빗나간 모성애와 효심(孝心)

 

 

사실 저희 집엔 보통의 가정보단 좀 많은 책이 있습니다. 어디 이사라도 할라치면 그것들이 가장 먼저 꾸려지고 또 가장 많은 부피를 차지합니다만 그것들이 단 한번이라도 제게 핀잔이나 박대를 받은 적은 없습니다. 반면 이사할 때마다 번거로운 관계로 오히려 마누라에게 지청구를 듣곤했지요. 이와 같은 저의 책사랑(?)은 묘한 동기가 있습니다.

 

아주 어릴 적 학령기에 접어들자 형님으로부터 대가리 쥐어 박혀가며 한글을 익혔습니다. 요즘 아이들이야4-5세에 한글을 떼고 영어나 외국어를 학습하지만 그때만 하더라도 문교부(요즘은지경부인가?)혜택을 받기 전 한글을 쓰고 읽는다는 건 똑똑한(실은 강제에 의한 피나는 연마의 결과지만…)축에 속했습니다.

 

어쨌든 한글을 읽을 줄 안다는 것은 어쩌면 행운이었습니다. 할아버지의 사랑방엔 항상 언문소설이 이리저리 뒹굴었습니다.‘심텽뎐, 장화홍련뎐, 숙영랑자뎐…’등등. 할아버지는 피난지의5일장에 다녀오시면 가끔씩, 지금 생각하면 조악하기 짝이 없는 그런 책들을 사 오시곤 잠이오지 않는 새벽녘에 낭랑(朗朗)하게 소리 높여 읽으시곤 하셨습니다.

 

새벽을 깨우는 할아버지의 낭랑하신 목소리인지 아니면 방광이 터질 듯 고인 소변을 보기 위함인지 모르지만, 비몽사몽간 깨어나 시원하게 배변을 한 뒤 다시 깊은 잠으로 빠진 기억이 많습니다. 아무튼 그런 식으로 듣기에만 몰두하던 제가 우연히 잡아 들고 읽었던 책이 바로‘장희빈뎐’이었습니다. 어린 것이 무슨 내용인지 정확히 몰랐지만 그것에 몰두하고 다시 잡은 책이‘주유텬하’였습니다. 세종대왕의 형님 되시는 양녕대군의 일대기를 그린 책이었습니다.

 

솔직히 제가 지금도 고전을 좋아하는 이유가 어릴 때부터 고전을 섭렵했던 탓이 아닐까 생각합니다마는, 아무튼 할아버지의 사랑방에 굴러다니는 조악한 고전이 나중에 고전을 사랑하는 관계로 발전했던 것 같습니다.(중략)

 

5학년 때 이던가요? 학교에서 해마다 구연동화대회를 열곤 했었습니다. 그때 나도 한 번 나가서 실력을 뽐내 보겠다고, 동화책을 사달라고 조른 결과 아버지께서 아동문학(동화동요)전집을사 주셨습니다. 강소천. 박목월. 이원수 선생님 그 중에서도 소파 방정환 선생님의 전집 중에 있는 아래의‘만년샤쓰’라는 동화를 읽은 뒤 얼마나 눈물을 흘리고 또 그것을 읽은 뒤 모든 선생님들의 동화를 밥때를 잊어가며 읽어 내려간 후부터 책을 가까이 하는 계기가 지금까지 이어져 오고 있는 것입니다. 장황한‘썰’이 너무 길었습니다.(하략)

 

1.생물 시간이었다.

“이 없는 동물이 무엇인지 아는가?”

선생이 두 번씩 거푸 물어도 손 드는 학생이 없더니 별안간 “넷!” 소리를 지르면서 기운 좋게 손을 든 사람이 있었다.

 

“음, 창남인가. 어데 말해 보아.”

“이 없는 동물은 늙은 영감입니다!”

“예에끼!” 하고 선생은 소리 질렀다.

온 반 학생이 깔깔거리고 웃어도 창남이는 태평으로 자리에 앉아 있다.

 

도덕 시간이었다.

