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 갈 군대를 간 놈 때문에…

1970년 3월 5일 백설이 분분(紛紛)이 날리는 날. 그날은 나의 입영일 이었다. H대 캠퍼스엔 소위 한양의 장정들이 논산훈련소에 입소하기 위해 모여들었다. 당시는 요즘 같지 않아 웬만하면 입소하는 아들 또는 조카 친지들과 그곳에서 이별을 나누고 장정은 논산으로 가족은 가정으로….그 때는 그 때고 요즘 세태를 살펴보자.

 

참…시대가 아무리 변했다지만, 요즘 아이들 군대 보낼 때 무엇이 그리도 뻑적지근한 행사가 많은지…저렇게 곱게 나약하게 기른 새끼들이 군대를 가서 나라는 어찌 지킬 것인지…하는 의구심이 들 때가 많다. 자식을 낳으면 죽을 때까지 주려 끼고 살 수도 없고, 험악한 세상을 살아나가려면 강인하게 키워야 하는 게 부모의 도리인데 요즘 부모들은 제 새끼 귀여운 줄만 알고 오히려 그 앞길을 망치는 짓을 자행(恣行)하고 있는 것이다. 미리 밝히지만..가령 추미애와 그 자식의 예가 그렇다.

 

자랑(?)은 아니고, 아들놈 입대하던 날은 내가 그랬듯, 질질 짜는 마누라와는 달리 집에서 큰 절 한 번 받고“군대가 아무리 요령이라도 요령 피우지 말고 성실히 임해라”라는 주문을 하며 보냈었다. 그리고 몇 주 뒤 기본 훈련을 마치고 자대에 배치가 됐다며 연락이 왔는데 ‘공수부대’에 차출이 되었다는 것이다. 난 그 때 두 번을 기뻐했다. 첫째, 나 자신이 해병대나 공수부대를 가고자 했으나 신체적 핸디캡으로 가지 못한 걸 자식 놈을 통해 대리만족 할 수 있었다는 것, 그리고 서울 인근의 부천에 부대가 있었다는 점(하긴 그래봐야 중국 상주할 때라 딱 한 번 면회 갔지만…)그리고 그렇게 키운 새끼들은 어떤 위난(危難)이 닥쳐도 백절불굴(百折不屈)절대 좌절하지 않는다.

 

아무튼 분분이 날리는 눈발을 헤치고 일로일로 달리던 열차가 논산역에 도착하고 우리 장정들은 소위 수용연대에 입소를 했다. 요즘은 입소하는 날부터 군복무로 잡히는 것으로 아는데(아닌가?), 그 당시는 수용연대에 아무리 오래 있어도 복무와는 관계가 없었다. 왜냐하면 일단 신검을 받고 적격판정이 난 후의 입소라도 혹시 그동안 이런저런 부적격의 신체적 결함이 있는지를 다시 살피는 과정이 예비연대였고 그런 과정에서 고향 앞으로 가는 장정, 아니면 간단한 신체적 결함은 그곳에서 치유하고 훈련연대로 보냈기 때문이다.

 

입소하기 전부터 수년간 오른쪽 어금니가 문제였다.(나는 지금도 오복의 하나라는 치아는 정말 멀쩡해서, 70을 넘긴 고령이지만 아직도 소주 안주로 마른 오징어를 즐겨 먹고 있다.)그런데 오른쪽 어금니에 약간의 충치가 있었지만 별 것 아닌 것으로 생각하고 입소를 한 것인데, 예비연대 치과소대에 딱 걸린 것이다. 치과소대에서는 무슨 연유인지 충치치료를 한다며 18일간을 그곳에 붙잡아 두는 것이었다.

 

당시의 군복무는 어김없는 36개월이었다. 그런데 그 때는‘제대특명’이라는 제도가 있어 징집과 제대를 군번 순 대로 했기 때문에 36개월 군복무 중에도 재수 있는 놈은 일주일 아니면 보름 정도 빨리 제대를 하거나, 반대로 재수 없는 놈은 역시 그만큼 군복무를 더 했어야 했다. 그런데 내가 후자의 재수 없는 놈에 해당된 것이다. 열흘을 더 해야 했고 치과소대 18일을 보태면 37개월 만에 사회로 돌아온 것이다.(하기는 내 선배 되는 양반들은 제대 날짜 받아 놓고 1.21 사태로 36+ 수개월… )

 

‘라떼’, 요즘 군대가 군대인가? 그 땐 정말 무엇보다 배가 고팠다. 갓 스물 안팎 아니면 학업 중 군대를 간 젊은이들, 돌이라도 소화 시키고 먹고 또 먹어도 아쉬운 그런 시절, 고달픈 훈련을 마치고 그 배고픔을 참지 못해 잔반통을 뒤져 건져먹는 동료도 보았고 어쩌다 PX에서 건빵 하나라도 사면 동료 훈련병들의 눈길을 피해 냄새나는 푸세식 화장실의 문을 단단히 잠그고 봉지를 곱게 뜯노라면 이웃 칸에서도 같은 바스락거리는 소음(?)이 들리기도 했던….건빵 한 봉지가 뭐라고,,, 그렇게 복무를 하면서도 우국충정(憂國衷情)에 불탔고 애국심이 용솟음쳤었다. 뭐…여기까진‘라떼’의 추억이고….

