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분(名分)과 실리(實利).

 

 

실리(實利)와 명분(名分)의 두 단어를 비교해 보면, 실리라는 것은 왠지 손아귀에 무엇인가 쥘 수 있는 물체 같고, 명분이라는 것은 아무리 많이 얻어도 괜히 빛 좋은 개살구 같은 그런 생각이 든다. 어떤 일을 추구함에 명분과 실리를 공히 얻으면 금상첨화이겠으나 인간사라는 게 그리 호락하지 않아 두 것을 한꺼번에 취하기가 용이치 않다. 오히려 지나친 과욕이 실리와 명분 양쪽을 다 놓지는 경우가 더 많고 때로는 실리가 명분일 수도 있고 명분이 실리일 수도 있는 것이다. 그런즉 명분이든 실리든 한 쪽 우물을 파야지 쓸데없는 욕심을 부리다간 두 마리 토끼 다 놓지는 결과만 초래하는 것이다.

 

아무튼 여기 어떤 기사의 한 대목을 인용해 보자. 노무현(盧武鉉)대통령은19일 남북 정상회담 관련 외신기자 간담회에서 정전협정을 평화협정으로 전환할 때 북한이 남침에 대해 사죄해야 되는 것 아니냐는 질문에“전쟁을 종식할 때 사과와 배상은 패전국에 부과 되는 것”이라면서,“법적으로 얘기하면(북한은)패전한 당사자는 아니며, 우리 쪽 요구사항이 그렇다 할지라도 현실성은 없다”고 말했다. 노 대통령은“우리 입장에서는(북한의)도발에 대해 책임을 물어야 하고, 사과를 요구해야 한다는 것이 타당한 생각”이라면서“그러나 이것을 상대방에게 강요할 수 있겠느냐, 현실적으로 사과를 화해와 협력의 전제로서 요구할 수 있겠느냐, 어쨌든 그런 불일치가 있다”고 밝혔다.

 

이거 일국의 대통령 생각이 맞는지 재확인이 필요한 대목이며 진짜 그렇다면 대통령의 뇌구조를 심각히 의심해 봐야 할 것이다.

 

보따리장사 겸 코딱지만 한 자영업을 하다 보니 부도를 내기도 맞기도 여러 번 했다. 어느 누구든 부도난 어음조각을 가지고 있거나 발행했다고 가정을 해보자. 내가 채무자가 되었건 채권자가 되었건‘말 한마디에 천 냥 빚을 갚는다’지만 아무리 사죄를 하고 용서를 빌고 또 받아도 부도 금액이 보상되지 않는다면 그것은 허전하게 돌아오는 말 뿐인 것이다. 사죄만 주고 받는 것으로 채무가 탕감된다면 그 이상 좋은 것은 없을 것이다. 결국 입으로만 하는 사과는 사람으로 지켜야할 최소한의 도리이자 명분(名分)같은 것이다. 반면 부도난 어음을 전액 보상 시키거나 여의치 않으면 반 또는 반의반이라도 상환을 한다면 그것은 실리(實利)라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런데 대통령의 말을 놓고 생각을 해보자.“도발에 대해 책임을 물어야 하고, 사과를 요구해야 한다는 것이 타당한 생각“이라면 당연히 그렇게 해야 할 것이다. 그런데 무슨 맘을 먹었는지 말꼬리를 돌려 그것을 강요할 수 없다는 억지주장을 펴고 있는 것이다. 여기서 노무현이 주장하는 책임은 실리(實利)이고 사과는 명분(名分)인 것이다.

 

고요한 일요일 새벽 갑자기 전쟁을 도발하여 강토를 초토화 시키고 제 민족 수백만을 살육하는 625동란을 일으킨데 대한 책임은 전쟁이 끝난 후 그에 준하는 복구를 해주든가 피해보상을 해주는 등 물질적 보상이 요구되는 것이 책임(責任)인 것이다. 그런데 전쟁의 원흉 즉, 부도를 낸 놈들은 물질적 보상(채무)은커녕 쪽박을 차고 세계를 향해 구걸을 하는 놈들인 것이다. 현실적으로 부도를 내고 쪽박 찬 비렁뱅이 신세가 되어 구걸을 하는 놈을 찾아가 보상을 요구하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고 어불성설이다.

 

여기까지는 노무현의 생각이 맞을 수도 있다. 그나마 놈들에 비해 지난날의 아픈 추억을 잊고 열심히 노력한 결과 이제 먹고 살만하니 놈이 진 빚을 크게 인심 쓰고 탕감해 주기로 하자. 실질적 보상이 불가능하다면 죽은 자식 거시기 만지듯 어리석은 짓은 멈추고 현실적으로 가능한 것을 찾아보자는 것이다.

