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의 통절(痛切)한 반성(反省)

 

 

(상략)

나름 중국이라는 나라로 인해 입에 풀칠을 하고 목구멍의 거미줄을 제거하고 있음에도 도대체 왜 그럴까? 아무리 머리를 좌우로 꼬고 흔들어 봐도 뚜렷한 이유가 없을 것 같은데 보다 깊이 생각해 보면, 그 하나는 중국 이미그레이션의 고압적 자세인 것이다. 중국을 여행 삼아 한두 번 다녀오신 분들은 잘 기억을 못하시거나 아예 그런 생각조차도 없겠지만, 중국의 출입국관리 대(臺)엔 말단 관리의 친절(親切)도를 계측하는 단추가(아주 친절, 친절, 시간이 오래 걸림. 불친절)붙어 있다.

 

그게 무슨 상관이냐고 하겠지만, 변방(국경)관리소 직원의 웃음기 없는 싸늘한(중국은 늘 그렇다)눈빛으로 여권의 사진과 실물을 대조하며 눈을 아래위로 깔 때는 기분이 몹시 언짢다. 중간 중간 눈이 파란 외국인은 대충 훑어보고 입국도장을 쾅쾅 찍는 것에 비하면 화까지 나려는 참에 계측단추(친절, 보통, 불친절)에 불이 들어오며 강요를 할 때 어떤 놈(년)이‘불친절’하다는 단추에 손가락을 대겠는가? 근데 더 큰 문제는 그 모든 과정이 한글이라는 사실이고, 어쩔 수 없이‘친절’이라는 단추를 누르면 입국허가 도장을 찍은 여권을 내 줌과 동시에 녹음이 된 기계에서‘감사합니다. 안녕히 가십시오.’라며 그때서야 날아갈 듯 한 인사를 우리말로 한다. 중국의 큰 도시 유수한 공항에 대한민국 국민만 드나드는 게 아닐진대 굳이 우리에게만 친절함을 강요할 때 이미 기분이 더러워진다.(중략)

 

그들도 혼례식과 함께 피로연을 호텔이나 대형 식당에서 한다. 어쩌다 하객들과 조우하고 함께 승강기라도 타면 꽉 찬 그런 공간에서도 담배를 피워대는 미친놈들이 꼭 한두 놈 있다. 분명 공공장소 또는 특히 승강기 내에서 담배를 피우지 못하도록 법이 정해져 있을 테지만 법을 무시하는 우민(愚民)들이 문제인 것이다. 결국 당국은 법을 만들고도 크게 단속을 않는 것을 보면 우민을 위한 우민정치를 펼치며 위정자 저들 나름의 편의를 취하는 것이다. 나는 이런 광경이나 행태를 접할 때마다 분노하고 울분을 터트리지만, 사실 내심으로는 쾌재를 부른다.“그래! 너희들은 아직 멀었다”라며….중국이라는 나라를 한마디로 표현하라면 나는“무질서가 지배하는 나라”라고 정의 하겠다. 따라서 오늘 썰 제목을‘중국 겁 낼 것 없다.’라고 하는 것이다.

 

중국 진출 초창기 같은 아파트 앞집 현지인이 꼭 문을 열고 크게 음악을 틀곤 했었다. 언젠가 너무 신경이 쓰이고 짜증도 나고 하여 음악을 좀 줄여 줄 수 없겠느냐고 사정을 했더니‘자신들은 음악을 크게 틀고 즐길 자유가 있다’며 항변을 하는 것이었다. 자유? 자신이 누릴 자유 때문에 타인 그것도 외국인인 나 같은 놈이 조용히 살아 갈 자유는 빼앗으며 자유타령을 하는 그 무례함. 이게 곧 보통 중국인들의 무례한 민심이다.

 

무질서 극치의 나라 군대가 외형적으로 아무리 종(縱)과 횡(橫), 오(伍)와 열(列)이 찬란해도 그것은 외형적일 뿐 실제 어떤 위급함이 닥칠 경우 그 극치의 무질서가 어딜 가겠는가. 자신들의 자유만을 강조하는 그 무례와 오만함 역시 위기의 순간엔 흐트러지고 스스로 무너질 수밖에 없는 치명적 약점이 있는 것이다.

 

이상의 얘기는 순전히 나의 감정적이거나 감상적인 견해가 아니다. 20여 년 중국인과 중국 지도자들을 심층적으로 지켜보고 분석해 본 결론이다. 눈을 감고 이상의 얘기들을 조용히 생각을 가다듬어 보면 내 말이 틀린데 있는가? 그래서 다시 한 번 강조하지만‘중국 겁 낼 것 없다’라고 하는 것이다.

 

BY ss8000 ON 2. 1, 2018(중국 겁 낼 것 없다 에서….)

 

사실 중국은 두려워할 대상이 아니라는 글을 수십 꼭지 블로그에 남겨 두었다. 15년 가까이 상주하며 그들과 부대끼며 생활한 결론이다. 내가‘어쩌다 나가사끼 짬뽕’이라는 책자를 만들며 일본과 그들을 부러워했던 이유는 그들이 철저히 지켜지는 질서(秩序)와 국민적 단합(團合)을 부럽기 보다는 두려워했기 때문이다. 그들은 국가적 위기가 닥칠 때 일사불란(一絲不亂)하게 흐트러짐이 없다. 중국은 그 반대이기에 중국은 두렵지 않다고 했던 것이다.

 

“미국이 때려도 우릴 동정하는 나라 없다” 中의 통절한 반성

https://news.joins.com/article/23828567?cloc=joongang-home-newslistleft

 

코로나가 발생하기 전 중국을 다녀온 게 지난 해 10월이었다. 바쁜 아들놈 대신 중국을 다녀오면 얼마간의 용돈을 챙길 수 있어 갔었다. 거래처 사장이 공항까지 나를 픽업 나왔다. 항주(杭州: 소산국제공항)공항을 벗어나 시 중심부로 들어서던 차가 교통법규를 위반 했다. 신호위반 이었다. 그런데 벌과금이 엄청(국민소득에 비한…)높았다. 중국의 법은 공산국가답게 아량이 없다. 죄인에게 인권 따위는 없다. 심지어 범인의 가족까지 연좌 시킨다.

 

교통법규를 위반 했을 시 상상 이상의 벌과금을 부과(付過)시키는 것은 질서를 바로 잡겠다는 의지인 것이다. 중국이 변하고 있는 것이다. 이른바 무질서를 타파(打破)하겠다는 의지를 보이는 것이다. 어쩌면 가혹(苛酷)한 것 같지만 그것이 법치주의(法治主義)인 것이다.

 

선진국(先進國)은 그냥 선진국이 아니다. 법치(法治)가 제대로 서 있는 나라들이 선진국이다. 미국이 유럽 제국이 하다못해 도시국가인 싱가포르가….법집행에 아량이나 도량이 없다. 그들은 참혹(慘酷)하리만치 법집행을 해 가며 선진국 대열을 이룬 것이다.

 

대오각성(大悟覺醒), 통절(痛切)한 반성(反省)은 같은 맥락이다. 크게 깨닫고 그 동안의 과오를 뉘우치며 같은 실수는 하지 않겠다는 굳은 다짐. 중국이 진정한 반성을 하고 질서를 유지 할 때 그 때는 진정으로 그들을 두려워해야 할 것이다. 중국의 통절한 반성을 예의 주시해야 할 것이다. 그리고 우리야 말로 삽살개 정권의 이 더러운 무질서 속에서 빠져 나와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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