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목(放牧)과 사육(飼育)

 

 

내가 소위 비데(bidet)라는 걸 처음 안 것은 88올림픽 전 해인 87년 일본 오사카의 간사이(関西)공항내의 한 호텔이었다. 처음엔 그것이 무엇에 쓰이는 물건인지 모르고 이것저것 눌러 보다가 얼굴에 직방으로 물총세례를 받고 난 뒤에야 그 의미를 알았던 것이다. ‘아하! 이게 그 비데라는 거구나!’ 그 물건이 무엇에 쓰는 것인지 알고 난 후 그 편리성을 받아들이고 어떻게든 문명의 이기를 하나 구입하려고 노력했다.(사실 그땐 사업도 망가진 상태였고 재기를 하기 위해 몸부림치던 때였다.)

 

그랬던 비데를 내 것으로 하고 처음 이용했던 것은 근 10년 뒤 아이러니 하게도 집안이 아니라 상주(常駐)하던 중국이었다. 어쨌든 각고 끝에 하던 일이 조금씩 희망이 보이고 중국의 경제부흥처럼 나 역시 일취월장(日就月將) 욱일승천(旭日昇天: 좀 과장해서…)동반상승 하던 어느 날인가 갑자기 비데 생각이 들어 얼마 뒤 한국에서 구입한 그것을 숙소 화장실에 설치(設置)했다.(아! 날아갈 것 같은 그 상쾌함)

 

사실 난 지금도 그러하지만 어떤 뚜렷한 목적이 있는 외출 시엔 갑자기 아랫배가 무거워지거나 사르르 아파오고 화장실에 앉아도 시원하지가 않는 등….소위 과민성대장증후군인지 뭔지 하는 그런 약점이 있다. 처음 그 놈을 설치하고, 공장이나 사무실에 있을 땐 아무렇지도 않던 뱃속이 업무 차 칭따오 시내나 인근 도시로 나가면 예의 그 증세가 나타나기 시작하면 시내를 멀리 벗어난 장소는 어쩔 수 없어도 칭따오 시내인 경우 급히 숙소로 되돌아와 볼 일을 보고 다시 나가곤 했었다.(비데 구입과 설치 목적의 과정을 얘기 하는 것이다.)

 

그러구러 김대중 정권이 들어서고…그 때나 지금이나 좌파정권들은 언론 특히 보수언론과의 전쟁을 노골적으로 펼치는 경향이 있었다. 당시도 오늘과 같이‘조선독자마당(조독마)’엔 보수와 좌빠의 사상과 이념 논쟁이 극심하던 시절이었다. 얘기하기 거시기 하지만 ‘진중권’도 조독마에 함께 활동하던 시절. 예나 오늘이나 그는 사상적 동지내지 똘마니들을 구름처럼 몰고 다니던 시절이었다.

 

당시 조선일보와 동아일보는 김대중 정권은 당연하고 진중권을 비롯한 그 똘마니들의 공적(公敵)이었고, 그는 스스로‘밤의 대통령’이라고 자칭하며 보수언론 패대기치기에 앞장을 섰던 그런 시절이었는데, 조선과 동아를 얼마나 미워했던지 두 신문을‘화장실의 똥닦개’나 할 신문이라고 비하내지 폄하를 했었다.

 

하도 그런 식으로 두 신문을 폄하 하던 어느 날 급기야 나는 “야이! 개xx들아! 너희 놈들 신문으로 똥닦개 할 때 우리는 열심히 일해 양변기에 비데까지 설치하고 살아간다.”라며 일갈(一喝)한 후부터 신문지로 뒤 닦는다는 얘기는 좌빠로부터 더 이상 나오지 않았던 것이다.

 

좌빠들의 경제관념이 그 때나 지금이나 그렇다. 보수는 어찌 되었든 열심히 일하며 시장경제에 몸을 맡기고 그것과 함께 살아가지만, 좌빠는 스스로 취할 생각은 않고 지도자나 국가 그리고 사회가 먹여 살려 주기를 원하는 것이다. 이게 소위 배급을 주고받던 사회주의 국가의 기본 개념이 아닐까? 오늘날 문재인 정권의 경제이념의 근간이‘소. 주. 성’이 바로 그것인 것이다.

 

국가에서 주는 배급을 타 먹던 탈북자들 얘기를 들어보면 거의가 (그나마)중국을 통하여 경제의 개념을 터득하고 남한에 가서 열심히 살(일하면)면 누구나 기회가 온 다는 생각에 탈북을 했다는 이들이 주류다. 빨갱이들처럼 통제가 아닌 자유 시장경제를 남한의 자생적 빨갱이보다 더 잘 알고 흠모했기에 죽음과 맞바꾸는 탈북을 감행(敢行)했던 것이다. 그런 만큼 자유와 시장경제는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인 것이다.

 

이따금 경종을 울리며 전해지는 나쁜 뉴스가 있다. 며칠 전에도 먹고살기 힘들다며 가족동반자살을 했단다. 이런 경우 두 부류이다. 죽기 전에 좀 더 죽기 살기로 노력을 해보지도 않고 세상을 비관만 하는 경우, 다른 부류는 지나치게 쓸데없는 자존심이 강한 부류. 즉, 양반은 물에 빠져도 개헤엄 안 친다는 부류. 그러나 어쨌든 그나마 다행인 것은 두 부류다 국가나 사회를 원망하는 빨갱이는 아니라는 것.

 

하루 생활비 330원…中 울린 가난한 여대생 결국 사망

http://www.donga.com/news/Main/article/all/20200115/99238725/2

 

여전히 사회주의 국가다운 기사다.(기사의 내용은 클릭 후 읽어 보시고,,,)

 

우리 돈 330원으로 생활하고 동생 병간을 하면서 영양실조에 걸려가면서도 학업을 유지했다는데 방점을 찍자. 그렇게 학업이 중요했나? 배움이 배고픔 보다 더 고프고 필요했나? 알바를 해서라도 생활비를 벌수는 없었을까? 그 사실에 중국 인민들이 슬퍼하고 울었단다.

 

나는 남의 나라 일이지만 그게 화가 났다. 이 나라에서 그와 같은 현실이 벌어지고 있기 때문이다. 좌빠들은 저희 굶주리는 걸 국가와 사회에 탓을 돌린다. 노력도 해 보지 않고 국가나 사회가 모든 것을 해결해 주기를 원한다.

 

위 기사의 말미는 이렇게 장식 됐다.<<<<중국 웨이보의 한 이용자는 “2020년이 됐는데 제대로 된 음식을 먹을 수 없다는 것인가”라며 “빈곤 완화 사업을 이해할 수가 없다”는 반응을 보였다. 한편 지난 2015년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은 올해 말까지 빈곤 퇴치와 사회번영에 대한 계획을 발표했다.>>>>

 

눈에 보이지 않는가? 사회주의(중국)의 표퓰리즘과 이 땅 빨갱이들의 票퓰리즘과 너무도 닮았다는 사실.

 

죽어도 일하기는 싫고 나라에서 보태주는 금액을 받아먹으며 방바닥을 뭉개는 이 나라의 어리석은 젊은 군상과 가난은 나라님도 구제를 못한다는데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의 빈곤 퇴치와 사회번영에 대한 계획을 곧이곧대로 믿고 기다리는 여전히 배급국가 티를 못 벗은 붉은 인민들이나 백성들의 생활을 금품으로 환심을 사서 정권유지를 하는 좌익 票퓰리즘 정권이나.

 

같은 개. 돼지(짐승)를 길러도“방목(放牧)과 사육(飼育)”의 차이점을 알면 그 답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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