려는데….사장님 왈, “아이고! 젊은 친구가 성질머리 하고는,….Mr. ! 내가 어떻게 하는가 보려고 그랬어!”라며 날카롭게 외치시는 것이었다. 거짓말 같지? 토씨 하나 거짓말 한 거 없다.

 

그 사건(?)의 전말을 전부 옮길 수는 없고, 나는 그날 임원이 아닌 직권 높은 부장님. 과장님 하다못해 몇몇 대리님들의 영웅이 되었고 그날 퇴근 후 그 양반들의 호위를 받으며 청계천에 있었던 아마존이라는 극장식 클럽으로 모셔져 코가 비뚤어지게 마시고 즐겼다는 사실.

 

그런데 우리 사장님 뒤 끝이 길더만. 입사동기들은 승진도 승급도 되는 데 나는 그 게 안 되는 거였다. 직장생활의 재미라는 게 그거 아닌가? 도저히 희망이 없어 보이고 1년 가까이 더 근무를 하다가내 더러워서 월급쟁이는 안 한다그리고 사표를 던지고 그 지긋지긋한 소굴을 빠져 나온 후 나름 홀로서기의 시작이 되었던 것이다.

 

박창진 등 대한항공 직원들, “대한항공 총수일가 물러나야

조씨 일가 몰아내자

 

나는 대한항공의 조씨 일가의 갑질이나 행태를 추호도 두둔하고 싶은 마음은 없다. 정말 선대가 이룬 업적을 이런 식으로 하루아침에 몰락의 위기에 빠트린 조某회장과 부인 애새끼들정말 저주를 마구 퍼 붓고 싶다.

 

그러나 어쩌자는 겐가? 어쨌든 저들의 목구멍에 풀칠을 시켜준 고마운 회사고 창업자의 가족이고 후손 아니던가? 특히 땅콩회항사건으로 이름을 날리고 유명인사가 된 것들이 아직도 그 회사에 있었단 말인가? 총수 가족으로부터 사과도 받고 일정 금까지 챙긴 자들이 아직 근무하고 있었어? 그리고 중심에서조씨 일가 몰아내자, 정말 세상에 없는 육두문자로 욕을 해 주고 싶고 옆에 있으면 나중 어떻게 될 값이라도 가래침과 귀쌈을 올려붙이고 싶다.

 

나는 그 친구 개인을 두고 하는 얘기가 아니다. 그 친구를 봄으로 오늘날 우리네 젊은 세대의 민낯이 그대로 그려지는 것이다. ‘은혜를 모르는 금수 같은 세대, 챙길 것 다 챙기고도 못 살겠다며 사회를 원망하는 세대, 자신에게 조그만 불이익만 닥쳐도 못 참고 선동 질에 발끈하는 비열하기 짝이 없는 세대,’ 이 모든 게 좌편향 교육, 좌편향 이념이 만들어 낸 참담한 결과물이다. 한마디로 종북 빨씨들을 믿고 천방지축 날뛰는 홍위병 시대가 된 것이다.

 

물론 재벌가의 갑질에 억울도 하겠지. 기분도 억수로 더럽겠지. 그러나 생각을 달리할 수 없는가? ‘억울하면 출세하라는 말이 있지 않던가? 재벌이 되라는 얘기가 아니다. 최소한 어떤 갑질에도 유연하게 대처하고 태연할 수 있는 마음가짐 정도는 가져야 하지 않을까? 솔직히 저런 무개념의 젊은 세대들은 선동질에만 능할 뿐 할 수 있는 게 아무것도 없다. 저렇게 살다 그 자식 또 그 자식들에게 답습을 시킬 것이다. 마치 518을 우려먹듯 세월호를 우려먹듯 하는 지저분한 세대들. 나는 이 점을 두렵고 안타깝게 생각하는 것이다. 문득….

 

절이 나를 구박하고 개gr떨더라도 슬퍼하거나 노여워하지 말라! 슬픈 날엔 참고 견디라. 즐거운 날은 오고야 말리니. 마음은 미래를 바라느니 현재는 한없이 우울한 것, 그래도 참을 수 없으면 그냥 조용히 떠나면 되는 것이다.

 

절이 싫으면 중이 떠나는 것이다. 그리고 정정당당하게 삶을 살아가자! ~~~!!!

2 Comments

  1. 데레사

    2018년 5월 2일 at 9:36 오전

    갑자기 푸쉬킨이 되셨네요.
    삶이 그대를 속일지라도 슬퍼거나 노여워 하지 말라…..

    그렇습니다.
    갑질 좀 한들 기본적으로 월급만 꼬박꼬박 나온다면 참아주는것도
    나쁘진 않을것 같아요.

    • ss8000

      2018년 5월 2일 at 10:14 오전

      갑질이 더럽고 아니꼬우면
      LA! 더러운 것들… 하고 가래침 한 번 뱉고
      나오면 됩니다. 그게 안 되면 참아야지요.

      꼭 못난 놈들이 기 나가지도 못하며
      더러운 건 참을 줄 모르고 개수작 부린다니까요.
      욕을 하던 뭐 개gr을 떨던 나와서 해야 하는 거 아닙니까?
      밥은 처먹어가며 저 gr들 합니다. 요즘 젊은 아새끼들이
      몽땅 저 모양이라니까요. 아이고! 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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