“성냥 한 개피의 불을 잘못하야 한 동리 삼십여 집이 불에 타 버렸으니 단 성냥 한 개의 성냥이라도 무섭게 알고 주의해 써야 되는 것이니라.” 하고 열심히 설명해 준 선생님이 채 교실 문 밖에도 나아가기 전에, “한 방울씩 떨어진 빗물이 모이고 모이어 큰 홍수가 난 것이니 누구든지 콧물 한 방울이라도 무섭게 알고 주의해 흘려야 하나니라.” 하고 크게 소리친 학생이 있었다.

 

선생님은 그것을 듣고 터져 나오는 웃음을 억지로 참으면서 돌아서서, “그게 누구냐? 아마 창남이가 또 그랬지?” 하고 억지로 눈을 크게 떴다. 모든 학생들은 킬킬거리고 웃다가 조용해졌다. “네, 선생님 안 계신 줄 알고 제가 그랬습니다. 이담엔 안 그러지요.” 병정같이 우뚝 일어서서 말한 것은 창남이었다.

 

억지로 골낸 얼굴을 지은 선생님은 기어코 다시 웃고 말았다. 그래 아무 말 없이 빙그레 웃고는 그냥 나가 버렸다. “아하하하.” 학생들은 일시에 손뼉들을 치면서 웃어대었다.

 

○○ 고등 보통 학교 1학년의 2반 창남이는 반 중에 제일 인기 좋은 쾌활한 소년이었다.

 

이름이 창남이요 성이 한가인 고로 ‘안창남’ 씨와 같다고 학생들은 모두 그를 보고 “비행사, 비행사.” 하고 부르는데 사실상 그는 비행사같이 시원스럽고 유쾌한 성질을 가진 좋은 소년이었다.

 

모자가 다 해어져도 새 것을 사 쓰지 않고 양복 바지가 해어져서 궁둥이에 조각조각을 붙이고 다니는 것을 보면 집안이 구차한 것도 같지만 그렇다고 단 한 번이라도 근심하는 빛이 있거나 남의 것을 부러워하는 눈치도 없었다.

 

남이 걱정이 있어 얼굴을 찡그릴 때에는 우스운 말을 잘 지어 내고 동무들이 곤란한 일이 있는 때에는 좋은 의견도 잘 꺼내는 고로 비행사의 이름은 더욱 높아졌다. 연설을 잘 하고 토론을 잘 하는 고로 1반하고 내기를 할 때에는 언제든지 창남이 혼자 나아가 이기는 셈이었다.

 

그러나 그의 집이 정말 가난한지 넉넉한지 아무도 아는 사람이 없었고 또 그의 집이 어데인지도 아는 사람이 없었다. 아무도 그 가는 쪽으로 가는 학생이 없었고 가끔 그 뒤를 쫓아가 보려고도 하였으나 모두 중간에서 실패하고 말았다. 왜 그런고 하니 그는 날마다 이십 리 밖에서 학교를 다니는 까닭이었다.

 

그는 다른 우스운 말은 가끔가끔 하여도 자기 집안일이나 자기 신상에 관한 이야기는 말하는 법이 없었다. 그것을 보면 입이 무거운 편이었다. 그는 입과 같이 궁둥이가 무거워서 운동틀(철봉)에서는 잘 넘어가지 못하여 늘 체육 선생께 흉을 잡혔다.

 

하학한 후에 학생들이 다 돌아간 후에도 혼자 남아 있어서 운동틀에 매어 달려 땀을 흘리면서 혼자 연습을 하고 있는 것을 동무들은 가끔 보았다. “얘, 비행사가 하학한 후에 혼자 남아서 철봉 연습을 하고 있더라.” “땀을 뻘뻘 흘리면서 혼자 애를 쓰더라.” “그래 인제는 좀 넘어가데?”

 

“웬걸, 한 이백 번이나 넘어 연습을 하면서 그래도 혼자 못 넘어가더라.”

“그래 맨 나중에는 자기가 자기 손으로 그 누덕누덕 기운 궁둥이를 자꾸 때리면서 ‘궁둥이가 무거워, 궁둥이가 무거.’ 하면서 가더라!”

 

“자기가 자기 궁둥이를 때려?”

“그러게 괴짜지.”

“아하하하하하하.” 모두 웃었다.

 

어느 모로든지 창남이는 반 중의 이야깃거리가 되는 몸이었다.

 

 

 

2겨울도 겨울, 몹시도 추운 날이었다.

혹혹 부는 이른 아침에 상학종은 치고 공부는 시작되었는데 한 번도 결석한 일이 없는 창남이가 이 날은 오지 않았다.

