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동훈 검사장의 백의종군(白衣從軍)

 

내 처가는 수원 백(白)씨다. 처가 자랑을 하자는 게 아니고, 둘째 처남 이름이 백종군이다. 제법 잘 산다(경제적으로 윤택하다는 의미). 이것을 자랑(?잘 살거나 말거나 나와는 불심상관이다)하자는 것도 아니다. 오늘의 썰제가‘백의종군’이다. 즉 백종군이 옷을 입으면 백의종군이고 옷을 벗으면 그냥 백종군이라는 아재 개그 한마디…ㅋㅋㅋ…

 

유비가 황건적 소탕에 공을 세우고 천신만고(千辛萬苦) 끝에 얻은 벼슬자리는 정주 안희현(定州安喜縣 :지금의 하북성 정현 동남쪽 지역)의 현위(縣尉): 녹봉은 200석에서 400석까지로 다양하며, 도적을 막고 치안을 유지하는 일을 했다. 요즘으로 치면 파출소장 정도의 직급)라는 미관말직이었다. (주: 파출소장이 미관말직이라는 얘기가 아니라 그의 공적에 비해 내려진 직급이 너무 낮았다는 의미다. 파출소장님들 오해 없으시기…^^)

 

아무튼 그가 직무를 맡은 지 얼마 되지 않아 조정에서는 조서를 내려 장차 군공(軍功)으로 장리(長吏)가 된 자를 도태시키겠다고 하였다. 군(郡)의 독우(督郵: 군(郡)태수에 소속된 관헌으로 군에 소속된 현(縣)을 감독하고 현의 관리를 심사하여 지방의 간교한 권세가 들을 관리하거나 제어 했다. 아울러 소송사건이나 도망자를 붙잡는 등의 형사 소송권과 소추권도 가지고 있었다. 대개 한 군에 셋 또는 다섯을 두었고, 각 군마다 달랐다. 암행어사와 비슷한 성격의 관리이며 오늘날 감사원과 같은 직책이다.)가 안희현(安喜縣)으로 가서 시찰을 하는데, 오만하고 예의가 없을 뿐 아니라 세력을 믿고 뇌물을 요구하기도 하였다. 유비가 뇌물을 주지 않자 독우는 현의 아전을 협박하여 유비가 백성을 헤쳤다고 무고(誣告)하게 하였다. 유비는 몇 차례나 역관으로 가서 죄를 면하여 줄 것을 청하였으나 문 밖에서 거절만 당한다. 장비가 이를 듣고 크게 화를 내며 역관으로 돌입하여 독우를 끌어내고 관아 앞 말뚝에 묶어 버드나무가지로 놈을 뒤지게 팼다. 유비가 이 소식을 듣고 장비에게로 달려가 반 쯤 죽어가는 독우의 목에 현위(縣慰)명패를 걸어두고 벼슬을 버린 채 떠난다. 바로 그 장면에서 백성들이 구름같이 유비에게로 모여들어“쿠오바디스!!! 상공! 우리를 버리시고 어디로 가시나이까?”라며 온 현(縣)의 백성들이 눈물을 흘리며 유현덕의 가는 길을 막았다고 전해진다.(사실 유비 얘기를 하려고 한 게 아니다.)

 

위의 얘기와 비슷한 고사가 우리의 역사에도 있다. 성웅 이순신 장군의 난중일기가 정유재란이 발발하는 1597년 1월부터 3월까지의 일기는 빠져있다. 그 당시의 역사를 잠시 기록으로 뽑아보자. 1597년(선조30)1월 정유재란 발발.

