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난(災難)에서도 배울 건 있다.(2부)

 

 

불행이 나쁜 것은 항상 겹치는데 있는 것이다. 그래서 설상가상(雪上加霜)이라는 말이 나온 것일 게다. 집은 뒷산의 사태로 뒤꼍과 마당은 최소한 1m이상 토사와 쓰레기가 밀려 왔다. 불행 중 다행은, 나중에 안 일이지만 집 뒤로는 옆집 문 선생(고교 교사)의 송림(松林)500여 평이 있다. 쓰러지고 부러진 거목과 바위 등은 그 송림에 걸리고 토사와 잔가지들만 내 집으로 밀려든 것이다.

 

마을 양반들은 지금도 그런다. 구사일생이다. 천운이다. 조상 덕이거나 덕을 많이 쌓았거나…어느 것이나 정말 그랬다. 죽을 목숨이 살아났으니 명이 긴 것이다. 내가 낳던 그 해엔 염병(장티푸스)과 천연두가 횡행하여 영아의 사망률이 높아 대개는 한 돌이 지나도록 목숨을 부지해야 호적에 올리곤 했다. 1년이 지난 어느 날 할아버지는 5일 시장터에 돗자리를 깐 점쟁이에게 내 사주를 물어 보셨단다. 천역살과 역마살이 끼어 초년엔 고생을 많이 하겠으나 명은 최소한 여든까진 살 수 있을 거라는 괘가 나왔다고 전해 들었다.

 

40년대 80수명을 보장 받았다면 현대로 치면 100세는 족히 할 수 있는 괘다. 지금도 나는 몸이 아프거나 큰 병이 들어도 결코 주눅 들지 않고 그 점괘를 믿고 밀어 붙인다. 그래서인지 암 수술을 두 개나 받고도 거뜬한 것이라고 주장한다. 따라서 이런저런 운 보다 할아버지의 손자에 대한 정성과 그런 점괘를 내린 점쟁이 양반 덕이라고 생각하며 이구동성(異口同聲)으로 천만다행을 외치는 마을 양반들에게 감사하다는 말과는 달리 뒤로 엉큼한 미소를 머금는 것이다.

 

차고 앞에 잔뜩 쌓인 토사 때문에 도대체 차를 뺄 수가 없었다. 다행히 발 빠른 면(面)의 조치로 대형 중기가 억수같이 쏟아지는 빗속을 오르내리며 토사와 바위 따위를 쓸어서 한곳에 모으기도 잡아 삼킬 듯 흐르는 강(당시는 개울이라고 하기 엔 빈약하다)으로 밀어붙이는 것이다. 무조건 앞을 막고 사정 얘기를 했다. 우선 차고를 막고 있는 토사를 치워 달라는 간절한 부탁을 했다. 그는 나의 다급한 사정에 수고를 아끼지 않았다.

 

문제는 또 있었다. 마을 앞으로 흐르는 큰 내가 범람을 하여 통제를 한다는 것이었다. 그러나 정말 다행인 것은 산길을 따라 돌아가는 길은 아직 통행이 된다는 중기 기사의 전언이다. 황급히 차 안에서라도(고속도 휴게소) 갈아입을 옷가지를 가방에 넣고 흠뻑 젖은 몸을 차에 싣고 시동을 걸었다. 그리고 마을을 빠져 나온 것이다.

 

간다. 못 간다. 가지마라! 가야 해요! 둘째 딸아이의 캐나다 이민 영주권이 떨어진 것은 꼭 1년 전이다. 그것도 프랑스어권인 퀘백 주에서 2년을 거주하는 조건으로. 토론토다, 오타와다 최종 결정한 곳이 몬트리올이다. 지난 해 말쯤 이주를 하려고 했으나 코로나 사태로 갈 수도 또 받아 주지도 않았다. 드디어 6월부터 입국을 받아준다는 것이었다. 쌍둥이 손녀(초등3년) 중 하나가 약간의 감기기운으로 출발을 잠시 지체하니 7월에 들어섰고 현지에서는 8월4일까지 입국하지 않으면 모든 게 취소된다는 것이었다. 또 다른 문제는 7월 중순의 비행 스케쥴이 두 번이나 취소된 것이다. 마지막 8월4일 도착을 위해 출발을 시도한 게 우리 시간 8월3일 월요일이었고 8월2일 미명의 새벽에 나는 산사태를 맞은 것이다.

