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재(仲裁 또는 和解)의 정석(定石) 1부.

여포는 대로했다. 큰소리로 졸병에게 영을 내린다.“내 창을 가져오너라!”졸병이 두 손으로 눈이 부신 방천화극을 받들어 올린다. 여포는 방천화극을 잡고 벌떡 일어선다. 현덕과 기영의 얼굴빛이 노랗게 질렸다.“나는 너희 두 집 보고 싸움을 하라는 것이 아니라, 싸움을 하지 말라는 것이다. 그러나 말을 듣지 않으니 천명(天命)에 맡길 수밖에 없다! “여포는 말을 끝내자 졸병에게 방천화극을 넘겨주며 다시 명한다. “이 창을 원문 밖150보 떨어진 곳에 꽂아라!” 여포는 현덕과 기영을 돌아보며 일갈한다. “내가 한 번 활을 쏘아 창끝 옆구리에 달린 작은 곁가지를 맞힌다면 당신네 두 군대는 즉시 군사를 거두고, 맞히지 못하면 당신들 소원대로 대그빡이 깨지도록 싸우시오. 만약 내 말을 거역하는 자는 내가 처치하겠소!”

 

위 대목은, 서기196년(단기2529년, 중국 漢헌제 건안 원년, 신라 내해이사금 원년, 고구려 고 국천왕 18년, 백제 초고왕 31년)여포가 유비와 원술 간에 벌어진 다툼에서 전투가 벌어지기 전 두 군사를 화해시키기 위한 제스쳐 였던 것이다. 어쨌든 행인지 불행인지 모르지만, 여포가 쏜 화살은150보 밖에 세운 여포의 방천화극 곁가지를 맞추었고 여포의 서슬에 놀란 양군은 철수하여 각자의 근거지로 돌아갔던 것이다.

 

젊은 시절 로망이었던 전원생활을 해 보겠다고 산골로 들어온 지 9년차다. 처음 이곳에 올 때는 원주민과 이주민이 4 : 6정도였는데 워낙 살기 좋은 골짜기라 그런지 근간 이르러 6 : 4 아니면 7 : 3 정도로 구성비가 바뀌었다. 처음 올 때만 하더라도 인심 좋은 산골이 가구 수가 자꾸 널어나고 각지의 사람들이 모여들다 보니 소소한 감정싸움과 끼리끼리 모여 편파를 이루는 모습이 역력하다. 여기까진 그래도 사람 사는 곳이라면 어디든 이런 현상이 일어남으로 그러려니 할밖에….

 

문제는 내 집을 중심으로 가까이 사는 집끼리 아무것도 아닌 일로 원수처럼 지내며 왕래는커녕 매일 얼굴을 맞대며 요즘 애들 표현으로‘흥~! 칫~! 뽕!’이다. 우선은 중간에 끼인 나 자신이 제일 불편했다. 누구의 편을 들 수도 또 다른 한쪽을 무시할 수도 없는 처지였다. 더 난처한 것은 양쪽에서 각각 마치 나를 끌어들이려는 듯 이런 저런 행사(? 하다못해 식사라도…)에 초대를 하는 것이다. 그럴 때마다 마치 무슨 도둑질이나 하는 것처럼 다른 한 쪽 몰래 초대 장소에 잠입하다시피 했고, 상대가 한 번 초청했으면 반대로 내가 초청을 할 때 역시 내 돈 주고 식사를 하며 각각의 눈치를 봐가며 대접을 한다는 게 여간 불편한 게 아니었다.

 

첫 번째 사례: 이 반장 형님과 이PD.

제목에 보듯 이 반장은 원주민이고 이PD는 지금은 은퇴했지만 某공영방송 음악담당이었다. 이 반장 형님은 나보단 아홉 살 많은 양반이고 이PD는 나 보다 4살 아래지만 이곳에 터(은퇴 전엔 주말에만…)를 잡은 게 10년 이상 먼저 선배 격이다. 집 앞 개울 건너에 있는 두 집은 거의 붙어 있다시피 했고 사이가 원만 했다. 이 반장은 터주 대감으로 마을로 이주해 오는 초보자들에게 기초 농법을 알려주고 때론 그들의 작물을 캐어해 주며 얼마씩 대가를 받아 용돈을 한다. 그런데 그 용돈 지불(7만원 분명 기억한다)이 문제가 됐다. 이PD는 준 게 틀림없는데 이 반장 형님은 받은 적이 없다는 것이다. 결국 두 집은 그것으로 견원지간(犬猿之間)이 되고 말았다. 미리 밝혔지만 식사초대를 가끔 따로 한다. 그럴 때마다 몇 차례인가 두 집안에 화해를 종용했다. 그러나 두 집안 다 막무가내였다.

