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동격서(聲東擊西)

 

 

성명: 노판석

고향: 전남 강진

노판석은 6.25 당시 인민군의 앞잡이 노릇을 했다. 인천상륙작전이 성공하자 지리산으로 들어가 빨치산 활동을 한다. 1953년 625휴전을 전후해서 목포에서 부산으로 야반도주를 한 뒤 그곳에서 다시 산골 오지인 경남 진영으로 도망을 쳐 그곳서 호적을 새로 만들었다. 노무현의 부(父)에 대한 간략한 이력이다. 그 때가 노무현이 5살 때였단다.

 

그렇다면 노판석은 왜 빨치산이 되었나? 노무현의 조부가 일제 시대 때 일본군 앞잡이 노릇을 했기 때문이라 한다. 해방이 되자 동네 주민들로부터 엄청난 괄시와 무시를 당하게 됐다. 이에 노판석은 동네 사람들에게 큰 앙심을 갖고 있다가 6.25가 터지고 나서 괴뢰군이 전남 강진을 점령하자 괴뢰군 앞잡이 노릇을 하면서 자기 동네 사람들에게 철저한 앙갚음을 하다가 인천상륙작전 이후, 지리산에 들어가 빨치산 활동을 하게 됐다고 전해진다. (네이버 지식에서 퍼 옴)

 

성명: 권오석

고향: 경남 창원

그는 장님이었다. 태생적 장님이 아니고 술을 워낙 좋아해 막걸리를 공업용 알콜에 섞어 마시다가 실명된 것이다. 실명한 그는 6.25가 일어나기 전인 1948년에 남로당에 가입했다. 칭원군 진접면 면서기로 근무하다 625가 발발하자 진전면의 치안대장이 되었다. 제대로 부역을 하지 않은 마을 사람이 잡혀오면 손바닥을 만져보고 사람을 죽일지 살릴지를 등급별로 판정했다고 한다. 즉 손이 거칠면 무산계급이고 손바닥이 고우면 부로조아로 낙인찍어 죽이고 살리기를 했다는 것이다. 이상은 노무현의 장인 권오석의 약력(略歷)이다.(지식백과에서 퍼 옴)

 

손혜원, 나경원에 “내 아버지 함부로 입에 올리지 말라”

출처 : http://news.chosun.com/site/data/html_dir/2019/03/16/2019031600999.html

 

나경원 의원이 손혜원의 아비를 입에 올리고 안 올리고는 논외로 치자. 손혜원은 자신의 아비가 국가와 민족, 그리고 조국의 독립을 위해 목숨을 걸었던 자랑스러운 분이라고 했다 더불어 “고작 1년 남짓 몸담았던 남로당 경력으로 자신의 독립운동 경력은 무시되고 폄하된 채 평생 빨갱이 소리를 들으며 사셨다”고 악다구니를 했다.

 

그렇다면 소위 빨갱이들이 죽도록 싫어하는 ‘친일인사’들은 어떨까? 최남선. 이광수. 서정주 등등의 우리 문학의 최고봉에 머물던 기라성 같은 분들은 항일 운동을 해오며 일경에 발각되어 갖은 고초를 겪다가 36년 압제 말기에 들어서 일본의 총칼 위협에 어쩔 수 없이 천황을 칭송하는 글(송시)이라든가 학병지원관련의 글을 몇 개 남겼다하여 “친일반민족행위자”소위 친일(親日)인사라는 주홍글씨를 사후에 남기게 된 것이다. 글 한 자락 시 한 수 때문에 고국을 위해 일제와의 투쟁경력을 지워 없애며 친일이고 반민족 인사가 된 것이다.

