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찰을 위한 변명.

딱 두 마디만 하고 싶다. 그 첫 번째, 털어서 먼지 안 나는 놈 없다. 그 두 번째, 정말 하늘을 우러러 한 점 부끄러움 없는 자들은 검찰을 향해 돌을 던져라.

 

세상을 살다보면 나 자신이 모르고 저지르는 죄도 많다. 스스로 부끄러울 것 하나 없다는 인간들 현미경으로 들여다보면 범죄(범법) 인자(因子)허용치 수십 수백 배로 바글 거릴 것이다. 다만 본인들이 인지하지 못할 뿐이다.

 

나는 오늘 비리 검찰을 옹호할 마음은 추호도 없다. 그러나 개나 소나 검찰을 향해 악지가리를 널어놓지는 말라는 거다. 이런 부류의 인간들 과거든 현재든 아니면 앞날에라도 검찰에 당한 경험이 있거나 당하고 있거나 앞으로 검찰에 당할 소지가 다분히 있는 자들이다. 여기서‘당’한다 함은 검찰의 권위적이고 좀은 고압적인 태도를 의미하는 것이다. 솔직히 나는 몇 차례 검찰에 다녀 본 경험이 있다. 당시 그들의 고압적이고 권위적인 태도에 불만과 두려움을 가진 적이 있었지만, 그러나 오늘의 내가 하고자 하는 얘기와는 별개다.

 

분명한 것은 검찰이 잘 했다는 게 아니다. 검찰도 나쁘지만, 그 보다 더 나쁜 것은20년씩이나 그런 비리를 조장한 놈이 이제와 발설하는 것 자체가 인간 이하의 개수작이다. 수년 전 어떤 변호사라는 자가‘삼성비자금’문제를 발설하여 각광(?)을 받은 적이 있었다. 실컷 제 먹을 것 이용할 것 다 한 뒤 가당치도 않은 양심선언이라는 가면을 쓰고 비리고발을 했을 때 그가 과연 정의로움 때문에 그런 짓을 저질렀을까? 이번 검찰커넥션도 마찬 가지다. 한두 해도 아니고20년을 넘게 검찰의 비호를 받은 자가 이제와 양심선언을 한다? 뇌물을 먹이는 자가20년 동안 그 내용을 빠짐없이 기록한 이유부터가 순수치 못한 자다. 그래서 나는 검찰을 욕하기 전 이런 자부터 징치하고 연후에 자신들의 가슴에 손을 올려 그래도 깨끗하다고 하는 사람들만 검찰에 돌을 던지자는 것이다.

 

어쨌든 검찰의 옳고 그름을 떠나 밀고와 폭로는 없어져야한다. 아래 썰은 아주 오래 전 이곳에 올렸던 것을 재방송하는 것이다. 그때도 어떤 폭로사건이 있은 뒤 아래 썰을 풀었든 것이다. 꼭 검찰만이 욕을 먹어야 하는지….아니면 한 건 올리기 위한 빨/방송국의 저속한 행태인지 각자 알아서 생각해 보자. 솔직히 기자라는 놈들 특히 오늘날 공영방송국의PD나 기자 나부랭이들 더 등쳐먹고 사는 부류들이다. 각설하고…..

 

漢헌제는 명목상의 황제일 뿐 모든 권력은 이미 조조에게 넘어간 상태였다. 헌제에게는 눈에 넣어도 안 아플 여인이 있었으니, 그녀가 동귀비(董貴妃)였다. 헌제는 그녀를 끔찍이 사랑했지만 그녀는 제대로 피어 보지도 못하고 죽었다. 실로 안타까운 것은 황제의 씨앗을 회임(懷妊)하여 임신5개월의 몸으로 조조에게 끌려가 목매달려 죽임을 당한 것이다.

 

동귀비 사건을 얘기하자면 그의 오라비 되는 동승(董承)을 얘기 아니 할 수 없다. 동승은 漢영제의 모친인 동태후(董太后)의 조카이자 헌제의 둘째 부인 동귀비의 친오라비였다. 거기장군(경호실장)에 임명되어 항시 헌제를 곁에서 보좌 했었는데, 어느 날 국권을 농락하는 조조의 만행에 분노한 헌제의 밀명을 받고 유비를 위시하여 의원(醫員)길평 오자복 등 몇몇 애국지사들과 조조를 척살하기로 계획을 모의 하였다 발각되어, 유비는 달아났으나 나머지는 모조리 붙잡혀 동승과 함께 참형을 당했던 것이다. 그 해가 서기200년(단기2533년 중국 漢헌제 건안5년, 신라 내해이사금5년, 고구려 산상왕4년, 백제 초고왕35년)이며 동귀비를 애꿎게 이 사건과 연관 시켜 조조는 악독하게도 임신5개월인 그녀를 황제가 보는 앞에서 목 졸라 죽인 것이다. 그럼 어찌하여 조조라는 역적을 제거 시킬 모의가 세상에 들어났는가?

