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난(災難)에서도 배울 건 있다.(끝)

 

 

둘째 딸이 아이는 중국에서 대학을 마치고 다시 영국에서 2년을 유학했고 더욱이 해외여행을 무척 좋아했던 관계로 세계 이곳저곳을 섭렵하던 중 캐나다에 필이 꽂혀 그곳으로 이민을 간다고 입버릇처럼 얘기할 때마다 나는 지구촌에서 이 나라만큼 살기 좋은 나라는 없다며 말렸었다. 그런데 결혼 후 쌍둥이를 낳고 그 쌍둥이가 학령기가 가까워 오자 이런 나라에서 그것도 쌍둥이를 교육시킨다는 건 너무 어렵다며 이민 준비를 해오던 터였다. 쌍둥이 여섯 살 때는 아예 몬터리올로 날아가 6개월을 살다 오기도 했기에 이번 최종 이주목적지를 몬터리올로 정했던 것이다.

 

천지신명께 빌고 또 빌었다. 출국하는 과정에서 쌍둥이 하나가 약간의 미열(36.9)이 있다며 난감한 표정을 지었지만 이민초청장을 보여주고 통과하는 과정부터, 설령 이곳은 통과가 됐지만 현지에서는 통과가 될지??? 직항이 없는 관계로 일단 밴쿠버로 날아가 그곳에서 다시 몬터리올로 가야 하는, 더구나 두 시간 내에 이민 수속과 절차를 받고 다시 비행기(그것을 놓치면 10시간 이상 대기해야 한다는…)를 갈아타야 하는 빡빡한 스케쥴, 목적지에 도착한 후 2주간 자발적 격리를 해야 한다는 이런저런 난관. 이 모든 것을 무사히 통과하게 해 주십사….산사태로 엉망이 된 집 보다 먼저 아이들의 안녕을 천지신명 황천후토께 빌고 또 빌었다.

 

벌써 일주일이 다 되간다. 밴쿠버에 무사히 도착하여 모든 수속을 밟고 몬터이올행 비행기에 올랐다는 것과 예닐곱 시간 후 숙소에 도착해(실제는 당분간 거주해야할 숙소)자가 격리에 들어갔다는 것과 어제는 쌍둥이 중 언니가 집도 조그맣고 답답하다며 울먹이며 나 돌아가고 시~퍼!! 겨우 일주일 만에….ㅠㅠㅠ….

 

그런 아이들을 배웅하기 위해 장대비를 뚫고 서울로 향하던 중 그런 사달이 났던 것이다. 아무튼 급히 U턴을 하여 마을로 들어가는 입구 쪽으로 달려가니(올라올 때의 반대 방향) 그곳 역시 산사태로 통행금지가 된 것이다.

 

사실 말은 쉽게 표현 하지만, 그 길이야 눈을 감고도 다니던 길이 아니던가. 마을의 입구이기도 하고, 초조한 마음에 과속을 좀 했던 것인데 불과 수십m 앞에서 통행금지 고깔과 산사태 무더기를 보고 급정거와 함께 핸들을 틀었는데 뒤 따라 오던 차량들 역시 급제동 하는 소리가 들린다. 그리곤 하이빔을 깜빡이며 듣지 않아도 뻔한 육두문자를 날렸을 게….정말 아찔했다. 자칫 대형사고로 이어질 뻔 했으니 말이다. 비상 깜빡이를 켜 주며 용서를 빌었지만 그 게 통하지 않았던 모양이다. 뒤 따라오며 계속 하이빔을 깜빡이고 경적을 울리는 걸 보면 말이다. 그러거나 말거나 나는 악셀에 더욱 힘을 주며 도망치듯 달렸다.

 

마을 입구 방향에 산사태가 나지 않았으면 수백m밖에 안 되는 길이다. 그러나 그곳이 아니더라도 약 2km떨어진 곳에 면소재지로 진입하는 출구가 또 있다. 그곳을 통과하면 면 중심을 가로질러 다시 마을 쪽(터널방향)으로 4~5km 우회하는 길이 나오고 그곳에서 과거 서울을 오르내리던 천등산 박달재 구길이 나오는 것이다.

 

드디어 내가 원하던 목적지(구길)입구에 도착했다. 이제 이곳만 통과하면 무사히 터널을 통과하지 않고도 서울을 갈 수 있겠다는 희망이 벅차올랐다. OK! 요오씨! 됐어! 드디어 해냈어!

 

안도와 환희의 순간(길이 구부러져 전방이 안 보이는…)앞을 바라보니 하아~!!!!!! 하아~!!!!….한숨밖에 안 나왔다.

