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식 농사.

생년불만백(生年不滿百), 상회천세우(常懷千歲憂)백 년도 못사는 인생이 늘 천년의 걱정을 안고 산다나 뭐라나….당장 제 앞길이나 앞날도 해결 못하는 인간들이 속을 들여다보면 모다 허황된 백년대계(百年大計)를 야무지게 세우는 거다. 이게 불행의 단초고 고난의 씨앗이다. 성현 소크라테스 가로되너 자신을 알라!’는 말씀에는 많은 의미가 함축되어 있는 것이다. 솔직히 우리 모두 가슴에 손을 얹고 생각해 보자. 나를 보면 마누라 자식이 보이고 가정이 보여 지지 않나? 자식의 장래가..집구석이앞날이 등등, 애써 자신을 안 들여다봐서 그렇지…., 두려운 거다. 그래서 항상 자기 성찰(省察)이 필요한 것이다.

 

3남매를 두었지만 그 아이들 커 가는 과정에서, 맹세코 말하지만공부 좀 해라라는 얘길 해 본 적이 없었다. 나 자신이 공부하기 싫어 골통 짓을 하다가 고등학교를 다섯 군데나 옮겨 다니며 겨우 졸업장을 사서 사회생활을 시작했는데, 아무리 내 새끼지만 나하기 싫은 공부를 어찌 강요하겠는가.(거짓말 아니다.)

 

따라서 아이들이 공부를 잘 하는지? 성적은 괜찮은지? 신경을 쓰지 않았다. 그런데 딸 둘은 가끔씩 장학금이라며 받아와서 자랑을 하곤 했지만, 잘했다며 칭찬을 하거나 학문을 더욱 열심히 닦으라거나 채근(採根)도 하지 않았다. 다만 세상을 살아가는 도리와 이치를 일찍이 얘기해 주었다. 예를 들자면너무 아등바등 하지 말고 좀 모자란 듯 살아라, 아빠가 살아 보니 웬만큼은 채워지더라.’(나는 지금도 주문 외우듯 아이들에게 가끔 이 얘기를 해 준다.)

 

아무튼 아이들이 고교진학 할 즈음 사업이 쫄랑 망해 도망자 신세가 됐고 큰딸아이와 작은딸은 친구네 집으로 막내아들 놈은 외가로….뿔뿔이 이산가족이 되어 한 달에 한두 번 독립투사들이 비밀리 회합을 갖듯결국 아비의 신세를 알고 두 딸은 상고로 진학하고 취업을 했고, 훗날 큰 딸은 某대학(야간)관광학과를, 작은 딸은 중국의 칭따오 대학의 중어중문학과 학사가 됐다.(훗날 형편이 풀려 큰딸은 캐나다로 작은 딸은 영국으로 유학을 다녀오지만….)

 

그래도 아들놈이라고 그랬던가 보다. 정확하게 놈이 중학교2학년 때였다. 나는 중국에 상주하고 있었고, 잠시 귀국한 때였다. 그날은 무슨 일인지 녀석에게영어책을 가져 오게 하여 읽어 보라고 했다. 세상에~~~!! 얼굴이 붉어지다 못해 비지땀까지 흘리는데 그 모습이 처참하기까지 했다. 단어 하나를 제대로 못 읽는다. 그러나 화를 내거나 야단치지 않고 책을 덮게 한 뒤 일상으로 돌아와 김병조 버전으로나가 놀아라~!’했다. 그리고 나는 그 순간 마음을 굳혔다. 날 닮아 공부할 체질이나 머리가 아니라는 걸 간파했기 때문이다. 부모의 역할은 자식의 인성이나 능력을 빨리 알아내는 게 우선이다.

 

세월이 흐르고….아들놈이 수능결과에 따라 某대학의 지방분교에 합격됐다는 것을 중국에서 들었다. 일언지하에절대 등록 하지 마라!’, 학업에 관한 아비의 첫 관심이고 엄중한 령()이었다. 그리고 군대를 빨리 지원하라고 했다. 아비의 명령에 따라 군 지원을 했지만 대기자가 워낙 많아 결국 문재인이 자랑하는 공수병(신체조건이 그곳은 받아 주겠다는…)으로 뽑혀 군문을 나오자마자 중국으로 데리고 가 1년을 어학연수 시킨 후 제 누나와 같이 칭따오 대학을 졸업시켰다. 어쨌든 유학파다. ㅋㅋㅋ…..

 

중국에 첫 발(1994)을 들여 놓고 얼마 뒤 중국이라는 나라에 대해 생각을 해 본즉, 향후 영어보다 중국어가 훨씬 대세일 것 같은 생각이 들었었다. ‘그래! 아이들에게 중국어를 가르치자.’라는 게 아이들의 장래를 위하는 길이라고 생각했었다. 그기에 더하여 영어를 부수적으로 구사할 수 있다면 저희 스스로 앞날을 개척하고 먹고 살 수 있을 것이라는 10년 계획을 세웠던 것이다. 그 계획대로 중국에서 대학을 나오자 호주로 2년씩 유학(유학이라기보다 어학연수)을 보냈다.

 

결코 자랑을 하자는 게 아니다. 중국에 갈 때나 각자 캐나다, 영국, 호주로 갈 때도 마찬가지다. ‘너희들 어려운 학문을 닦으라는 게 아니다. 기왕 가는 거 언어를 확실히 습득하라였다.

그 후의 얘기는 어떻게 됐을까? 또 자랑이 아니다. 일찌감치 은퇴하고 노후를 산골에서 유유자적하며 보낼 수 있는 근거를 그 때 만들었던 것이다. 3남매가 부자는 아니더라도 돈 걱정, 집 걱정 가장 원초적 욕구는 전혀 걱정 없이 살아가고 있다. 솔직히 나의 선택이 자랑스럽고 입가로 미소가 번진다. 가끔씩….특히 아래 같은 뉴스를 접하면…….

 

 

경찰 시험지 유출혐의숙명여고 쌍둥이 재소환 방침

출처 : http://news.chosun.com/site/data/html_dir/2018/10/23/2018102302776.html

 

, 왜 저렇게 살까?

다시 한 번 더 외치지만, “생년불만백(生年滿百), 상회천세우(常懷千歲憂)백 년도 못사는 인생이 늘 천년의 걱정을 안고 산다나 뭐라나….당장 제 앞길이나 앞날도 해결 못하는 인간들이 속을 들여다보면 모다 허황된 백년대계(百年大計)를 야무지게 세우는 거다. 이게 불행의 단초고 고난의 씨앗이다.”

 

 

부모의 과욕은 그 자식의 생애를 망친다. 오병규 어록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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