 

원래 동승에게는 진경동(秦慶童)이라는 종이 있었다. 이 놈이 허우대가 멀쩡하고 제법 힘 꽤나쓰는 놈이었다. 동승에게는 눈에 넣어도 안 아플 애첩(愛妾)이 하나 있었으니 운영(雲英)이라고 했다. 유비 등과 조조를 죽이고 국권을 되 찾아 황제께 바치겠다는 모의를 한 그날 밤 모든 손님은 돌아가고 정신이 상쾌하고 희망이 부푼 그 저녁, 동승은 오랜만에 애첩 운영의 살 내음이 그리웠다. 그리하여 운영의 처소인 후원 별당으로 천천히 발길을 옮기던 중 저만큼 남녀의 교성(嬌聲)과 희롱하는 소리를 듣는다. 교교(皎皎)한 원소절 보름 달빛 아래 찬찬히 살펴보니 상노(床奴)진경동과 애첩 운영이 그 짓을 하고 있는 게 아닌가.

 

뭐, 하기는 동승은 당시70이 넘은 나이 였고 운영은 갓20이 된 나이라 운영의 적막한 공규(空閨)와 물이 오를 대로 오른 육체를 어찌 달래줄 수가 있었겠는가마는, 역적을 처단할 수 있다는 부푼 희망이 동승으로 하여 운영의 육체를 탐닉(耽溺)할 기분을 자아내게 했고 바삐 발걸음을 하던 도중 그 광경을 목격했으니 체면이고 체통이고 무슨 소용이 있겠는가. 분노로 전신이 부들부들 떨려오고 낯빛은 해쓱해지며 분함을 참을 수 없었다.

 

호통을 쳐서 구종을 불러 모아 후원 초당으로 달려가 불문곡직(不問曲直)진경동과 애첩운영을 붙잡아오게 하여 문초를 하고 보니 그들의 관계는 꽤 오랜 된 것이었다. 두 년 놈을 한 매에 때려죽이려 장(杖)50도 씩을 때리고 40대를 더 때릴 때, 그 광경을 목격한 동승의 본부인이‘인명은 존귀한 것이니 죽이지는 말라’며 간한다. 단 매에 그 두 년 놈을 쳐 죽였으면 자신과 동지들의 목숨은 그렇게 허무하게 달아나지 않았을 것이며 조조 역적 놈도 죽일 수 있었을 테고 거사를 이루어 국권도 찾고 황제께 충성도 할 수 있었으련만, 조조의 명이 길거나 漢나라의 운명이 그것밖에 안 되었는지, 동승은 부인의 말을 존중하였고, 진경동과 애첩 운영을 냉방에 가두어두었다.

 

그날 밤 진경동은 묶인 포승을 풀고 잠긴 문을 비틀어 뜯고 담을 넘어 조조의 승상부로 달려갔던 것이다. 진경동 그놈이 승상부로 달려간 것을 이 자리에 고주 왈 메주 왈 다 옮길 수 없고, 다만 진경동은 그간 주인 동승의 집안에서 벌어졌던 모든 일과 드나들던 인물들을 하나 빠트리지 않고 고해바친 것이다. 이후 모든 관계자를 붙잡아 올린 조조는 소위 안가에서 고문하기 시작했고, 아무리 시치미를 떼고 부정을 해 본들 애국지사들의 살만 더 찢어지고 피만 더 튀기는 것이었다. 결국 진경동과 대질심문까지 벌인 끝에 그들은 그렇게 안타깝게 형장의 이슬로 사라지고 말았던 것이니 그때가 위에 기술한 대로 서기200년이다.(이거 한궈르바오(漢國日報)기사 그대로 옮긴 것이다.^^)

 

이상의 썰은 한 쌍의 남녀가 벌인 불륜으로 인해 국가적 거사가 물거품이 되었다는 것을 강조하기 위함이 아니다. 그런 밀고(密告)사건이 있은 다음 조조가 취한 행동을 눈여겨 볼 필요가있다. 조조는 그 사건을 마무리 지은 다음 진경동과 운영을 불러 들였다. 두 년 놈은 큰 상이나 받을 줄 알고 희망에 부풀어 조조 계하에 부복(俯伏)하였으나, 조조의 지엄한 명령은‘두 년놈은 상전을 밀고(密告)한 인간 망종(亡種)이라 저자거리로 끌고 가 참수하라’는 것이었다. 당연히 진경동과 운영은 목 없는 귀신이 되었고, 이 광경을 지켜 본 백성들은 목 없는 시체에 침을 뱉으며“어쭈구리~!조조가 제법인데…”라며 칭송을 했다는 것이다.

 

BY ss8000 ON 4. 23, 2010(검찰을 위한 변명에서…)

 

 

[사설] 정권 홍위병 검사 승진잔치, 추미애식 법치파괴 인사

출처 : http://news.chosun.com/site/data/html_dir/2020/08/08/2020080800005.html

 

위 썰을 무엇 때문에 어떤 목적으로 풀었는지 기억이 나지 않는다. 그러나 오늘날 검찰이라는 공권력이 갈라지고 쪼개지는 과정을 살펴보면 어떤 쪽이 보호를 받아야 하고 또 어느 쪽이 진경동과 운영이 년처럼 목 없는 귀신이 될 천벌 받을 짓을 하는지… 독자 제위 스스로 판단하시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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