 

“호외일세, 호외야! 비행사가 결석을 하다니.”

“엊저녁 그 무서운 바람에 어데로 날러간 게지.”

“아마 병이 났나 부다. 감기가 든 게지.”

 

“이놈아, 능청스럽게 아는 체 말어라.”

1학년 2반은 창남이 소문으로 소근소근 야단들이었다.

 

첫째 시간이 반이나 넘어 지났을 때에 교실 문이 덜컥 열리고 창남이가 얼굴이 새빨개 가지고 들어섰다. 학생과 선생은 반가워하면서 웃었다. 그러고 그들은 창남이가 신고 서 있는 구두를 보고 더욱 크게 웃었다.

 

그의 오른편 구두는 헝겊으로 싸매고 또 새끼로 감아 매고 또 그 위에 손수건으로 싸매고 하여 퉁퉁하기 짝이 없었다.

 

“창남아, 오늘은 웬일로 늦었느냐?”

“네.” 하고 창남이는 그 괴상한 퉁퉁한 구두 신은 발을 번쩍 들고,

“오다가 길에서 구두가 다 떨어져 너털거리는 고로 새끼를 얻어서 고쳐 신었더니 또 너털거리고 또 너털거리고 해서 여섯 번이나 제 손으로 고쳐 신고 오느라고 늦어졌습니다.”

 

그러고도 창남이는 태평이었다. 그 시간이 끝나고 쉬는 동안에 창남이는 그 구두를 벗어 들고 다 해어져서 너털거리는 주둥이를 손수건과 대님짝으로 얌전스럽게 싸매어 신었다. 그러고도 태평이었다.

 

따뜻한 날도 귀찮아하는 체육시간이 이렇게 살이 터지게 추운 날 있었다.

“어떻게 이렇게 추운 날 체육을 한담.”

“또 그 무섭고 딱딱한 선생이 웃통을 벗으라 하겠지…… 아이그, 아찔이야.”

 

하고 싫어하는 체육 시간이 되었다. 원래 군인 다니던 성질이라 뚝뚝하고 용서성 없는 체육 선생이 호령을 하다가 그 괴상스런 창남이의 구두를 보았다.

 

“한창남! 그 구두를 신고도 활동할 수 있니? 뻔뻔하게.”

“네, 얼마든지 할 수 있습니다. 이것 보십시오.”

하고 창남이는 시키지도 않는 뜀도 뛰어 보이고, 달음박질도 하여 보이고 제자리걸음도 부지런히 해 보였다.

 

체육 선생도 어이가 없던지,

“음! 상당히 치료해 신었군!”

하고 말았다. 그리고 다시 호령을 계속하였다.

 

“전열만 삼 보 앞으로옷!”

“전후열 모두 웃옷 벗엇!”

 

 

 

3.죽기보다 싫어도 체육 선생의 명령인지라 온 반 학생이 일제히 검은 양복 저고리를 벗고 샤쓰만 입은 채로 서 있고 선생까지 벗었는데 다만 한 사람 창남이가 벗지를 않고 있었다.

 

“한창남! 왜 웃옷을 안 벗니?”

창남이의 얼굴은 폭 수그러지면서 빨개졌다. 그가 이러기는 참말 처음이었다. 한참 동안 멈츳멈츳하다가 고개를 들고, “선생님, 만년 샤쓰도 좋습니까?”

 

“무엇? 만년 샤쓰? 만년 샤쓰란 무어야?”

“매 매 맨몸 말씀입니다.”

 

성난 체육 선생은 당장에 후려 갈길 듯이 그의 앞으로 뚜벅뚜벅 걸어가면서,

“벗어랏!” 호령하였다.

 

창남이는 양복저고리를 벗었다. 그는 샤쓰도 적삼도 아무것도 안 입은 벌거숭이 맨몸이었다. 선생은 깜짝 놀라고 학생들은 깔깔 웃었다.

 

“한창남! 왜 샤쓰를 안 입었니?”

“없어서 못 입었습니다.”

 

그 때 선생의 무섭던 눈에 눈물이 돌았다. 그리고 학생들의 웃음도 갑자기 없어졌다. 가난! 고생! 아아, 창남이 집은 그렇게 몹시 구차하였던가….. 모두 생각하였다.

