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수(保守)라는 이름의 무뇌충(무(無腦蟲)들

 

제가 원래‘삼국지’를 1-2년에 한 번씩은 읽는데 근년 들어 인타발이 좀 길어4-5년 만에 다시 읽습니다. 마침 독서의 계절이라 가볍게, 하도 읽어서 너덜거리는‘월탄 선생님’의 삼국지를 어제부터 읽어 내려가는 중입니다. 그런 가운데 삼국지에서 빼 놓을 수없는‘원소(袁紹)’라는 인물이 등장하고 활약하는 대목에서 문득 느끼는 바가 있어 한‘썰’하려는 것입니다.‘썰’하기 전, 우선 심혈을 기우려 조사한‘원소’를 비롯한 등장 인물의 약력(略歷)을 먼저 소개하겠습니다.

 

원소(袁紹)

자(字)는 본초(本初)이며 여양(汝陽:하남성 상수)사람으로 사세삼공(四世三公)즉, 누대를 내려오며 정승을 배출한 지체 높은, 삼국지에 등장하는 어떤 인물보다 명문 집안 출신이다. 처음 사례교위를 지내면서 여러 차례 대장군 하진에게 환관(십상시)을 주살하라고 권했으나 오히려 하진이 환관들에게 죽임을 당하자 그는 힘을 다해 십상시들을 주멸하였다. 동탁이 등장하여 권력을 전횡하면서 황제를 폐하려 하자, 그는 반대하고 낙양으로 피하여 발해태수를 맡았다. 동탁의 농권(弄權)을 막고 황제를 보위하기 위해 17路軍의 근왕병을 일으켰을 때 맹주(盟主)에 추대되기도 했었다. 후에 기주(冀州)를 탈취하여 본거지로 삼고 공손찬을 격멸하였으며 청주(靑州). 유주(幽州). 병주(幷州)등 네 주(州)를 점령하여 최대의 할거세력으로 등장하였다. 그러나 사람 됨됨이 외견상으로는 관대하였으나 속마음은 옹졸하여 시기와 질투가 많고 계책은 잘 세우나 결단성이 부족하여 여러 차례 실기(失期)를 한다. 결국 조조와 관도대전 한 판 싸움에 패하여 세력이 크게 약해지며 서기202년(단기2535년, 漢헌제 건안7년, 신라 내해왕7년, 고구려 산상왕6년, 백제 초고왕37년)병들어 죽는다.

 

저수(沮授)

광평(廣平:하북성 계택)사람이다. 일찍이 원소에게 황제인 헌제를 맞이하여 업(鄴:하북성 임장)땅으로 도읍을 옮길 것을 권했으나, 그 계책을 따르지 않아 조조에게 빼앗겼다. 원소가 조조와 일전을 위해 여양(汝陽)으로 진군할 때 그는 가산을 다 털어 원소를 따라 출정하였고, 관도대전(官渡大戰)때에는 여러 차례 원소에게 계책을 주며 간했으나 받아들이지 않고 오히려 감옥에 갇히기까지 한다. 원소가 크게 패한 후 그는 조조의 포로가 되었으나 조조는 그의 재주를 깊이 사 진하게 예우를 해주었으나 완강하게 거부하며 말을 훔쳐 원소에게 돌아가려다 잡혀 죽음을 당했다. 그 해가 서기200년(단기2533년, 중국 漢헌제 건안5년, 신라 내해왕5년, 고구려 산상왕4년, 백제 초고왕35년)이다.

 

전풍(田豊)

자(字)가 원호(元皓)이며 거록(巨鹿:하북성 거록)사람으로 지혜가 풍부하고 육도삼략에 능통하여 저수와 함께 원소 수하에서 이름을 나란히 하였다. 일찍이 원소에게 조조가 유비를 치는 기회를 이용하여 군사를 일으켜 허도(許都:조조의 아지트)를 공격하자고 건의하였는데 원소는 막내아들이 옴을 앓아 마음과 정신이 어지러워 그 건의를 받아들이지 않고, 여양(汝陽)으로 진군할 때, 조조의 군사가 강성하니 가볍게 대적할 수 없다고 간하며 말리다가 하옥되었다. 원소가 관도대전(官渡大戰)에서 대패한 후 그를 볼 면목이 없게 되었을 때 한솥밥 먹던 같은 모사 봉기(逢紀)가 참소(讒訴)하여 그를 죽였다. 역시 그 해가 서기200년이다.

