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귀인(貴人) 끝 편.

 

 

버릴 데가 없어(사실은 남는 레미콘으로 떼 울 데가 여러 군데 있었지만 일부 필요 하다니…)가져간 잔여물인 줄 알았는데 처형 집 뒤꼍에 약10m의 없던 옹벽이 세워져 있는 것이었다. 그 광경을 보니 솔직히 기분이 많이 언짢았다. 그런데 그것 보다 우리 집의 구조물을 세우며 필요로 했던 자재들이 그곳에 쌓여 있었던 것이다.

 

가령 필요한 자재를 구입하는 곳의 계좌를 직접 연결해 주면 될 것을 굳이 돈이 없어 쩔쩔매는 처형이 선 결재를 했다며 자신의 통장으로 입금요구를 할 때도 좀은 깨름칙 했지만 엄 서방이 땀을 뻘뻘 흘리며 처형이 진 죄를 몸으로 때우며 벌을 받는다고 생각하면 그 정도는 이해 못할 것도 없었다. 아무튼 그 광경을 목격한 후 금전이 소요되는 일은 피하며 그런대로 처형과의 관계가 개선 되가는 중이었다.

 

엄 서방은 9월 중순이나 하순 경 배를 타러 간단다. 그런 가운데 노느니 염불한다고 엄 서방은 마을의 이곳저곳(우리 집 뒤로 최근 몇 년 간 팬션과 전원주택이 몇 채 들어섰다)에 데크나 다른 철골 일을 일당으로 일을 하고 있다. 근면. 성실하다고 정평이 나 있다. 어떤 이들은‘동서 분이 정말 일도 잘하고 부지런 합니다’라며 내게 일러 주는 분도 있을 만큼 열과 성을 다하는 모양이다. 말하자면 마을에서 칭찬을 받을 만큼 친화력도 있는 것 같다.

 

언젠가(이번 산사태 일어나기 한 달 전 쯤)크게 할 일도 없고 그가 어떤 일을 하는지 알고 싶어 그가 일하는 곳(우리 집 뒤의 새로 짓는 전원주택)을 가 보았다. 주인 되는 양반과 수인사도 나누고 주인 양반으로부터 엄서방의 일하는 솜씨나 태도가 너무 맘에 든다며 칭찬도 듣고.. 어쨌든 명색 동서의 일이니 기분이 우쭐하기 까지 했다.

 

그러던 중 이곳저곳 구경을 하다가 잔디밭 한 쪽에 세워져 있는‘흔들 그네’가 눈에 들어온다. 잠시 그네에 몸을 의탁한 채 흔들거리다 문득“이런 거 하나 있었으면 좋겠다(사실 전원주택이라면 누구나 있음직한 부속(?)물이다. 오래 전부터 하나 살까? 생각도 했었던…)”나의 독백 아닌 독백에 엄 서방은“형님 그 거 내가 만든 겁니다.”, “오~! 그래! 도대체 자네는 못 하는 게 뭔가?”진심어린 어쩌면 부러움의 표현을 하자 그는“ 형님! 제가 하나 만들어 드릴게요! 자재도 있으니 걱정 마시오”란다. 그러나 내가 공짜로 그런 걸 원 할 사람은 아니다.“에에이~! 무슨 얘기를… 당연히 수고비는 줄 테니 하나 만들어 봐!”

 

사실 그렇게 진지한 얘기가 오가지 않았기에 별로 기대를 했거나 바라지 않았는데 2~3일 아니면 3~4일 뒤 그네가 다 됐다며 싣고 올라와 조립을 할 테니 기다리라는 것이었다. 또한 그날이 주말이라 마누라도 이곳에 내려와 있었다.