 

“창남아, 정말 샤쓰가 없니?”

눈물을 씻고 다정히 묻는 소리에,

“오늘하고 내일만 없습니다. 모레는 인천서 형님이 올라와서 사 줍니다.”

“음! 그럼 웃옷을 다시 입어라!”

 

체육 선생은 다시 물러서서 큰 소리로,

“한창남은 오늘은 웃옷을 입고 해도 용서한다. 그러고 학생 제군에게 특별히 할 말이 있으니 제군은 다 한창남 군같이 용감한 사람이 되란 말이다. 누구든지 샤쓰가 없으면 추운 것은 둘째요, 첫째 부끄러워서 결석이 되더라도 학교에 오지 못할 것이다. 그런데 오늘같이 제일 추운 말 한창남 군은 샤쓰 없이 맨몸, 으응, 즉 그 만년 샤쓰로 학교에 왔단 말이다. 여기 섰는 제군 중에는 샤쓰를 둘씩 포개 잆은 사람도 있을 것이요, 재킷까지 외투까지 입고 온 사람이 있지 않은가……. 물론 맨몸으로 오는 것이 예의는 아니야. 그러나 그 용기, 의기가 좋단 말이다. 한창남 군의 의기는 일등이다. 제군도 다 그 의기를 배우란 말야.” 만년 샤쓰! 비행사란 말도 없어지고 그 날부터 만년 샤쓰라는 말이 온 학교 안에 퍼져서 만년 샤쓰라고만 부르게 되었다.

 

  1. 그 다음 날은 만년 샤쓰 창남이가 늦게 오지 않았건마는 그가 교문 근처에까지 오자마자 온 학교 학생이 허리가 부러지게 웃기 시작하였다. 창남이가 오늘은 양복 웃저고리에 바지는 어쨌는지 얄따랗고 해어져 뚫어진 조선 겹바지를 입고 버선도 안 신고 맨발에 짚신을 끌고 뚜벅뚜벅 걸어온 까닭이었다.

 

맨가슴에 양복 저고리. 위는 양복 저고리 아래는 조선 바지(그나마 다 뚫어진 겹바지) 맨발에 짚신, 그 꼴을 하고 이십 리 길을 걸어왔으니 행길에서는 오죽 웃었으랴. 그러나 당자는 태평이었다.

 

“고아원 학생 같으니, 고아원야.”

“밥 얻어먹으러 다니는 아이 같구나.”

하고들 떠드는 학생들 틈을 헤치고 체육 선생이, “무슨 일인가?”

 

하고 들여다보다가 창남이의 그 꼴을 보고 놀랐다.

“너는 양복 바지를 어찌했니?”

“없어서 못 입고 왔습니다.”

 

“어째 그렇게 없어지느냐? 날마다 한 가지씩 없어진단 말이냐?”

 

“네! 그렇게 하나씩 둘씩 없어집니다.”

“어째서?”

“네…….” 하고 창남이는 침을 삼키고서.

 

“그저께 저녁이 바람이 몹시 불던 날 저희 집 동리에 큰 불이 나서 저희 집도 반이나 넘어 탔어요. 그래서 모두 없어졌습니다.” 듣기에 하도 딱해서 모두 혀끝을 찼다.

 

“그렇지만 양복 바지는 어저께도 입고 있지 않었니? 불은 그저께 나고…….”

“네, 저희 집은 반만이라도 타다가 남어서 세간도 더러 건졌지만 이웃집이 십여 호나 모두 타 버린 고로 동리가 야단들이야요. 저는 어머니하고 단 두 식구만 있는데 집은 반이라도 남았으니까 먹고 잘 것은 넉넉해요. 그런데 동리 사람들이 먹지도 못하고 자지도 못하게 되야서 야단이야요. 그래 저희 어머니께서는 ‘우리들은 먹고 잘 수가 있으니까 벌거벗는 것만 면하면 살 수가 있으니 두 식구가 당장에 입을 것 한 벌씩만 남기고는 모두 길거리에 떨고 있는 동리 사람들게 나눠 드려라.’ 하시는 고로 어머니 옷, 제 옷을 모두 동리 어른들게 드렸답니다. 그러구 양복 바지는 주지 않고 제가 입고 있었는데 저희 집 옆에서 숯 장사하던 영감님이 병든 노인인 고로 하도 춥다 하니까 보기에 딱해서 어제 저녁에 마저 벗어 주고 저는 가을에 입던 해진 겹바지를 꺼내 입었습니다.”