 

언젠가 이PD는 자신의 서울 집에서 장롱을 싣고 내려왔다. 부인이 있지만 둘이는 도저히 어찌할 수 없는 것이었다. 내 집 거실에서 보니 아침에 내려온 장롱이 해질녘까지 그대로다. 빤히 보이지만 일부러 돕지 않았다. 옆집 이 반장 형님이 힘을 보탰으면 거뜬했지만 반장형님도 그 옆을 하루 종일 스치며 못 본채 한다. 그런데 저녁나절 천등산 등산을 끝내고 하산하던 최공이(성이 최씨며 공기업에서 퇴직한 후 새 집을 짓고 이주한 지 얼마 되지 않는, 이PD집 위쪽으로 개울 건너의 신참. 내게는 형님 하며 깍듯한 아우님이다. 미리 밝히지만 중재의 정석 2부에 나오는 인물이다.)이PD와 몇 마디 나누는 듯 하더니 그 무거운 장롱이 집안으로 금방 사라지는 것이었다.

 

그런 일이 있은 후 며칠 뒤 이PD의 초대로 저녁(외식)을 함께했다. 반주도 겸한 식사자리에서 말을 꺼냈다.‘며칠 전 장롱을 어쩌지 못해 쩔쩔매는 거 하루 종일 지켜보았다는 것과 이렇게 먹을 저녁식대에 조금만 보태면 7만(마을에 소문이 퍼진 상태)원이 될 텐데 그깟 7만원이 뭐라고 반장형님과 반목을 하며 기왕 도시생활 했던 우리가 양보를 하는 게 낫지 않을까? 정 7만 원이 아까워 그런다면 내가 주겠다. 그래도 가장 가까운 이웃이 반장형님네 아니냐?’며 설득을 시켰다. 두 집안은 며칠 뒤 우리 집에서 삼겹살 파티하며 화해를 했고 현재는 두 집안이 죽고는 못살 만치 가까이 지낸다.

 

두 번째 사례: C형님과 S

C형님은 노인 회장이었다. 호칭이 형님(10여 세 많음)이지만 노인회장님을 오래 한 양반이다. 마을의 동편 맨 끝에 C형님과 S(나와 동년배)는 살고 있다. 두 집은 거의 붙어있다. 외지인인 C가 집을 지을 때 C형님의 호소(? 혹시 화재라도 나면 걱정스러운 나머지…)를 무시하고 측량 나온 대로 집을 지어버리며 두 집안은 앙앙불락(怏怏不樂)하는 사이가 된 것이니 햇수로 10년도 훨씬 넘는 원수지간이었단다.

 

수년 전 큰 비로 인해 두 집안이 사는 곳에 농경지가 유실이 되고 길까지 무너져 내려 새 길을 닦기 위해 측량을 해 보니 기존 있던 길이 C형님의 개인사유지로 밝혀진 것이다. 그런데 위치상 새 길을 닦으면 S의 집과 땅은 거의 맹지가 되고 만 것이다.

 

당연히 입장이 바뀔 수밖에. 이번엔 S가 C형님의 꽁무니를 따라다니며 양보를 요구했으나 10여 년 넘게 앙앙불락했던 사이가 쉽게 해결 될 리가 없었다. 사실 C형님 입장에선 그 땅 사용도 않는 것이고 몇 평 양보한다고 어찌되는 것도 아니지만 오래된 감정싸움이 S를 애타 게 만드는 것이었다. 그러나 누구도 두 집안의 감정싸움을 중재하는 이가 없었다.

 

재작년이던가? 무슨 행사가 있어 마을회관에 주민이 모였는데, 식탁이 차려지고 술잔도 몇 순배 돌아갈 때 S가 늦은 발걸음을 했다. 그런데 가는 날이 장날 아니면 원수는 외나무다리라든가? 마침 비어 있는 한 자리를 차지한 게 C형님 바로 맞은편에 앉게 되었는데, 어찌어찌 술잔이 돌아가는 과정에서 감정의 찌꺼기가 폭발을 했는지‘당신 말이야!…’어쩌고 하는 고함 소리가 들리는 곳으로 눈을 돌리니 S가 C형님에게 반말을 해 가며 쥐 잡듯 하는 것이었다. 원래 C형님은 마음이 여리고 과묵한 스타일인데 S가 닦달을 하자 말 한마디 제대로 못하고 당하고 있는 것이었다.

