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각지보(過刻之報)

 

전국시대 때 위앙(衛鞅) 또는 상앙(商鞅)이라는 인물이 있었다. 원래 위(衛)나라 귀족출신으로 일찍부터 형법학(刑法學)에 조예가 깊었다. 그러나 조국 위(衛)나라가 워낙 소국이라 큰 뜻을 펼치기 힘든 나머지 위(魏)나라로 가서 벼슬살이를 하려 했으나 그곳에서 받아들여지지 않아, 다시 진(秦)나라로 발길을 돌려 마침내 진효공(秦孝公)에 의해 채용 되었고, 부국강병의 계책을 세워 후일 진시황제가 천하통일의 기반이 되는 공적을 세움으로 정승의 반열에 오르며 상(商:지금의 협서성 상현지방)지방을 봉록으로 받으면서 상앙(商鞅)으로 불리게 된다.

 

아무튼 상앙이 진효공에게 감사의 인사를 드리고 봉읍인 상군(商郡)으로 돌아가 그의 가신들과 문객들에게“나는 위(衛)나라의 서손 출신에 불과했지만 머리에 들어 있는 계책 하나로 진나라에 들어와 법치를 이루고 나라를 부강하게 하였소. 오늘 다시 위나라의 하서 땅 700리를 빼앗아 진나라의 영토를 동쪽으로 넓힌 공로로 15개의 성에 봉해졌으니 대장부가 이 정도로 뜻을 이루었으니 가히 그 극에 달했다고 말 할 수 있겠소.”그의 말이 떨어지자 상앙의 가신과 문객들이 일제히 상앙을 칭송했다.

 

그런데 한 사람의 문객이 큰 소리로 외치며 상앙의 앞으로 나왔다. “천 사람의 옳다는 말은 한 사람 선비의 직언보다 못하다고 합니다. 그대들은 상군의 문하에서 먹고살면서 어찌 아첨하는 말만하여 주인을 함정에 빠뜨리고 있는가?” 사람들이 보니 그는 곧 상앙이 상빈으로 모시고 있던 조량(趙良)이라는 사람이었다.

 

상앙이 물었다.“선생은 여러 사람들보고 아첨하는 말만 한다고 했는데 그렇다면 진나라의 치세를 이룬 나와 오고대부(五羖大夫) 백리해와 비교해서 누가 더 현능하다고 생각하는지 한번 말씀해 보시오.”그러자 조량은 상앙과 백리해의 공과를 요목조목 비교해 가며 상앙의 오만함을 지적하며 덧붙여 말하기를“어느 날 갑자기 진군(秦君: 진효공)께서 유명을 달리한다면 대감의 처지는 아침이슬처럼 위태로워질 것입니다. 그런데 아직도 재물과 그 작위를 탐하면서 오히려 스스로 대장부임을 자만하고 있습니다. 어진 사람을 천거하여 대감의 자리를 대신하게 하고 지나친 봉록과 작위를 공실에 반환하고 향리로 은퇴하여 밭을 갈며 남은여생을 보내시려고 한다면 아직도 기회는 있다고 생각합니다.” (오고대부는 진목공 때 승상이었고 20여 개의 나라를 진나라에 병합해 진목공을 서융의 패자로 만들었다. 그가 수레를 타고 다닐 때는 비록 찌는 듯이 더운 날씨임에도 결코 덮개를 덮고 다니지 않았으며 일을 할 때는 비록 피곤함에도 결코 자리에 앉지 않았다. 그가 죽자 백성들은 마치 돌아가신 부모를 대하듯이 슬피 울었다.)

 

그러나 이미 권력에 맛이 간 상앙이 그런 충고가 귀에 들어올 리 없었다. 오히려 마음속으로 불쾌하기만 했다. 그런데 우연하게도 그런 대화가 오간 5일 후에 진효공이 병이 들어 죽는다. 그리고 그 뒤를 이은 이가 진혜문공(秦惠文公)이다. 상앙은 자기가 선대의 구신이라고 스스로 자부하여 궁궐의 출입을 오만하게 했다.

