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웃 사람들.

산골마을의 가옥구조가 도시와 달리 띄엄띄엄 한 게 특징이지만 이 PD네와 최공의 경계는 마을 중앙을 관통하는 개울이 하나 중간에 있지만 거리상으론 20m도 채 안 되는 가장 가까운 이웃이다. 그래서 그랬던지 최공이 멋진 목조 가옥을 짓고 이주를 해 왔을 때 두 집은 정말 살갑고 가까운 사이였다. 음식도 나눠먹고 왕래하며 초대도 하고( 두 집끼리만…)… 그 때까진 나와 최공은 지금처럼 호형호제하는 사이는 아니었다. 오히려 수인사 나눌 정도밖에 안 되는 데면데면한 사이였다.

 

최공 집 뒤로 축사가 하나 있었고 그 축사 때문에 여름이면 파리나 온갖 해충이 창궐을 했다. 도저히 견딜 수 없어 다른 곳으로 이주할 생각을 하고 있던 차 마침(?) 그 축산업자가 도산을 하고 축사가 경매에 붙여진 것을 내가 낙찰을 받고 그 축사와 집을 몽땅 헐어내고 수백 차의 객토(客土)로 메꾸고 밭을 만들어 버렸다. 그런 즉 마을 분들로부터 온갖 칭송을 한 몸에 받았다. 어떤 이는 나 죽고 나면 송덕비 세워야 한다고 농담까지 한다. 물론 그로인해 또 다른 폐해가 발생할 줄은 아무도 몰랐지만….

 

현재 우리 마을만한 크기(90여 호)에 소. 돼지 한 마리 없는 마을은 전국을 통해서 없을 것이라고 장담한다. 누구든 새로 이주해 오는 사람들 중 소나 돼지 기르겠다고 하는 사람의 이주를 받아들이면, 나는 이전의 축사 터에 다시 대형 축사를 지을 것이라며 엄포를 놓았기 때문에 첨부터 들어 올 수가 없다. 어떤 이는 염소나 닭은? 하고 문의 하지만염소는 소 아니냐? 또 닭은 계란이나 뽑을 정도 아니면 사위올 때 씨암탉 정도(내 주장 대로…)로 제한했다. 아무튼 그랬던지 축사 주위에 황무지로 남아있다시피 하던 땅들이 그 후 마구 배로 뛰며 팔려나갔고 가옥이 기하급수(?)적으로 널어나며 마을이 시끄러워 지기 시작한 것이다. 물론 최공도 자신의 집 뒤가 축사였던 사실도 모르고 집을 지었고

 

내 땅(축사)과 최공 집 사이에 도로(50m 가량)가 있다. 그 도로 끝에 내가 관리하는 약80평의 시유지가 있었다. 쉽게 얘기하면 그 시유지는 최공의 사유지에 붙어있는 것이다. 아마 최공과 내가 지금처럼만 가까운 사이였다면 최공의 가옥구조가 지금 같지 않거나 위치가 달라졌을 것이다. 그런데 최공이 자신의 땅을 매입하고 건축을 하기 전 자초지종 따져보지도 않고 내게 시비를 걸어 온 것이다.

 

그 시유지 끝에는 이전 축산업자가 심어 둔 큰 잣나무와 밤나무 몇 그루가 있었다.(잣과 밤 수확이 꽤 괜찮았는데….)그런데 해가 뜨면 하루 종일 나무들의 그림자가 최공 땅에 그늘져 있었다. 어느 날인가, 시공을 하기 얼마 전 최공이 약간 험상궂은 표정 아니면 짜증스런 표정으로 나를 찾아와 향후 자신의 밭에 그늘이 지면 텃밭에 영향이 있으니 나무를 몽땅 없애 달라는 것이었다. 첫 인상에 험상 또는 짜증스런 표정으로 다가오니 괜히 겁이나아이고! 선생님 마음대로 하시오!’라고 했다.(지금 같으면 나도 짜증을 부리고 한 방 올렸을 텐데그 땐 상대방을 잘 몰라 우격다짐에 항복 했던 거 같다. 내가 이리 마음이 약하고 여린 사람이다. ㅋㅋㅋㅋ…)