 

봉기(逢紀)

자(字)는 원도(元圖)이며 원소를 위하여 많은 계책을 내 놓은 인물이다. 일찍이 기주목(冀州牧)한복을 협박하여 원소에게 기주성을 바치도록 계책을 세워 원소의 아지트를 굳건하게 하였다. 역시 원소가 여양을 진격할 때 그와 심배(審配)를 군사로 삼았다. 원소가 관도에서 패한 후 그는 전풍을 만나기가 치욕스러워할 때 참언을 하여 전풍을 죽이게 했다. 원소가 죽고 그의 아들인 원담과 원상이 권력 다툼을 벌이자 그와 심배는 원상을 받들어 원소의 자리를 잇게 하였다. 조조가 기주성(冀州城)을 공격하자 원상은 그에게 명하여 원담과 함께 따라나가 싸우게 하였으나 원담이 패하며 그에게 명하여 편지를 가지고 원상에게 구원을 요청하였으나 원상은 군사를 보내지 않자 원담이 노하여 그를 참수 하였다. 서기202년

 

심배(審配)

자(字)는 정남(正南)이며 위군(魏郡:하북성 임장)사람이다. 원소가 조조를 토벌하려하자 그와 곽도(郭圖)가 적극 찬성하였다. 원소가 여양으로 진격할 때 그와 봉기가 군사(軍師)로 뽑힐 만큼 계략이 많고 출중했다. 원소가 죽은 후 그는 봉기와 원상을 받들어 원소의 뒤를 계승하고 원상을 도와 원담을 공격하였고, 조조가 원상을 공격해오자 원상은 그에게 업성(鄴城)을 지키라고 명하였으나 그의 조카 심영(沈榮)이 성문을 열고 조조에게 항복하였지만 그는 죽기로 싸웠으나 조조의 장수 서황(徐皇)에게 사로잡히고, 조조는 그에게 예우를 해주며 항복을 권유하였으나 저수(沮授)처럼 완강히 거부하다가 죽음을 당하였다. 그해가 서기204년(단기2537년, 중국 漢헌제 건안9년, 신라 내해왕9년, 고구려 산상왕8년, 백제 초고왕39년)이다.

 

허유(許攸)

자(字)는 자원(子遠)이며 남양(南陽:하남성 남양, 제갈공명의 고향)사람이며, 어려서부터 조조와는 친구였고 동문수학하였다. 원소가 모사(謀士)인 봉기(逢紀)의 계책으로 기주를 탈취하여 근거지로 삼아 위에 열거한 저수. 전풍.봉기. 심배등과 함께 기주의 일을 나누어 관장하게 하였다. 크고 작은 싸움에서 기지를 발휘하여 원소에게 계책을 주었고, 관도대전에 그는 군사를 나누어 조조의 아지트인 허도(許都)를 공격하여 양쪽에서 협공할 것을 건의하였으나 받아들여지기는커녕 오히려 크게 빈축을 산다. 결국 분한 마음을 참지 못하고 조조에게 몸을 의탁하여 원소의 식량창고인 오소(烏巢)를 습격하라는 계책을 바치고 조조는 그의 계책에 따라 전승을 거두었다. 조조가 원상을 격파하고 업성(鄴城)을 포위하자 이번엔 수공(水攻)의 계책을 주어 완승을 거두는 활약을 한다. 이런저런 많은 전공을 세운 후 오만해져 뽐내기를 자주하며 조조에게도 예의를 차리지 않다가 조조의 맹장 허저(許褚)에게 죽임을 당했다. 그해가 역시 서기204년이다.

 

곽도(郭圖)

자(字)는 공칙(公則)이며 영천(潁川:하남성 우현)사람이다. 원소와 조조가 관도에서 큰 싸움을 하자, 조조가 허유(許攸)의 계책을 이용하여 원소 군의 양식저장소인 오소(烏巢)를 습격하였다. 원소가 군사를 파견하여 오소를 구하려하자, 그는 조조의 군영을 공격할 것을 간했고, 장합(張郃:후일 조조의 명장이 됨)과 고람(高覽)등이 조조 군영을 공격하였으나 그 계책이 실패를 하자 그는 자신의 과실을 감추기 위해 원소에게 참소를 하여 장합과 고람은 조조에게 항복한다. 원소가 죽은 후 아들 원담. 원상이 권력을 다투자 그는 원담을 도왔다. 뒷날 조조가 원상과 원담을 공격하고 포위를 하자 그는 원담을 따라 포위망을 돌파하다가 조조의 장수 악진이 쏜 화살을 맞고 죽었다. 그해가 서기205년(단기2538년, 중국 漢헌제 건안10년, 신라 내해왕10년, 고구려 산상왕9년, 백제 초고왕40년)이다.