 

딸아이만 아니었으면 목숨을 걸고까지 서울에 갈 일이 아니었다. 토사가 밀려오는 집을 지켜보며 운명을 함께 했을지도 모른다. 이제 가면 당분간 나와 마누라가 그곳에 가기 전엔 사랑하는 쌍둥이를 볼 수 없다는 조바심이 그리고 딸아이도 마찬가지…그래서 장대비를 뚫고 서울로 서울로…

 

산길을 빠져나와 2km전방엔 준 고속도로인 38국도가 가로 지른다. 도로 입구에 들어서자 웬 놈의 차 한 대가 빽(back)으로 뒤돌아 나온다. 그 순간까지도 그 차가 진입을 잘못해 그렇게 빠져 나오는 줄 알았다. 운전도 더럽게 못하는 놈인가? 2분 정도가 20분은 되는 것 같았다. 그 동안 나는 있는 욕 없는 욕을 혼자 그 놈을 향해 했다. 드디어 그 차가 빠져 나가고 나는 기세 좋게 국도를 향해 올라가보니….(1km전방에는 다릿재 터널이라는 터널이 있다)

 

아풀싸! 세상에 이게 뭐란 말인가? 아무리 하느님께서 잔인하셔도 이럴 수는 없는 것이다. 준 고속도로는 표현 그대로 거대한 주차장이었다. 순간, 아! 내게 직접 들은 건 아니지만 어쨌든 디지게 욕먹은 그 친구 아니 약삭빠른 그 친구가 뒤 빠구로 차를 뺀 이유를 그때서야 알게 된 것이다. 약아 빠진 놈! 창문 열고 귀띔이나 해주지…내가 욕하는 소릴 듣기라도 했단 말인가?

 

귀향길 고속도로 뉴스를 듣기는 했어도 단 한 번도 경험해 본 적은 없다. 아마도 그런 거였을까? 그런데 10분이 지나도 20분이 지나도 움직이지도 않을 뿐 아니라 옆으로 파고들 수도 없었다. 그런데 내가 이곳까지 올라올 때는 나밖에 없었으나 이미 뭣도 모르는 나 같은 멍청한 운전자들이 이미 입구를 꽉 메웠다.

 

1시간을 넘게 기다리자 차가 서서히 움직였다 다시 멈췄다 하며 거의 시간 반 만에 터널입구에 도착하여 그곳을 통제하는 관계자에 물어보니 상경방향 터널출구가 산사태로 막혀 이런 사달이 났고, 하행방향의 터널 한 차선을 통제하며 차량을 교차시키는 것이었다. 순간 생각해 보니 이런 속도라면 대충 1.5km의 터널을 지나는 대도…얼마가 걸릴지 앞이 캄캄했다.

 

안 되겠다. 터널을 통과하지 않는 방법은 또 있다. 아까 약아빠진 자는 아마도 그래서 후진을 했을 것이다. 38국도와 다릿재 터널이 생기기 전까지 서울을 가려면 천등산 박달재의 구 길이 있다. 나는 가끔 인근 면의 맛 집을 찾기라도 하면 식사 후 아내와 그 길을 일부러 드라이브한다. 구불구불 구절양장(九折羊腸)같은 고갯길을 오르내리면 그런 낭만(?)이 또 없다.

 

옳거니 그 곳으로 가자. 마침 터널 입구에서는 U턴을 허용한다. 급히 U턴을 하여 마을로 들어가는 입구 쪽으로 달려가니(올라올 때의 반대 방향) 어머나! 그곳도 산사태가 나 통행이 금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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