 

그렇지 않아도 얄미운 놈이 그 따위 행태를 보이자 진문혜공은 상앙을 제거하려고 마음먹는다. 그러나 선왕이 중용했던 신하라 당장은 어찌할 수가 없었다. 그런 가운데 상앙에게 구원이 있었던 인물들이“상앙이 모반하려고 한다”고 참소를 한다. 드디어 진문혜공은 대노하여 상앙을 잡아들이라는 명령을 내린다.

 

 

크게 놀란 상앙은 결국 두려워하며 급히 의관을 벗어 던지고 수레에서 내려 종복으로 분장하고 도망쳤다. 이윽고 위나라로 넘어가는 관문에 당도했을 때는 해가 뉘엿뉘엿 서산으로 넘어가려고 하던 황혼 무렵이었다. 상앙이 하루 밤을 투숙하려고 여관에 들렀다. 여관의 주인이 상앙의 신분을 증명하는 첩(帖)을 요구했으나 상앙은 가지고 있지 않다고 말했다. 여관의 주인이 말했다. “상군의 법은 신분증을 가지고 있지 않은 사람을 투숙시키면 안 된다고 했습니다. 이 법을 어기는 자는 신분증 없이 투숙하려는 자와 함께 참수형에 처하게 되어있는데 내가 어떻게 손님을 재워 줄 수 있겠습니까?” 상앙이 탄식하며 말했다. “내가 이 법을 만들어 시행하게 했는데 이제 내가 그 법에 걸려 몸을 망치게 되었구나!”

 

결국 여관 주인의 신고로 사로잡혀 포승줄에 묶여서 함양성으로 압송되었다. 혜문공이 상앙의 죄를 열거하며 성중의 저자거리로 끌고 나가 오우분시(五牛分尸:거열()형이라고도 함, 팔다리 사지와 모가지를 소 다섯 마리가 찢어 죽이는 형)의 형에 처하도록 명한다. 이윽고 함양성의 저자거리에서 형에 처해져 참혹하게 살해된 상앙의 시신에 시중의 백성들이 서로 다투어 달려들어 뜯어먹자 상앙의 시체는 삽시간에 흔적도 없이 사라져 버렸다.

 

혜문공의 명에 의하여 상앙의 가족과 그 종족들을 모조리 멸족시켰다. 가련하게도 상앙은 변법을 시행하여 진나라를 부강하게 만들었음에도 오늘날 오히려 오우분시형에 처해 지고 그 가족과 종족들은 멸족을 당하니 어찌 그 업보를 삽시간에 받지 않았다고 말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상오봉읍미경년(商於封邑未經年):상오에 봉해지고 해가 바뀌기도 전에

오로분시역가련(五路分尸亦可憐):오우분시를 당했으니 참으로 가련하구나!

참각종래흉보지(慘刻從來兇報至):평소에 참혹하고 각박하게 굴면 흉한 업보를 당하니

권군숙독성형편(勸君熟讀省刑篇):죽어서나마 형법 공부를 열심히 하게나!

(‘염옹’이라는 시인이 노래 했다.)

 

상앙이 죽자 백성들은 모두 거리로 나와 노래를 부르고 춤을 추면서 마치 무거운 짐을 벗어 던진 것처럼 행동했다. 이를 일컬어 과각지보(過刻之報)라 한다. 즉 생전에 지나치게 각박하게 살아 그 업보를 받았다는 뜻이다.

 

대전 물난리 사망 뉴스 앞, 황운하와 친구들은 ‘엄지척’

출처 : http://news.chosun.com/site/data/html_dir/2020/07/30/2020073003557.html

 

지금 나라 돌아가는 꼬라지가 그렇다. 삽살개, 추미애, 김현미, 이성윤, 정진웅, 집권 여당 모든 국개와 관료들….특히’엄지척’한 황가와 친구들…… 과각지보(過刻之報) 그날이 멀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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