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련한 황운하와 토사구팽(兎死狗烹)

 

 

범려(范蠡)는 원래 초나라 사람이었다. 그의 집안은 초라하고 빈한했지만 그는 박학다식하고 재능이 많았다. 그러나 당시의 초나라는 권력의 세습으로 귀족이 아니면 출세하기 힘들었다. 그에겐 조그만 현의 현령 즉 미관말직의 문종이라는 벗이 있었다. 결국 두 사람은 이웃인 월(越)나라로 망명하여 대부라는 직책에 올랐다. 당시 월나라 왕은 윤상이었다. 윤상은 오나라와의 전투에서 부상을 입고 죽는다. 그 아들 구천이 그 뒤를 이었고, 범려는 구천의 책사가 되었다.

 

얼마 후 오월대전에서 월나라가 오나라에 패하였고, 문종은 남아서 나라를 지키고 범려는 왕 구천과 함께 인질이 되어 오나라로 넘어가, 3년 동안 오나라 왕 부차의 시중을 들며 구천과 함께 온갖 고생을 다했다. 약 3년 만에 구천과 함께 귀국한 뒤 범려는 문종과 함께 부국강병에 최선을 다했고 마침내 오나라를 격파하고 멸망시켰다. 이것이 저 유명한 오월쟁패(吳越爭覇)다.

 

그런데 오나라를 멸망시키는 공헌을 한 범려는 갑자기 모든 관직을 버리고 잠적해 버린다. 잠적하기 전 범려는 문종에게 “월왕은 어려움은 함께 할 수 있어도 부귀를 함께 누릴만한 사람이 못됩니다. 새를 잡고나면 활은 깊숙이 보관을 하고 토끼 사냥이 끝나면 사냥개를 삶는 법이니 그대도 관직을 버리고 물러나십시오.”라고 충고했지만 문종은 그 이야기를 그냥 흘려버린다. 결국 문종은 범려의 예상대로 월왕 구천으로부터 자결을 강요받는다. 그래서 생겨난 말이 조진궁장토사구팽(鳥盡弓藏兎死狗烹)인 것이다.

 

약(略)해서 토사구팽(兎死狗烹)이라는 성어가 묻혀 있다가 100여 년 후 각광(?)을 받은 것은 초한(楚漢) 즉 항우와 유방의 쟁패에서 부활한다. 초한쟁패는 엄밀하게 항우와 한신의 싸움이었고 유방은 두 영웅의 싸움을 지켜보다가 냉큼 어부지리를 택하며 400여 년 역사의 漢나라를 세운 것이다. 해하전투에서 항우를 죽인 한신은 생각만 있었으면 유방도 항우처럼 만들 수 있었지만 때를 놓치며 오히려 유방이 전투에 패해 군사가 모자랄 때 병력지원을 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팽(烹)을 당하고 오월대전의 영웅 범려가 한 얘기를 곱씹으며 죽어 간 것이다.

 

토사구팽은 과유불급(過猶不及)이나 미련에서 비롯된다. 이 말을 태생시킨 범려는 권력에 대한 혐오(嫌惡) 아니면 미련을 두지 않았기에 조용히 물러나 천수를 누린 것이다. 그는 문종에게 월왕 구천의 (인간성)됨됨이를 간파하고‘어려움은 함께 할 수 있어도 부귀를 함께 누릴만한 사람이 못된다.’고 귀띔을 해 주었지만 문종은 그 충고를 받아들이지 않았고, 유방을 위해 함께 공을 세운 장자방은 범려처럼 표표(漂漂)이 떠났으나 한신 또한 문종처럼 미련 때문에 죽임을 당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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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 http://news.chosun.com/site/data/html_dir/2019/12/10/2019121000111.html

 

등신! 한마디로 신명이 나 있다. 뭘 믿고 저러는지? 세상에 저렇게 미련한 놈이 광역시의 경찰청장의 지위까지 올랐다니 대한민국 경찰 위신 알만 하다.

 

총선준비? 문종이 범려를 위하고 한신이 유방을 위해 모든 걸 바쳤지만 결국 돌아온 것은 죽음 즉 토사구팽인 것이다. 황가 저 자에게 총선출마를 시킬 거면“명퇴 불가”를 왜 했는지, 아직도 눈치 못 채고 있으니 얼마나 미련한 놈인가? 그래서 등신! 이라고 하는 것이다. 문가 아닌 문가의 친구를 위해 정열을 바치고 총대를 매고 천방지축(天方地軸)날뛰지만 결국 황운하 저 늠은 슬슬 끓어오르는 가마솥 가운데 있는 것이다. 미련한 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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