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아도 살아 있는 게 아닐 것이다.

영장 기각에 구치소 나선 조국은 침묵‘… 지지자 환호반대자 분노

출처 : http://news.chosun.com/site/data/html_dir/2019/12/27/2019122700275.html

 

 

장일도(杖一到)의 처형(處刑)

장일도, 요즘은 이런 말 잘 안 쓰던데즉 곤장(棍杖)한 대를 의미 한다. 언제 적 읽었는지 모르지만 야사(野史)를 읽은 것이다.

 

어떤 중죄인이 있었다. 국사범(國事犯)이었다. 그런데 조국만큼 뒤 배경이 좋았다. 국사범임에도 최고지도자급의 압력으로 최종판결이 장일도(杖一到) 즉 곤장 한 대의 벌이 주어졌다. 사형에 처할 만치 중죄인이었으나 권력자의 비호 아래 겨우 곤장 한 대라니

 

아무튼 명판관은 놈의 죄상이 죽이고 싶도록 미웠으나 최고 권력의 압력으로 어쩔 수없이 곤장 한 대만의 처벌을 할 수밖에 없었다. 그리하여 그는 많은 생각을 했고 드디어 처벌을 하던 날 집행관을 불렀다. 그리고 그에게 여차여차 약시약시(若是若是)하라고 지시를 했다.

 

죄인을 형틀에 묶고 엉덩이를 까붙인 뒤 치켜든 곤장을 내려 치는 구호를 외치며 칠 듯 했지만 곤장을 치지 않았다. 죄인 입장에서는 이제야 저제야 하며 한 대의 곤장을 기다렸으나 그럴 때마다 흉내만 낼 뿐 곤장이 자신의 엉덩이에 닿지를 않자 긴장을 풀고 말았다. 그렇게 하기를 10차례 반복을 했던 것이다.

 

죄인이 긴장을 풀고 느슨해 진 것을 안 명판관은 그 때서야 집행관에게 눈짓을 했다. 단 한 대의 곤장이 드디어 죄인의 볼기를 후벼 판 것이다. 그런데 그 단 한 대의 곤장에 죄인은 아픔 때문이라기보다 심장이 멎고 죽어 버렸다.

 

야사(野史)에 나오는 얘기지만 의학적으로 근거가 있지 않을까? 우리가 살()맞는다는 얘기를 한다. 그냥 슬쩍 건드렸거나 맞았는데 죽음을 맞이하는 경우가 왕왕 있다. 그런 경우일 것이다.

 

살아도 사는 게 아니다.’ 라는 말이 있다. 조국이 오늘은 풀려났지만 놈에게는 심적인 고통이 더욱 클 것이다. 아니한 말로 가장으로서 마누라는 빵에 보내고 저 혼자 자유(?)를 누린다는 게 편 할 수만 있을까? 최소한의 인간성을 지닌 인간이라면 말이다.

 

뿐만 아닐 것이다. 이제 시간을 두고 검찰에선 우병우처럼 구속 될 때까지 소환하고 조사할 것이다. 지금이야 제 혼자 안고 가겠다며 의리(?)를 내세우겠지만 집행관의 치켜든 곤장이 언제 내리 꽂힐지를 모르는 긴장감이 들 때 쯤 저 따위 속물들의 의리(?)는 한 순간에 고발(告發)이나 변절(變節)로 변하고 말 것이다. 단 조국이 그래도 인두겁을 쓴 인간이라면…

 

 

지지자 환호반대자 분노‘? 그럴 필요 없다. 승부를 다루는 운동경기도 아니고…… 오히려 이번 조국을 풀어 준 것은 범죄자들을 일망타진(一網打盡)하기 위한 미끼로 보면 된다. 그 전 정작은 독소조항이 있는 공수처법 개악을 막아야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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