 

단 하루를 빨갱이 짓을 해도 빨갱이는 틀림없고, 단 한 편의 시나 글 한 꼭지로도“친일반민족행위자”가 되고 마는 세상에 1년 남짓? 참으로 어마무시한 시간과 세월 동안 빨갱이 짓을 한 자를 제 아비를 두둔하는 저 몰염치(沒廉恥)함이 오히려 더 빨갱이답다. 빨갱이들은 무조건 우기고 시치미 떼는 못 된 버르장머리가 있잖아?

 

더 재미난(?)것은 2002년 5월 3일, 당시 민주당 대선후보였던‘노무현’은 장인의 묘소에 참배를 하면서 “장님(장인 권씨)이 부역을 하면 얼마나 했겠느냐”, “조금 가담하고 더 가담한 것이 무슨 의미가 있겠느냐”고 말했다. 국민을 기망(欺罔)한 것이다.

 

손혜원은 20대 국회의원이다. 그간 내용이야 어찌되었던 손혜원의 프로필 란엔 ‘무소속’이라고 소개가 된다. 이거 또한 얼마나 웃기는 얘기인가? 아무리 무소속으로 소개 되지만 무늬만 무소속이라는 건 엊저녁 난자 속으로 골인한 정충(sperm)이 안다. ‘조금 가담하고 더 가담한 것이 무슨 의미가 있겠느냐?’, 빨갱이 짓 1년 남짓이 무슨 빨갱이냐고 세상을 향해 악다구니를 하는 손혜원이 과연 정상인가?

 

그러나 그 보다 우리는 나경원 대표의 반민특위 관련에 대한 인터뷰를 곰곰이 생각해 볼 이유가 있다.

 

나 원내대표는 지난 15CBS 라디오에서 반민특위 관련 발언 논란에 대해 손 의원 부친의 경우처럼 해방 이후 자유민주주의를 부정한 세력에게 독립 유공자 서훈을 주려는 것에 대해 우려를 말한 것이라면서 “(손 의원 부친은) 해방 이후에도 대한민국에 자유 민주주의 정부가 수립되는 것을 방해한 활동을 한 것으로 돼 있다고 말했다. 나 원내대표는 같은 날 의원총회에서도 손 의원의 부친을 언급하며 해방 이후 자유민주주의 체제를 부정한 것에 대한 면죄부를 주려는 게 아닌가 싶다고 했다.

 

항우와 유방이 쟁패할 당시다. 서로 밀고 밀리는 접전 중 유방 편이었던 위(魏)나라의 왕 표(豹)가 항우에게 항복하였다. 유방은, 항우와 표가 양쪽에서 쳐들어오는 위험에 처하자 한신(韓信)에게 적을 공격하게 하였다.

 

위왕 표는 백직(柏直)을 대장으로 하여 황허강[黃河]의 동쪽 포판(蒲坂)에 진을 치고 한나라 군대가 강을 건너오지 못하게 하였다. 한신은 포판을 쳐들어가기가 쉽지 않을 것으로 여겨졌으나, 병사들에게 낮에는 큰 소리로 훈련하도록 하고 밤에는 불을 밝혀 적극적으로 공격하는 표시를 나타내게 하였다. 백직은 이러한 한나라 군대의 작전을 보고 어리석다며 비웃었다. 한신은 비밀리에 한나라 군대를 이끌고 하양에 다다라 뗏목으로 황허강을 건너서 매우 빠르게 전진하여 위나라 왕 표의 후방 본거지인 안읍(安邑)을 점령하고 표를 사로잡았다. 이를 두고 훗날 사람들은 성동격서(聲東擊西)라고 했다. 즉 동쪽에서 소란을 피우고 다시 서쪽을 먹어치우는 꼼수를 두고 하는 얘기다.

 

빨갱이 짓을 했어도‘독립유공자 서훈’을 하겠다는 문가 정권의 진정한 속내는 손혜원의 아비가 문제가 아니라“노판석과 권오석”에게도 면죄부를 주기 위한 시도일지도 모른다. 이른바 성동격서(聲東擊西) 작전. 눈 크게 뜨고 살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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