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18을 애도한다.

625사변으로 어머니는 왼쪽 팔, 형님 역시 왼쪽 다리를 대퇴부까지 잃으셨다. 그렇게 피란지에서 팔 하나 없으신 어머니는 농사일을 제대로 하실 리가 없었다. 그로 인해 할머니로부터 냉대와 함께 구박이 자심했었다. 내가 철이 들 즈음 할머니는 중풍으로 병환(病患)중 이셨다. 그렇게 7년여를 병석에 누워 계셨지만 모든 병구완은 팔 하나 없는 어머니의 몫이었다.

 

그랬던 할머니가 돌아가신 것은 내가 초등학교4학년 때였다. 사실 죽음에 대한 정의도 확실치 않은 그날 저녁 염으로 쌓인 할머니의 주검 앞에서 슬픔 같은 건 느낄 수 없었다. 그리고 순서에 의해 장례가 치러지는 동안 할머니의 관 앞에는 낯 선 두 사람의 여인네가 있었던 걸 기억한다. 그들은 상여가 나가는 그 순간까지 끊임없이 구슬프게 울어 제 꼈다. 그녀들의 그 구슬픔 때문에라도 주위의 문상객들의 목소리까지 슬픔으로 변한 듯 했다.

 

그런데 어린 나였지만 그녀들의 이해할 수 없는 행동을 간간이 보았다. 애간장이 타듯 구슬프게 울다가도 막걸리 한 잔씩 들이키며 깔깔거리기도 다른 문상객들과 농담하는 것을 목격했던 것이다. 감추고 말고도 없이 스스럼없이 그런 행동을 하는 것에 의아해 했던 것이다. 그렇게 슬퍼하다가 웃기까지…???당시로는 이해불가였다.

 

내가 그녀들의 정체를 짐작하게 된 것은 고등학생이 되고 서였다. 어느 부분에선가 곡비(哭婢:장례 때 의도적으로 곡을 하는 종이지만, 요즘으로 치면 곡을 알바로 하는 직업)라는 단어를 배우면서 그녀들이 할머니 장례식에 고용된 곡비(哭婢)였다는 것을 짐작한 것이다.

 

글쎄? 지금 돌아가신 우리 어머니의 심정을 알 턱은 없지만, 당시 할머니의 모진 구박 속에7년 이상을 병구완 하셨다면 솔직하게 울음과 눈물인들 제대로 났겠는가? 순전히 내 개인 생각이지만 할머니의 죽음 앞에 구슬프게 울어가며 애도할 만큼 효부는 아니셨기에 아마도 어른들께서 곡비를 고용하셨을 거라 짐작이 간다. 아니면 당시의 사회정서나 장례문화가 그러했거나….

 

누군가는 이 나라가 반만년의 유구한 역사라고 자랑한다. 그런데 가만히 생각해 보면 그거 별거 아니잖아? 반만년은 고사하고 지구촌 4대 문명의 발상지라고 떠들어 대고 잉카나 마야는? 그 나라들 크게 별 볼일 없잖아? 오히려 미국은 200여 년밖에 안 된 신생국(?)이지만 세계를 지배하다시피 하고 있는데.

 

왜 그럴까? 문명의 발상지든 반만년이든 지난 역사만 자랑할 뿐 진취(進取)적이지 못하고 고리타분한 역사에만 매몰 되어 있기 때문이다. 더구나 슬픈 역사는 빨리 잊고 매진(邁進)해야 함에도 그 슬픔을 이용하여 살아가는 죽어도 죽지 않는 좀비(zombie)같은 존재가 되어 때가 되거나 시간이 되면 스멀거리며 나타나는 것이다. 일본의 압제가 끝 난지 70년이 넘었고 518 사태가 약40년 되었고, 세월호 사태는 또 얼마나 갈 것인지…?? 유구한 역사만큼이나 끈질기도록 자랑스러운 좀비들의 역사를 만들어 가는 것이다.

 

내일이 518이던가. 518이라는 마법에 세뇌된, 듣지도 못하고 말하지도 어떤 의지도 없는 그날의 노예로 동원된 좀비의 세상이 되는 날이다. 굳이 곡비(哭婢)를 거론하는 것은, 또 내일이면 온 나라가 울음바다로 변할 것이다. 남녀노소(男女老少)를 막론하고 518의 의미도 모르고 함께 곡비(哭婢)가 되어 특정지역의 천지가 울음바다가 될 것이다. 영혼 없이 행동하고 영혼이 담기지 않은 거짓 울음만 남을 좀비와 곡비(哭婢)가 준동(蠢動)하는 날을 미리 그리며 삼가 애도(哀悼)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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