 

1월 21일: 왜군이 거짓으로 꾸민 밀서를 그대로 믿은 조정에서 출동 명령을 내리나 이를 어기고 출동하지 않음

 

1월 27일: 삼도수군통제사에서 파직됨

2월 24일: 한성으로 압송됨

3월 4일: 모진 고문을 받고 투옥됨

4월 1일: 투옥 된지 28일 만에 출옥하여 권율 휘하에서 백의종군함

 

2월 24일 한성으로 압송 될 당시의 상황을 역사에는 이렇게 기록되어있다.“삼문밖에는 이순신 장군을 실어갈 함거(檻車)가 놓여있다. 장군은 머리를 풀어 산발하고 오랏줄에 결박된 채 부자유한 몸으로 나졸에게 붙들려 함거 속으로 들어간다. 만고의 영웅인 장군이 까닭 없이 누명을 쓰고 한성으로 잡혀간다니 그곳의 백성들은 모두가 부모상을 당한 듯 황황하고 초조하다. ‘우리 사또를 왜 잡아 가시오, 사또가 가시면 우리는 어이 살라하오, 망극하오. 우리는 장차 누구를 믿고 누구를 의지하고 산단 말이오,,,,,,,함거에 오르는 장군의 모습을 보자 백성들은 통곡을 하며 함거를 둘러싸고 장군을 얼싸 안는다. 금부나졸이 육모방망이를 휘둘러 백성들을 내쫓는다. 흰 옷을 입은 백성들은 매를 얻어맞으면서도 흩어지지 않는다.”이상 두 가지의 역사적 사실은 영웅이나 성웅이 관리 또는 나라로부터 핍박을 받거나 위해(危害)를 당할 시, 그들의 공덕에 감화를 받은 백성들이 안타까워하고 미력이나마 항거를 했다는 기록이다.

 

언제부터인가 백의종군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분이 윗 썰의 이순신 장군인데, 어쩌다 요즘은 백의종군을 우리 둘째 처남 옷 입었을 때와 옷 벗었을 때만큼이나 가벼이 본다. 그 양반이 그토록 소나 개나 마구잡이로 함부로 입에 담을 작태를 벌이며, 하다하다 안 돼서 백의종군을 하셨다는 말인가? 그 양반이 백의종군 할 때는 안티 이순신으로부터, 당시로는 불가항력(不可抗力)적인 질시와 모함에 의한 어쩔 수 없는 불가분(不可分)의 선택이었던 것이다.

 

백의종군은 아무런 관직도 없이 평민의 신분으로 전장에 나가는 것을 말 하는 것이고, 그것은 애국충정의 발로에서 가능한 것이지, 대구 말고 소나 개나 주둥이로 나불거리는 것이 아니다. 이 더런 것들의 웃기는 짬뽕은 꼭 무슨 일을 저지른 뒤 질타의 대상이 될 만하면, 크게 회개하는 듯, 정체불명의 뒤 끝을 남기고 백의종군을 하겠단다. 백의종군이 무슨 불법에 의한 면피용 단어가 아니라면, 너무 지나치게 남용하는 자들이 많아 해보는 소리다.(하략)

 

백의종군(白衣從軍)

BY ss8000 ON 8. 29, 2006(“백의종군(白衣從軍)에서….”)

 

 

한동훈 검사장의 호소 “지금의 광풍, 억울하게 감옥가도 이겨내겠다”

출처 : http://news.chosun.com/site/data/html_dir/2020/07/25/2020072500451.html

 

갑자기 10여 년 전 위의 얘기가 왜 생각났는지 모르지만, 딱 한마디로 정의 하자면 “한동훈 검사장”의 심정이 바로 이런(백의종군)게 아닐까? 그래서 기사 아래 이런 댓글을 달았다.

 

“정의가 반드시 이긴다고 事必歸正이라고 했습니다. 한 검사장 고맙고 감사하오. 끝까지 이겨 내십시오. 아니한 얘기로 놈들의 마수에 걸려든다 해도 그대가 이 민족과 국가를 구하는 훌륭한 밑밥이 되고도 남을 것입니다. 삽살개와 그 패거리들이 휘두르는 권력이라는 몽둥이의 효력은 5년밖에 有限하지 않습니다. 그것도 이미 3년은 소진된 힘입니다. 놈들이 권좌에서 떨어진 훗날 당신과 온 국민을 분노케 한 원흉들을 색출하여 응징하는 날이 반드시 올 것입니다. 질곡을 벗어나는 그날까지 힘을 내십시오. 우리 국민이 두 눈 뜨고 정의로운 당신을 지켜보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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