 

배도 부르고 술도 몇 잔 걸쳤으니 먼저 퇴장하려든 찰나에 그 모습이 눈에 뜨이자 나는 분노하고 말았다. 그리고“저 개子息이….”라는 욕이 절로 튀어나오자 내 옆에 앉아 있던 최공과 또 다른 마을 아우님들이 눈을 껌뻑이며‘형님! 왜 이러슈! 나서지 마쇼!’하는 눈빛을 보낸다. 그 순간‘아냐! 저 새끼 버르장머리 좀 고쳐 놔야 해!’라고 그곳으로 다가 갔다. 그리곤 대뜸“S형(우리끼리 주고받는 호칭) 당신 말 따위가 왜 그래!? 아무리 객지 벗10년이라지만 우리 보단 10여 세 높은 형님에게 당신? 당장 사과 드려!”라며 명령조로 일갈을 했다. 마을 잔치가 갑자기 냉랭해 진 것이다.

 

가까이 가서 들어보니 얘긴 즉 기왕 마주 앉은 자리에서 S가 C형님께 땅을 좀 양보해 달라고 청을 했던 모양인데 이 자식 건방지게 형님이란 호칭은 고사하고 이름을 탕탕 불러가며 억압적으로 말을 했고 C형님 입장에서 공손한 태도를 보여도 뭣한 판에 지가 손위처럼 행동을 하니 얼마나 화가 났겠는가? 역지사지 내가 그 입장이었다면 양보는커녕 헤딩으로 놈의 면상을 박고 말았을 것이다.(사실 나는 그날 완력행사까지 각오하고 갔었다)

 

나의 그런 일갈에 힘을 얻었는지 C형님‘저 놈이 나한테 단 한 번도 형님 소리를 안 했어’라며 마치 내게 고자질 하듯 하는 것이었다. ‘아하! 그래! 이거다’ 싶었다. 호칭 하나로 상대의 감정을 녹일 수 있음에도 지 까짓게 도시생활을 얼마나 했다고, 한 참 인생선배이자 원주민을 손아래처럼 깔보았으니 화해가 될 리가 만무했다.

 

“S형! 당신! 당장 형님께 사과드리쇼! 부탁하는 주제에 큰소리치는 놈에게 나라도 양보 않겠다.”라며 큰소릴 친 후 C형님을 향해“형님! 그 땅 몇 평 있으나마나한 거라면 형님이 양보 하시는 것도 나쁘지 않겠습니다. 두 분이 그만 화해하십시오.”그러자 C형님은“저 놈이 첨부터 사람대접 했으면 그까짓 걸 내가 왜 양보 안 했겠어~!”라며 오히려 내게 호소를 한다. 그 순간 두 사람의 손을 이끌어 악수를 시켰다. 등 뒤로 박수소리와 함께‘오 사장 최고’라는 찬사가 튀어 나왔다. C형님의 양보로 지금 새 길이 잘 닦여져 있다.

 

덧붙임,

중재(仲裁 또는 和解)의 정석(定石) 첫 번째 이야기는 여기서 끝내자. 워낙 장황한 이야기라 내일 후편으로 이어야 할 것 같다.

 

화해(和解 또는 중재)에 나선다는 것은 좋은 일이다. 할 수 있다면 누구나 시도해야 하고…그러나 어정쩡하게 제 주재도 모르고 화해에 나섰다가 칼침을 맞거나 맞아 죽는 경우를 왕왕 보는 것이다. 여포는 누구도 당하지 못할 완력(腕力)과 힘을 지닌 실력자였다. 그리고 현덕과 기영의 약점을 간파하고 있었던 것이다. 두 집단의 약점을 파고들었을 때 그것이 먹히지 않으면 완력행사도 불사했던 것이다.

 

자랑이 아니라 첫 번째 사례나 두 번째 사례를 보듯 나는 두 집안의 약점이 어디에 있는지 알고 있었다. 그 점을 극대화 시켜 파고들어 화해를 성사 시켰던 것이다. 내일은 더 재미난 사연을 가지고….

2 Comments

  1. 데레사

    2018년 10월 3일 at 8:25 오전

    역시 우리 종씨님 짱이십니다.
    흥정은 붙이고 싸움을 말리라는 말, 몸소 실천하셨네요.

    • ss8000

      2018년 10월 4일 at 5:01 오전

      네, 말이 길어 집니다마는
      문재인의 화해(중재)하는법이
      너무 엉터리라 이 썰을 푸는 겁니다.

      제가 멋 진 결론을 내릴 테네 기대해 주십시오.
      누님도 아시는 이PD가 등장합니다. 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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