 

앞 집 이씨네 아들은 군대를 의병제대를 했단다. 그런데 또‘군 유공자’로 되어 있어 년 간 소액이나마 혜택을 받는단다. 국가에 어떤 공을 세웠기에 유공자냐고 물으니, 아들은 체육 특기로 군대를 갔는데 그곳에서 훈련을 받다가던가? 누구를 교육시키려다 그랬는지 허리를 삐끗해 제대를 했고 그 후유증(애만 셋 낳았는데…)으로 유공자가 됐다며 자랑스러워했다. 군대 정식으로 복무하면 국가에서 이런 혜택을 주는 게 요즘의 군대다.

 

추미애 아들 의혹 제기 野에 與 “안 가도 됐던 軍 갔으니 칭찬해야”

https://biz.chosun.com/site/data/html_dir/2020/09/01/2020090102616.html

 

나 참! 이런 주둥이 놀린 놈 군대를 다녀왔는지부터 살펴야 한다. 군대를 다녀 온 놈이 이 따위 소리를 하면 이런 놈은 주둥이부터 화~악 찢어 놔야 한다. 왜냐하면 이런 놈이 군복무 중 전쟁이 났다면 아군에게 총질을 하고 탈영할 놈이기 때문이다. 개자식들 중에 이런 놈이 많다.

 

첫째, 물론 가지 않아도 될 군대를 가는 애국자들이 가끔은 있다. 특히 해외교포 중에 그런 애국자들이 가끔 지상이나 화면을 수놓는다. 그야말로 애국적 견지(見地)에서 모국과 동포를 위한 의무가 아닌 봉사를 하는 것이다. 이런 애국자들은 절대 탈영은 물론 시간을 어기는 미복귀는 꿈도 안 꾼다. 이 말을 뒤집어 얘기하면 군대 안 갈 놈이 군대를 갔기 때문에 사달이 난 것이다. 안 가도 될 군대를 갔으니 잠시 일탈을 한다고 생각했다면 그건 차라리 집구석에 처박혀 있으며 군량미를 아끼는 게 애국이다. 보라고! 현역이든 예비역이든 추미애 자식 놈 사태에 분노하지 않는 전. 현직 군인이 있던가? 이번 사태는 작게는 권력자 어미를 둔 자식 놈의 일탈이지만 크게는 나라 군대의 기강(紀綱)과 사기(士氣)와 직결되는 중대한 문제인 것이다.

 

둘째, 가지 않아도 될 군대를 갔다고 하지만, ‘카츄사’라는 이름의 특수병력이다. ‘라떼’는 지원이 아니라 차출이었다. 차출임에도 서로 가려고 대가리 박아가며 용을 쓰던 곳이었다. 그러나 요즘은 지원인가 보더라. 추미애 아이가 무슨 맘을 먹고 안 가도 될 군대를 몇 십 대 어쩌면 그 보다 훨씬 높은 카츄사를 지원해 갔을까를 생각해 보라는 것이다. 분명히 얻는 것이 있을 것이다. 요즘은 토익이니 회화니 하며 제 돈 수천 수억을 써가며 해외로 영어 교습을 나간다. 여기까지만 유추해도 추미애의 아이가 왜 군대를 갔을까 해답이 나온다. 억지로 등 떠밀어 군대 간 아이가 아님에 뭐? 안 갈 군대를 갔으니 상찬(賞讚)을 해야 한다고? 개~자~식!!(설가에게 하는 욕이 아니다. 이렇게 생각하고 있는 모든 개돼지가 그 대상이다.)

 

그리고 무릎인지 도가니인지 모르지만 아픈 놈을 입대를 시킨 군의관이나 그 관계자 놈들을 처벌해야 한다. 뇌물을 처먹었거나 아니더라도 형평의 원칙에 벗어나 환자 대신 양심적인 젊은이가 카츄사에서 탈락했기 때문이다. 도가니 또는 무릎을 수술을 해야 하는 환자를 뽑을 정도로 이 땅의 전황(戰況?) 이 심각하지 않다.

 

마지막, 복무 중 발병이 났다면, 만약 그 정도면 의병제대 더구나 추미애라는 높은 언덕을 배경으로 하고 있는 놈이라면 얼마든지 할 수 있었다. 그럼에도 군에 남아서 그런 행태를 벌였다면, 요즘 군대는 아주 불치병이 아니라면 복무기간 내에 완치를 시켜 제대 시키는 것으로 알고 있다. 더러운 잡 것들이 제 새끼 병 치료 하는데 치료비 아끼려고 그런 개수작 벌인 게 아니라면,,, 어쨌든 검찰수사를 제대로 받게 하여 조속히 명명백백 밝혀내 국민들의 의아심도 풀고 그래도 조국의 안위를 위해 국방의 간성으로 군복무에 임하고 있는 젊은이들의 사기를 높여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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