 

사실 처형은 요즘 주기적으로 췌장암 치료와 함께 항암주사를 맞으러 서울로 다니고 있다. 그런 처형을 그는 조금도 귀찮아하지 않고 병원에 동행하며 병원에서 숙식도 마다 않고 있다. 얘기가 좀 뒤 바뀌긴 했지만, 겉으로 봐선 근 20세의 나이 차가 있지만 둘은 죽고 못 사는 것처럼 보인다. 그런데 처형 슬하의 남매는 그가 도저히 용납이 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더욱이 자신들과는 크게 차이도 없는 사람이 호적상(주민등록) 부(父)로 등재 되어 있는 게 신경이 쓰인다고 했다.

 

어느 날인가 나는 처 이질녀(처형의 딸)에게 직접 전화를 했다. “너희 엄마 이제 해방 시켜줘라! 옛날과는 다르게 이번 남자는 정말 진지한 만남 같다. 너희 남매가 엄마 간병을 직접 할 수 없는 형편이고 그런 사람이 옆에 있다는 사실이 얼마나 다행이냐? 그리고 향후 엄마의 건강과 회복을 담보할 수 없으니 좋은 게 좋다고 엄마와 사귀는 아저씨로 인정하고 받아들이는 게 어떻겠느냐?” 덧붙여“너희 엄마가 진작 이런 남자를 만났더라면 보다 행복한 삶을 살았을 텐데 니 엄마도 참 운이 없는가 보다”그렇게 설득한 결과 남매는“엄마만 좋다면 어쩌겠어요. 그렇게 해야지요…”라는 허락(?)까지 받았던 것이다. 처가 가속이 밉기는 하지만 내 사랑하는 마누라의 언니고 오빠가 아닌가.

 

아무튼 그네를 조립하고 돌아서는 엄 서방에게“얼마주면 돼?”라고 하자, 엄 서방은“형님! 우리 사이에 꼭 그래야 해요?”라며 좀은 완강한 답변을 주며 엄 서방은 제 집으로 갔다.

 

그가 가고 난 뒤 나와 마누라는 얼마라도 주어야 한다며 금액에 대해 고민을 하기 시작했다.“인터넷에 보니 40만원~50만원 하던데….30만원 줄까? 아니야! 그래도 40만원은 줘야겠지?” 결국 나와 마누라는 40만원에 합의를 하고 다음날 현금인출을 하기로 마음먹었던 것이다.

 

다음날은 처형이 항암주사를 맞으러 간다는 날이다. 물론 그도 동행을 할 것이고, 주기로 마음먹었던 금액은 아직 인출을 못했다(단위농협 오픈 전이라…) 마누라와 집안 소일을 하고 있는데 마누라에게 전화가 온다. 전화 받는 마누라의 얼굴이 점점 똥 씹은 표정으로 변한다. 아무 응대도 않고 전화만 받던 마누라. 전화를 끊은 마누라가 궁금할 수밖에“왜 그래!? 무슨 전화야?”그러자“언니!”라며 뒷말을 잇지 못한다.

 

순간 나는 마누라의 표정과 말끝에 집히는 데가 있다“언니? 그네 값 얘기지?”처형 그 개만도 못한 개 같은 년이 분명히 그네 값 얘기를 했을 거라는 생각이 바로 들었다. “이런 개 같은 년이 있나!?”라는 나의 호통소리에 기가 질렸는지 마누라는“45만원 주래…엄서방은 돈 달란 소리 못할 거니 45만원 주면 될 거래!”그 순간은 마누라까지 미웠다. 내가 뱉어낸 육두를 제 언니에게 직접 왜 못할까? 마누라가 먼저 했더라면 그 정도의 심한 얘기는 안 했을 것이다. 그 생각만 하면 지금도 열이 받고 처형 년이 앞에 있으면 귀싸대기라도 왕복으로 올려붙이고 싶다.

 

한 쪽 놈은‘우리 사이에 무슨 그런 것을…’, 그런데 한 년은 그 사람 돈 달라고 못할 거니 알아서 금액까지 정해주며, 항암치료 받으러 간다는 년이 그 따위 말도 안 되는 전화질을 하고. 금액도 인터넷에서 찾아 정했는지 딱 정 중간의 값을 매겨 요구했으니 나의 분노가 폭발한 것이다.