 

어느 날 길을 가다가 부도를 낸 채무자를 우연히 만났다.(실제 그랬다. 오히려 차비를 보태주고 또 만날까 두려워 도망치듯 빠져나온 적이 있다.) 꼴을 보아하니 형편무인지경이다. 의복은 남루하고 꾀죄죄한 몰골의 채무자를 발견했을 때, 그 자의 멱살을 잡고 흔들며‘내 돈 내놔!’라고 악을 쓸 사람이 있을까. 설령 지난 날 부도로 인한 감정 때문에 멱살을 흔드는 그런 채권자가 있어도 채무자는 다소곳하게 머리 숙이고 잘못을 빌며 사과를 하는 것이 순서 이고 인간관계일 것이다. 그런데 채무자라는 놈이 염치없게 사과는 고사하고 흉기를 내보이며 먹고 살길이 막연하다며 금품을 요구한다면 어떤 심정일까? 이상의‘썰’은 좀 비약적이지만 오늘날 남과 북의 상황이 다름 아닌 것이다.

 

사정이 약간 다르지만, 대통령이 바뀌거나 새로운 정권이 들어설 경우 대국민 립스비스를 하기 위해 해해연연 일제강점기에 대한 사과 요구하는 것을 목격한다. 오래 전 한일국교정상화로 이미 얼마간의 금전적 보상(책임)을 받았던바 그에 대한 추궁은 할 수 없고, 쓸데없는 명분을 앞세워 국민정서에 불길을 당기며 실정이나 폭정을 감추고 있는 것이다. 또 다른 예를 들자면 정신대에 끌려간 할머니들의 대일본사과 요구는 단순히 미안했다는 말 한마디를 받아내고자 함이 아닐 것이다. 그 사과(명분)에 따른 책임(실리)보상을 받아내려고 그럴 것이다. 이와 같이 책임과 사과를 분명히 할 수 있다면 현실적으로 책임(실리)추궁은 어렵다지만 사과(명분)는 얼마든지 요구하고 받아내야 하는 것이다.

 

물론 강요된 사과는 사과일 수도 없겠으나 만약 김정일이 자발적으로 진심어린 사과를 한다면 그것이야말로 김정일 스스로 화해와 협력을 하자는 확고한 의지이며 이것이 남북화해의 밑거름이요 초석이 아니겠는가? 요는 진정한 화해와 협력 또는 남북평화야말로 진정어린 사과가 전제되어야 이루어진다는 것이다. 바리바리 퍼다 주며 대가리 숙이는 것도 문제지만 그렇게 조공을 바치며 자연스럽게 사과를 유도해 내는 것이 이 나라의 대통령이나 위정자들이 해야 할 임무가 아니겠는가? 그러함에도 노무현은‘책임도 사과’도 강요할 수 없다며 헛소리를 하고 있으니, 어찌“실리도 명분도 다 잃은 노무현”이 아니라 할 수 있겠는가.

 

BY ss8000 ON 10. 21, 2007

 

덧붙임,

文대통령 칭찬하던 유럽, 고개를 갸웃거리는 이유

http://news.donga.com/Main/3/all/20181029/92625224/1

 

요즘 세간(世間: 나라라고 하기 에도 부끄러운)의 꼬락서니가 어쩌면 10여 년 전과 촌치도 다르지 않은지….결국 문재인과 그 패거리들이 아무리 개gr을 떨어도 명분도 실리도 다 놓치고 국제적 망신만 당하고 있는 것이다. 하다못해 한 아이돌 그룹이 세계적인 명성을 얻으며 국격을 높이고 있으면 그 현장을 따라다니며 깽판을 치고 있는 것이다.

 

더하여 이따금 죽은 노무현 시절의 한반도 상황 특히 남북문제를 재연(再演)하는 것은, 아무리 문재인이 노무현의 졸개라고 하지만 어쩌면 이리도 노무현의 실정(失政)을 그대로 답습(踏襲)해 나가는지 섬뜩한 생각이 들기 때문이다. 그러나 더 큰 문제는 노무현은 그래도 자신의 실정을 정제(整齊)되지 않은 단어지만 토로하며 소통해 보겠다는 의사라도 표현 했었다. 그러나 문재인은 그야말로 흰자위만 있는 듯 한 허연 눈동자를 굴리며 국민의 원성이나 불만을 완전 백안시(白眼視)하고 있는 것이다.

 

지은 죄 많음을 알고 스스로 자살한 노무현에 비하면 자신이 무슨 죄를 짓고 있는지도 모르는 문재인에겐 어떤 죄 값이 내려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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