 

“진입불가”…. 구부정한 노인네 서넛이 장대같이 내리는 빗속에서 그 길을 통제하고 있는 것이었다. 굵은 빗줄기가 얼굴을 때리지만 차창을 열고 자초지종을 물어보니 멀지 않은 곳에 역시 산사태가 나 출입통제라는 것이다.(사실 그 길은 평소에 하루 종일 차량 열 대도 안 다닐…나처럼 마누라나 애인과 드라이브를 하며 낭만을 즐기는 낭만파들이나 다니는 한적한 드라이브 코스다.)방법이 없지 않은가. 그 길을 되돌아 처음 오르던 터널입구를 향해 다시….그런데 이미 그곳도…

 

나이 70이 넘고 어쩌면 황혼기에 접어든 나이임에도 조바심을 하고 서둘렀던 죄와 벌을 한꺼번에 받은 것이다. 인생은 늘 후회하며 산다지만 그래도 잠시만 진득하니 기다릴 줄 알았다면 이 사달은 나지 않았을 것이다. 뿐만 아니다. 인생은 역시 선택을 잘해야 하는 것이다. 사실U턴을 하기 전 내 차례가 됐을 때 터널로 진입할 것인가 말 것인가를 두고 잠시 고민을 하다 결국 U턴을 선택한 결과가 이런 사달을 불러온 것이다. 알고 보면 누구에게나 똑 같이 공평한 기회가 주어진다. 그러나 그 기회를 제대로 잡느냐 마느냐가 선택의 기로인 것이다. 편법을 써가며 돌고 돌아 제 자리에 왔을 땐 이미 늦은 것이다.

 

이곳에서 서울 집까지는 교통체증만 없다면 시간 반, 약간의 교통체증을 감안하더라도 두 시간 정도면 충분하다. 더구나 나는 여느 늙은이들과는 달리 새벽이나 한 밤중 운전을 좋아한다. 그런 한가한 시간대엔 시간 반도 걸리지 않는다. 아무튼 그날 다섯 시간을 조금 넘게 서울 집에 도착했고 다음 날 무사히 딸아이와 쌍둥이를 배웅했던 것이다.

 

그날 다짐했다.“이제라도 절대 서둘지 말자. 아니한 말로 급할수록 돌아가자. 그리고 누구에게나 똑 같은 기회가 주어졌을 때 두 번 다시 편법 따위는 선택은 하지 말자.” 이 또한 삽살개에게 충언하고 싶다. 그리고 재난(災難)에서 배운 것이다.

 

이 새벽에도 장대비가 쏟아진다. 그제부터 면에서 제공해 준 중장비로 산사태로 인한 토사를 걷어내고 있다. 당장은 진흙 뻘이라 한 곳에 쌓아두고 수분이 빠지기를 기다려야 한단다. 오늘부터는 군인을 자원봉사 팀과 보내 준단다. 보면 볼수록 기가 질리고 한심하지만 무너지고 쓸려가고 사상자도 있는데 이 정도면 그야말로 하늘의 도움이다. 며칠 고생 좀 해야겠다.

 

그나저나 비가 좀 그쳐야겠는데…….

2 Comments

  1. 비사벌

    2020년 8월 10일 at 11:50 오전

    오선생님
    따님과 쌍둥이손녀무사히 도착해서 정말다행입니다.
    따님은 선견지명이 있네요. 좋은일만 있기를 빕니다.
    오선생닙댁도 피해없기를 빕니다.
    정말 지겹고 더러운 나라에 더 살고 싶지는 않습니다.
    그래고 건강 조심하고 지내면 언젠가는 하느님도 정의의
    편에 서지않겠습니까? 실날같은 희망을 가지고 살고있습니다.
    뭉가 덕분에 30년산 강남아파트가 무지하게올라 팔고 미국딸네로
    이민가서 잘 먹고 잘 살려고 합니다.

    • ss8000

      2020년 8월 11일 at 4:14 오전

      이제 보았습니다.
      좀 전까지 죽는 줄 알았습니다.
      아직도 몸이 떨립니다. ㅠㅠ…
      웬만큼 수습됐다고 생각한 산사태 뒤처리가
      오히려 더 큰 재난을 불러 올 뻔 했습니다.
      잠시 전 극적으로 수습이 되어 지금 컴 앞에 앉아 있습니다.
      하늘께 아니 아랫 마을에 사는 동서에게 감사 해야겠습니다.
      아무튼…

      원장님 오랜만입니다.
      건재 하신듯 하여 마음이 놓입니다.
      축하의 말씀 감사합니다.

      요듬은 매일 쌍둥이 손녀들과 카톡으로 대화를 합니다. ㅎㅎ..
      예전 같으면 상상도 못할 국제전화요금이 무료라니 말입니다.
      지구 반대편에 있지만 곁에 있는 듯 하여 너무 좋습니다.

      저 역시 다음 정권이 바뀌지 않으면
      캐나다로 가려고 합니다.
      무비자 6개월 씩 지내다 한국. 미국 다른 나라 잠시 다녀오고 하는 식으로…
      아이들이 안정 되는 대로 집 사는 것부터 알아 보라고 했습니다.,

      그러나 무엇보다 원장님 말씀 대로 정의가 살아나는 게
      최선이고, 이곳에 뼈를 묻는 것 또한 원칙입니다.

      자화자찬 같습니다마는
      원장님이나 저나 나쁘게 살지 않았다는 증거입니다.
      우리가 이런 식으로 대화를 나눌 수 있다는 것 자체가….

      미국에 아주 아니 가시더라도
      기회가 되면 미국서 조우(?)하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것입니다.
      미국에서 얼굴 좀 보자는 분들이 아주 많습니다.

      그 분들이 못 오시니 그래도 조금 여유 있는 제가
      찾아 볼 계획입니다.

      어쨌거나 하나 둘 셋 건강을 유지해야 합니다.
      늘 강녕 하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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