 

값을 쳐 준다고 했고, 설령 받지 않아도 강제로 호주머니에(인건비를 줄 때 그는 늘 잘 받지 않으려 했지만 억지로 쑤셔 넣어 주었다. 약속은 약속이고 그래야 된다고…)강제로라도 넣어 줄 텐데…수천만 원의 남의 돈을 떼 처먹은 년이 그네 값을 받아내겠다고….참으로 할 말이 없었다. 그 다음다음날 항암주사를 마치고 내려온 그를 불러 들였다.

 

그리고 45만 원을 주며(물론 그는 안 받으려는 제스쳐를 쓴다.)“자네도 정말 지지리도 재수 없는 인간인가 보이. 어떻게 그런 여자를 만나….이 돈 가져가서 그 여자에게 분명히 전하게 내가 악담 같지만 얼마나 회복 될 진 모르지만 이제 마음 좀 내려놓고 살라고 하게” 그러자 그가“우리 집 사람 너무 욕하지 마세요. 형님!”하며 인상을 찌푸린다. “어이구~! 열부(烈夫) 났다. 열부 났어. ㅉㅉㅉ….”그리곤 그날 이후로 그나 처형이라는 년과는 더 이상의 대화는 없었다.

 

그리고 불과 며칠 뒤인, 지난 8월2일 일요일“나의 귀인(貴人) 1부”의 일부를 전재 하면….

(상략)굉음을 듣고 팬티바람으로 랜턴을 들고 집히는 곳(울안을 가로지르는 건천(乾川))으로 달려가려는데 그쪽을 향하여 자동차의 헤드라이트 빛이 보이며 누군가가 폭포처럼 덮쳐오는 물속에서 금방이라도 떠내려 갈 것 같이 비틀거리며 무엇인가 열심히 던지고 있었다. 그것을 목격한 나는 그 인물이 누구인지 자세히 보지 않아도 알 수 있었기에 소리를 질렀다.“엄 서방! 얌마! 너 미쳤어? 빨리나와!”를 몇 차례나 외쳤지만 그는 의연(毅然)하게도 그 작업을 계속했고 드디어 막혔던 철망이 뻥 뚫리며 폭포수는 제 물 길을 찾아 대형 하수구로 흐르기 시작했으며 순식간 반쯤 잠긴 뒷마당의 침수(浸水)가 빠져나가기 시작했던 것이다.(하략)

 

그는 내 생명의 은인이다. 자신의 아내는 여전히 나와 아내에게 죄(?)를 짓고 있지만, 그 모든 죄의 대가를 몸으로 때우며 벌을 받는, 어쩌면 자신 보다 훨씬 연상인 아내를 무척이나 사랑하는 기사 같은 존재다.

 

사실 난 지난 번 수해의 잔재를 남겨 둔 채 엊그제 서울 집에 와 있다. 잠시 후 이 썰을 올리고 다시 제천으로 내려갈 것이다. 어제 오후 나의 귀인(貴人) 엄 서방으로부터 전화가 왔다.“형님! 앞뒤 마당에 쌓인 잔해 이장에게 얘기해서 완전히 싣고 나갔습니다. 이제 깨끗합니다.” 시키지 않은 일이다. “고맙네. 내일 내려가면 식사라도 하며 얘기 하세.”

 

죄와 벌, 그래 이제부터 처형으로 보지 말고 엄 서방의 악처(惡妻)로 생각하자. 남의 마누라가 내 맘에 안 드는 행태를 벌인다고 오지랖 넓게 콩이야 팥이야 할 수 없는 거 아닌가. 뒷날‘나의 귀인(貴人)’또 어떤 덕을 볼지? 또 어떤 행운을 가져다줄지… 기대가 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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