 

그러나 다만내 경비로 할 수 없으니 기왕 공사를 하신다니 장비를 이용해 잘라 낼 건 잘나 내고 저 밤나무는 내 경계에 옮겨 이식을 해 주십사하고 정중히 부탁한 결과 그 기세 좋든 잣나무는 이리저리 가지가 쳐지고 윗 둥도 반은 날린 채 지금도 남아 있지만 이식한 밤나무는 뿌리를 내리지 못하고 몽땅 죽어 버렸다.(그거 그냥 그 자리 두었어야 하는데….지금은 나도 최공 아우님도 큰 후회를 하고 있다.)

 

최공이 새 집을 짓고 뿌리를 이곳에 박고 얼마 뒤 개울 건너 이PD네 집에서 신나는 음악과 함께 카라오케가 차려 졌는지(PD9개의 악기를 다루고 가끔 노래방을 차린다. 그의 부인은 누구라고하면 알만한 가수 출신이다)요란하다.

 

몇 곡인가 노래가 나오고 이PD의 흐느끼는 색소폰 연주가 두어 곡 들렸는가? 전화가 온다. 솔직히 나는 노래방 보단 이렇게 썰 올리는 게 더 취미가 있기에 그런 노래방은 좀 시큰둥 하는 편이다. ‘분위가 무르익었으니 빨리 건너오라는 이PD의 다급한 전화였다. 별로 내키지 않았지만 너무도 간절한(?) 초청이라 아니 갈 수 없어 싸구려 양주(짐 빔)한 병과 와인 두어 병(나는 양주를 못 마신다.)을 가지고 갔었다.

 

물론 최공 부부와 이PD부부가 우리 부부를 반긴다. 분위기 따라 어쩔 수 없이 노래도 몇 곡 뽑고 술도 몇 순배 돌고….그런데 갑자기 이PD가 네게 난처한 표정을 지으며~~~..”라며 말끝을 흐리더니다름이 아니고 오늘 최공이 오 사장님께 드릴말씀이 좀 있다고 해서….”란다.

나는 그 때까지 수인사나 나누는 사이었지 최공에 대해 아는 게 아무것도 없을 뿐 더 알려고도(나무 없애라며 인상 찌그린 후…) 하지 않고 그냥 목례나 나누는 이웃으로 지내고 있었는데, 갑자기 내게 무슨 할 말이…?

 

 

도대체 그 순간 무엇이었을까? 내 머리를 때리는 예감이 떠오르는 것이었다. 그 때 그 당시 표현을 그대로 하면..“잠깐! 혹시 최 선생 옆에 있는 내 소유의 시유지 때문에 그러는 거 아닙니까?”어쩌면 그것밖에 없다고 생각이 들었던 것이다. 순간 두 부부가 깜짝 놀라며, 맞아요!”라며 이구동성으로 대답을 하는 것이었다.

 

생각하고 자시고 할 시간도 필요 없었다. 다만 내 곁에 마누라가 있었다는 사실을 망각한 채좋아요! 까짓 그 땅 드리지요.”

 

그날 저녁 노래방 파티를 마치고 돌아와 마누라의 지청구를 얼마나 들었는지 지금도 귀가 얼얼하다. 그러나 이미 한 약속 마누라가 안 된다고 하니 취소하자고 할 수 없는 것. 다음 날로 최공과 함께 면소재지로 달려가 그 권리를 넘겨주는 절차를 밟고 지금은 최공의 소유가 되었고 그 후 최공은 내게 호형(呼兄)하는 것이다.(사람이 너무 착하다. 그 때 나무 베라고 인상 안 썼으면 그 나무 못 베게 했을 텐데….너무 겁이나 맘대로 하슈! 했던 게 후회 된다.^^)

 

덧붙임,

중재(仲裁 또는 和解)의 정석(定石) 2를 썰 하기 위해 미리 부연설명을 했다.

Leave a Reply

이메일은 공개되지 않습니다. 필수 입력창은 * 로 표시되어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