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원(恩怨)은 한 끗 차이

 

 

그가 교꾼이 매고 가던 가마를 멈추게 한 것은 저 만큼에서 행색이 초라한 사나이가 힘없이 걸어오는 것을 발견했기 때문이다. 비록 그 사나이가 아무리 행색이 초라했어도 모를 리가 없었다. 가마가 멈추자 그는 황급히 가마에서 내려 초라한 사나이 앞에 부복(俯伏)하고 예(禮)를 다하며 안부를 물었다.

 

반석평(潘碩枰), 중종 때의 문신이다. 본관은 광주(光州). 자는 공문(公文), 호는 송애(松厓). 증조는 반사덕(潘思德)이고, 할아버지는 반강(潘崗)이며, 아버지는 반서린(潘瑞麟)이다. 출생은 정확하지 않고1540년(중종 35)에 사망했다.

 

그는 태어날 때부터 성명 미상의 재상 집 종으로 태어났다. 그러나 그는 여느 종과는 달리 총명했고 글재주가 있었다. 그의 재주를 사랑한 재상이 글을 가르치고 아들 없는 부자 집에 양자로 보내 공부에 힘쓰게 하였다. 조광조(趙光祖)·김식(金湜) 등과 교유하였다. 1507년(중종 2) 식년 문과에 병과로 급제하였다. 이어 예문관검열(藝文館檢閱)이 되고 경차관(敬差官)으로 함경도에 파견되어 여진의 동정을 보고했으나 천얼 출신이라 하여 사간원의 탄핵을 받았다. 1516년 안당(安塘)의 추천으로 종5품으로서 경흥부사가 되고, 1522년 만포진첨절제사(滿浦鎭僉節制使)를 거쳐 함경남도병마절도사가 되었다.

 

그러나 1524년 군기를 살피지 않고 도로 사정을 잘못 보고했다는 이유로 탄핵받아 파직되었다가 다시 병조참의에 임명되었다. 1527년에 함경북도병마절도사, 1530년에 경연특진관(經筵特進官)과 충청도관찰사를 거쳤다. 1531년에 성절사(聖節使)로 명나라에 다녀온 뒤 예조참판과 전라도·경상도 관찰사를 지냈다.

 

1533년 다시 함경북도병마절도사로 임명되었으나 이미 한번 역임한 바 있고 또 문신이기 때문에 불가하다는 반대가 있어 부임하지 못하였다. 그 후 평안도관찰사를 거쳐 공조판서가 되었다. 그러나 시종(侍從)을 역임하지 않았다 하여 공조참판으로 고쳐 임명되었다. 청렴하고 선공후사(先公後私)하는 관리로 이름났다. 시호는 장절(壯節)이다.

 

성호 이익의 ‘성호사설’에 따르면 반석평은 거리에서 옛 주인의 아들 이오성이 거지꼴로 돌아다니는 모습을 보고 타고 있던 가마에서 뛰어 내려와 절을 했다고 한다. 옛 주인이었던 재상은 어떤 역적모의에 연루되어 파직과 함께 귀양을 가 집안이 파산을 하게 되었고 하나 남은 자식은 거리를 유랑하며 비루먹었던 것이다.

 

졸지(猝地)에 일어난 그의 행동은 지난 과거를 지우고 신분세탁을 한 사실이 발각 난 위험한 행동이었지만 반석평은 오히려 왕에게 자신의 원래 신분을 고하고 받은 벼슬자리를 내려 놓고 죄를 청했다. 그러나 왕은 받은 은혜를 잊지 않는 반석평을 오히려 기특히 여기고 몰락한 이오성(몰락한 재상의 아들)을 복권과 함께 벼슬까지 하사했다.

 

조선 시대 노비의 신분을 벗어나 벼슬길까지 오른 인물 하면 대부분 장영실을 떠올리지만, 사실 반석평은 부모가 누구인지도 모르는 천애고아의 노비였다. 그러나 그의 주인은 그의 비상한 재주가 너무 아까운 나머지 노비 문서를 불태워 면천해 주고 신분세탁을 통해 자신이 아는 반 씨 집안에 수양아들로 보내주었고 과거 시험을 치를 자격을 얻은 반석평은 당당히 과거에 급제하여 출세를 거듭해 정2품 형조판서까지 오르게 된 것이다. 중종실록에서는 반석평이 비록 노비 출신이지만 문벌에 구애받지 않고 능력으로 등용된 바람직한 사례로 기록되어 있다.

 

안철수, “文대통령 단일화 땐 간 빼줄 듯하더니…” 작심발언

출처 : http://news.chosun.com/site/data/html_dir/2020/04/12/2020041201634.html

 

어제tv를 보는데 안철수가 양쪽 발이 짓무르고 양쪽 엄지발가락은 선홍(鮮紅)빛을 띠고 당장이라도 빠질 듯하다. 도대체 무엇을 노리고 아니면 원하고 국토순례(?)라는 당치도 않은 장거라 마라톤을 시작했는지 모르겠다. 그렇게 자학(自虐)을 한다고 국민에게 지은 죄가 사함을 받을까? 솔직히 얘기하면 국민은 안철수의 객기어린 철없던 행동을 모두 잊고 있다. 그의 저런 무모한 행위는 어쩌면 소멸 돼 가는 자신의 처지를 새삼 부각시키기 위한 마지막 몸부림 일지도 모르겠다.

 

안철수가 정치라는 험로에 뛰어들고 할 수 있었던 건, 이것저것 간 보기 그리고 희망이 없어 보이면 시장선거도 대통령 선거도 사퇴하는 것? 그리고 여론이 불리하면 해외로 탈출했다 좀 잠잠해 지면 다시 나타는 것을 거듭하는 것? 이 나라의 정치라는 명분 아래 그가 남긴 자국이나 족적(足跡)이 어느 한 군데라고 있었던가? 돌이켜 생각해 보면 저 친구만 나대지 않았다면 문재인이라는 인물이 이 나라의 통치자로서 가능했을까? 하는 의구심이 든다.

 

남의 집 문상 가서 밤새도록 울고 누가 죽었느냐고 물으며 뚱딴지같은 짓을 한다던데, 누가 시키지도 않은 마라톤을 발과 발가락이 짓무르도록 하고 와서 성질이 났나? 웬 뚱딴지 같은 작심발언?

 

은혜를 받을 것이라고 그 따위 행동(단일화)을 했다면 애초부터 안철수가 도둑놈이고, 비록 그런 약속은 없었더라도 간까지 빼줄 듯 간교한 미소를 띠며 꼬드겨 실컷 이용해 먹고 모른 척 하는 문재인은 도둑을 넘어 강도가 틀림없다. 도둑놈이든 강도든 두 인간이 알아서 할 일이지만 분명한 것은“은혜(恩惠)와 원수(怨讐)는 백지장 하나 차이”라는 사실.

 

안철수의 볼멘소리의 기사에 댓글 달기를….

 

이런! 무시칸x! 토끼 간도 아니고,,,삽살개 간이 뭔 약효가 있다고 그 딴 걸 믿었단 말가? 개xx간은 성남 모란 시장에 가면 쌔고 쌘 걸. ㅉㅉㅉ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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