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otice: Undefined index: HTTP_USER_AGENT in /webstore/pub/reportblog/htdocs/wp-content/plugins/new-chosun-plugin/new-chosun-common.php on line 16 죽(竹)의 장막(帳幕). - 오병규
죽(竹)의 장막(帳幕).

 

 

나는 이곳 산골에서 서울 집을 가거나 며칠 집을 비울 때 일부러 거실의 커튼을 활짝 열어두고 다닌다. 볼 일이 있거나 나를 찾아 왔다가 현관의 요비링을 눌러도 인기척이 없으면 거실의 대형 창을 통해 안을 들여다보거나 재확인 하고 그래도 인기척이 없으면 돌아가라는 의미다. 이는 마치 제주도의 민속가옥들이 입구의 빗장 걸친 형태를 두고 빈 집인지 주인이 있는지 확인하는 의미와 같은 것이다. 물론 아주 중요하고 꼭 만나야할 일이라면 미리 전화로 주고받겠지만 보편적 초행이거나 지나는 길에 무심코 들리는 이웃들을 위한 조치다.

 

이 달 중순 경 중국을 며칠 다녀왔다. 바쁜 아들의 부탁으로 오랜 보따리장사 거래처를 방문하기 위함이다.

 

오랜 보따리장사 경험을 통해 일본. 중국 양국을 비교해 보면, 일본 거래처는 품질(quality)만 합격하면 오랫동안 거래가 가능하고 웬만해서는 거래가 끊기 지 않지만 대신 실수를 하면 그것으로 쫑이 난다. 중국은 워낙 의심이 많은 민족이라 그런지 웬만해선 신용 얻기가 힘이 들고 만날 때마다 말로는 단골(老朋友:친구)이라고 하지만 거래는 그 때마다 새롭다. 그러나 그들에게 일단 신용을 득하면 간까지 꺼내줄 만큼 원만한 거래를 할 수 있다.

 

중국엔 20년 가까이 거래해 온 거래처가 여러 군데 있다. 그들은 소위 나와는 진정한 단골관계를 유지하고 있는데 그 중 한 곳 A업체는 내가 그곳을 방문하면 그 기간 동안 호텔이 마땅치 않으면 그 친구의 집에서 숙식을 하고 점심은 아예 반드시 그 친구 사무실에서 먹는 것으로 정해져 있다. 정말 아주 가끔은 다른 거래처 B.C.D…가 자신들과 식사 한 끼 하자며 통사정(사실이다)을 하면 어쩔 수 없이 하는 경우가 있기는 하다.

 

그날이 그런 경우다. B에서 상담을 하다 보니 시간이 지체 되었고 A업체에서 ‘식사시간’이라며 전화가 왔다. 시계를 보니 점심시간을 약 30분 넘겼던 것이다. 그 시간까지 식사도 않고 나를 기다린 것이다. 좀은 미안한 마음에 곧 가겠다고 하고 B업체에게는 식사 후 못 다한 상담을 하자고 제안을 하자 B업체는 오늘은 그냥 못 보낸다며 이미 식사세팅(중국도 요즘은 배달이 성행함)을 해 두었으니 그곳에서 먹자는 것이었다. 그야말로 간청을 뿌리칠 수 없어 어쩔 수 없이 A에게 전화를 하여 사정 얘기를 하고 B업체에서 식사를 할 수밖에.

 

내게는 하나의 습관이 있다.(물론 중국 현지에서의) 점심식사 후 1시간정도 오침(午寢)을 하는 것. 그리고 점심식사 때 반드시 와인을 한 잔 하며 식사하는 습관이다. 중국음식이 너무 기름지고 입에 맞지 않아 와인과 함께 먹기 때문이다. 내 식성을 아는 A는 나를 위해 항상 프랑스산 와인을 상자 채 비치해 두곤 한다. 어쩌면 그래서 더욱 A에서 식사를 하는 것이다. 더 중요한 것은 넓은 사무실 한 곳에 쪽방을 만든 침실까지 있기 때문이다. 그곳엔 냉난방 꿍툐(空调:에어컨)가 설치되어 있기 때문이다.

 

B에서 상담을 끝내고 A로 돌아온 것은 순전히 습관대로 오수를 즐기기 위함이었다. 육중한 사무실 문을 밀고 들어오자 소파에 웬 낯 선 사내가 둘 있고 그들은 환담을 나누고 있었다. 그들은 내가 들어오는 인기척을 느끼고 대화를 잠시 멈춘다. 그리곤 특유의 광동어로 다시 얘기를 나누며 나를 힐끗거리기까지 한다. 이런 경우 별로 달갑지 않은 얘기를 나누는 게 확실하다.(사실 이런 게 중국인 특유의 행동(?)이다. 무엇인가 상대(특히 외국인)가 들어서 불리한 이야기는 자신들만의 언어(사투리)로 대화를 한다. 기분 나쁘게 상대를 힐끗거리며…20년 가까이 서로가 볼 것 못 볼 것 지내온 사이지만 특정의 화제(특히 정치적인 화제)에선 돌변한다.)