 

모든 학생들은 죽은 듯이 고요하고, 고개들이 말없이 수그러졌다. 선생님도 고개를 숙였다.

“그래 너는 네가 입을 샤쓰까지 버선까지 다 벗어 주었단 말이냐?”

 

“아니오. 버선과 샤쓰뿐만은 한 벌씩 남겼는데 저희 어머니가, 입었던 옷은 모두 남에게 주어 놓고 앉어서 추워서 발발 떠시는 고로 제가 ‘어머니, 저의 샤쓰라도 입으실까요?’ 하니까, ‘네 샤쓰도 모두 남 주었는데 웬 것이 두 벌씩 남어 있겠니?’ 하는 고로 저는 제가 입고 있는 것 한 벌뿐이면서도 ‘네, 두 벌 남었으니 하나는 어머니 입으시지요.’ 하고 입고 있던 것을 어저께 아침에 벗어 드렸습니다. 그러니까 ‘네가 먼 길에 학교 가기 추울 터인데 둘을 포개 입을 것을 그랬구나.’ 하시면서 받아 입으셨어요. 그러고 하도 발이 시려 하시면서 ‘이 애야 창남아, 너 버선도 두 켤레가 있느냐?’ 하시기에 신고 있는 것 한 켤레뿐이건마는 ‘네, 두 켤레올시다. 하나는 어머니 신으시지요.’ 하고 거짓말을 하고, 신었던 것을 어제 저녁에 벗어 드렸습니다. 저는 그렇게 어머니께 거짓말을 하였습니다. 나쁜 일인 줄은 알면서도 거짓말을 하였습니다. 오늘도 아침에 나올 때에 ‘이 애야, 오늘같이 추운 날 샤쓰를 하나만 입어서 춥겠구나. 버선을 잘 신고 가거라.’ 하시기에 맨몸 맨발이면서도 ‘네, 샤쓰도 잘 입고 버선도 잘 신었으니까 춥지는 않습니다.’ 하고 속이고 나왔어요. 저는 거짓말쟁이가 되었습니다.” 하고 창남이는 고개를 숙였다.

 

“그러나 네가 거짓말을 하드래도 어머니께서는 너의 벌거벗은 가슴과 버선 없이 맨발로 짚신 신은 것을 보시고 아실 것이 아니냐?”

 

“아아, 선생님…….” 하는 창남이의 소리는 우는 소리같이 떨렸다. 그러고 그의 수그린 얼굴에서 눈물방울이 뚝뚝 그의 짚신 코에 떨어졌다.

 

“저희, 저희 어머니는 제가 여덟 살 되던 해에 눈이 멀으셔서 보지를 못하고 사신답니다.”

 

체육 선생의 얼굴에도 굵다란 눈물이 흘렀다. 와글와글하던 그 많은 학생들이 자는 것같이 고요하고 훌적훌적 훌적거리며 우는 소리만 여기서 저기서 조용히 들렸다.

 

 

BY ss8000 ON 9. 22, 2009 (어른들을 위한 순정 동화에서…)

 

아들 軍의혹 질문받은 추미애 “아들 더는 건드리지 말라”

출처 : http://news.chosun.com/site/data/html_dir/2020/07/01/2020070103910.html

 

어째서 위의 기사를 보고 10여 년 전에 게시판에 옮겼던 이 동화가 생각난지 모르겠다. 분명한 것은 추미애의‘빗나간 모성애와 비록 동화이기는 하지만 만년샤쓰의 주인공 창남이의 효도가 마구 교차되며 머릿속을 어지럽힌다. 아직 이 땅엔 만년샤쓰 창남이 같은 젊은이가 얼마든지 있을 것이다.

 

위 기사에 나는 이렇게 댓글을 달았다.

“정말 파렴치한 계집. 니 새끼 우는 것은 화나고 수십만의 젊은이가 분통 터트리는 건 괜찮은가? 정말 옆에 있으면 빵에 가더라도 싸다구 한 대 올려 붙이고 싶다. 그게 안 돼면 침이라도 면상에 뱉어 주고 싶다.캬~악! 퉤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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