 

어쨌든 머쓱해진 내가 오수를 즐기기 위해 침실로 들어가려는 나를 A는 잠시 앉으란다. 그리곤 느닷없이 네게‘트럼프를 어떻게 생각하느냐?’는 질문을 던진다. 비록 상거래를 하지만 어쨌든 잠재적 적국의 인민이 한참 첨예한 양국 간의 문제를 화두로 내 놓자 많이 난처했지만 가만히 생각해 보니 세 사람이 둘러 앉아 나름 심각한 국제정세를 화제 삼았다는 생각과 그렇게까지 질문한 이유가 있을 것 같아 오히려‘무엇 때문에…?’라고 반문을 하자‘시진핑의 방북문제와 우리의 사드문제까지 거론하며 트럼프가 자신들을 압박하고 있다’는 취지의 답변이 돌아온다.

 

그들과 오간 대화를 이곳에 기술하기는 어렵고, 단지 우리의 사드는 공격용이 아닌 방어용이며 산동성 일부만 볼 수 있지만, 오히려 너희는 흑룡강성에 한반도는 물론 일본과 멀리 관도(關島:괌)까지 탐지 가능한 사드가 배치되었다고 하자 셋 다 의아해 하며 금시초문이라는 것이다. 덧붙여 1976년 6월 초에 벌어진 북경 천안문 사태를 얘기하자 그 중 한 친구는 알고 있다고 했지만 A를 포함한 또 한 친구는 천안문 사태 자체를 모르고 있었다. 내친김에 홍콩의 시위는 알고 있느냐고 질문하자 그것은 tv를 통해 잘 알고 있다는 것이다.

 

잠시 얘기의 핀트를 돌려 보자. 중국인들의 친화력 특히 장사꾼들의 그것은 알아주어야 한다. A는 오수를 즐기러 가는 나를 불러 앉혔지만 초면의 두 사람을 내게 정식으로 소개하지 않았다. 그렇지만 두 사람은 나를 오래 알고지내는 사람처럼 대하며 대화에 동참을 하고 얘기를 나눈다. 정식 상거래가 아닐 때는 굳이 누구누구라고 처음부터 악수를 하고 명함을 주고받지 않더라도 펑유(친구)가 되는 것이다. 그리고 두세 번 만나면 이미 라오펑유(老朋友)가 되어 있는 것이다.

 

그렇게 그들에게 서툴지만 때론 필담으로 또는 바디랭귀지로 남북관계 미중관계 등 국제정세를 일장설파를 하고나니 1시간이 훌쩍 지났고 내 목소리가 좀은 잦아들 쯤 그 둘은 슬그머니 자리에 일어나 밖으로 나갔다. 그들이 밖으로 나가자 그 때서야 A는 내게 두 사람을 소개하는 것이었다.

 

그 중 안경 쓴 친구는 청화대를 나왔고 중국100대 기업(이 사람들 순위 매기기를 좋아한다) 중의 15위 회사(지난날 나의 보따리장사 아이템의 원부자재를 생산하는 회사)의 그 지방 자회사 총경리(우리의 월급쟁이CEO)이고 다른 한 사람은 직원이라는 것이다.

 

‘北비핵화서 韓입지 좁아져’ 지적에 비공개 외교활동 공개한 靑

출처 : http://news.chosun.com/site/data/html_dir/2019/06/25/2019062502760.html

 

바로 이런 점이다. 불과 얼마 전 트럼프 대통령과 문재인의 통화내용 일부를 공개한 외교관을 범죄자 취급을 하며 난리 부루스를 추더니 비공개 외교활동까지 공개하는 개자식들이 죽(竹)의 장막을 치고 있는 중국과 다를 게 하나라도 있는가?

 

중국의 청화대는 우리의 SKY급 대학이다. A의 나이는 금년 꽉 찬 50이다.(왜냐하면 그의 아버지가 나와는 동갑이기 때문에 가끔은 ‘아들’하며 농담을 한다)청화대를 나온 중국의 재벌기업 지사장은 대충 40대 후반 쯤 보였다. 세 사람은 천안문 사태가 벌어졌을 때 어쩌면 태어나지 않았을 수도 태어났더라도 아주 어렸거나 유년의 시절이었으니 모를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흑룡강성에 배치 된 중국의 사드는 전혀 금시초문이라고 하며 우리가 배치한 사드에 대해선 적대시하며 트럼프 대통령까지 싸잡아 원망하는 모습이 나로 하여 아연(啞然)케 하는 것이다.

 

그 정도 학력을 소유한 지식인이 세상이 다 아는 사실에 깜깜이라니, 보여주고 싶은 것 듣기 좋은 것만 들려주는 빨갱이 국가의 교육이나 정책이 얼마나 자국의 인민들을 우물 안 개구리로 세뇌시키고 있는지, 그것으로 그들 패거리들만의 권력을 향유하고 있는지 답답함을 넘어 섬뜩하기까지 한 것이다. 존엄님도, 시진핑도, 삽살개도….

 

나는 이곳 산골에서 서울 집을 가거나 며칠 집을 비울 때 일부러 거실의 커튼을 활짝 열어두고 다닌다. 볼 일이 있거나 나를 찾아 왔다가 현관의 요비링을 눌러도 인기척이 없으면 거실의 대형 창을 통해 안을 들여다보거나 재확인 하고 그래도 인기척이 없으면 돌아가라는 의미다.

 

중국에서 현지상황을 SNS에 올리는 것은 불가하다. 게시판에 글을 쓰는 것도 불가하다. 인터넷을 통하여 우리 신문을 보는 것도 제한 적이다. 아마도 시진핑이 등극한 이후일 것이다. 지금 중국은 아니 문재인 정권도 죽(竹)의 장막(帳幕)을 다시 치고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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