 

좀 지루 하셨지요? 이러는 저는 숨찼습니다. 암튼 여러분께서는 이상 열거한 인물평을 보고 무엇을 느끼셨습니까? 원소를 위시하여 모든 구성원(?)이 일세를 풍미하며 한가락씩 하는 기라성 같은 인물들입니다. 원소에게는 이와 같이 누구도 따를 수 없는 책사(策士)와 모사(謀士)가 즐비했습니다. 개개인의 능력을 본다면 시간적으로 약간의 차이가 있지만 제갈량에 버금가는 원소의‘브레인’들이 었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당(黨)내에서 무리와 파당을 지어 서로 반목(反目)하고 질시(嫉視)하며 지냈습니다. 저수와 전풍이 한 패거리로 또 봉기와 심배가 한 무리가 되어 서로를 깔아뭉개며 반목했던 것입니다. 심지어 허유 같은 자는 자신의 주군이 마음에 안 든다고 철새처럼 당을 배신하고 조조에게로 전향까지 합니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이들 모사들의 개인 성향이나 능력보다 이런 훌륭한 브레인을 통합시키지 못하고 그저 그런 사공으로 전락시켜 배가 산으로 오르게 한‘원소’의 됨됨이가 원소를 망치고 말았던 것입니다.

 

위에 적시한대로 원소는 외견상으로는 관대하였으나 속마음은 옹졸하여 시기와 질투가 많고 계책은 잘 세우나 결단성이 부족하여, 한마디로 우유부단(優柔不斷)한 태도를 보임으로서 천하를 쟁패할 조건을 가지고 있으면서도 실기를 하며 스스로 자멸(自滅)하고 맙니다.

 

저는 이 대목에 이르러 오늘날‘한나라당’을 보는 것 같습니다. ‘명빠’니‘박빠’니 패거리를 나누어 서로 지지고 볶아대는 모습과 과정이 흡사하며 무엇보다도 소위 당을 운영해 나가는 지도층이 결단력 없이 우유부단한 모습에 당의 진로가 불명확하고 우왕좌왕하는 모습이 거대(巨大)여당의 위치에 있으면서도 마치 원소가 그러하듯 지리멸렬(支離滅裂)할 것 같은 그런 기분이 듭니다. 한나라당에 인재가 많아서 그런 겁니까? 아니면 사공이 많아 그런 겁니까? 오늘 아침 어떤 신문을보니 한나라당의 지지도가 아직은34%대로 절대우위를 점하고 있지만, 반면 어느 정당도지지 않는 국민이38%가 넘는 답니다. 향후 4년여 국정을 선도해야 할 거대여당 한나라당의 앞날이 무척 걱정스럽고 염려되는 아침입니다. 감히 단언컨대, 수권정당의 면모를 이 따위로 이어 나가다가는 반드시 한나라당은 필패(必敗)하고 말 것입니다. 악담이 아닙니다. 정세가 그렇다는 얘깁니다. 그러나 이런 저의 예상과 걱정과 염려가 기우(杞憂)이기를 간절히 바라는 아침이기도합니다.

 

BY ss8000 ON 10. 21, 2008 (원소(袁紹)의 패망과 한나라당의 운명에서….)

 

박정희 전 대통령 추도식에서 “보수 망치지마” 야유 받은 김종인

https://www.chosun.com/politics/2020/10/26/KGYO74RDQRDADLXWBHP4BBGPX4/

 

 

나는 박정희도 좋아하고 박근혜도 좋아했다. 그러나 그들은 흘러간 물이나 다름 아니다. 어떤 경우도 흘러간 물을 되돌릴 수는 없다. 그냥 존경심을 가지고 추억하는 수밖엔 없다. 오늘날 나라 꼬라지가 소위 보수라는 자들의 눙까리에는 보이지 않는 모양이다. 아직도 10수년 전처럼 저희끼리 대가리 깨지게 싸우고 있다.

 

아직도 박정희 박근혜를 신주단자 모시듯 하는 꼬락서니를 보면 정권탈환은 물 건너갔다. 518, 세월호의 위력이 어떤 것인지 저 멍청한 놈들이 아직도 모른다. 권력이 있으면 수십 년 전 광란의 사건도 여행가다 죽은 사람들도 열사가 되고 영웅으로 둔갑시킬 수 있는 힘이 있다는 사실을 인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한마디로 새대가리들이다.

 

권력만 있으면 천대받는 박정희의 추도식도 518이나 세월호 보다 더 융숭(隆崇)하게 추모할 수 있고, 빵 사러가서 아직도 돌아오지 않는 박근혜를 귀가 시킬 수 있는 기회가 온다는 걸 모르는 무뇌충(無腦蟲)들이다.

 

나도 김종인이 별로다. 그러나 김종인이 무슨 잘못이냐? 그가 너희 무뇌충 보러 그 장소에 갔더냐? 싫든 좋든 박정희를 추모하러 간 사람이다. 그가 너희 무뇌충에게는 미흡하고 모자란 사람일지 모르지만, 어쨌든 빼앗긴 나라를 되찾기 위해, 비록 임시일지라도 대표가 된 사람이다. 너희 무뇌충들이 하는 꼬라지를 보면 빵에 있는 박근혜가 해야 하는 거 아니냐? 근데 어쩌냐? 빨갱이들이 정권을 잡고 있는 한 박근혜는 빵에서 생을 마감하게 생겼으니…싫어도 어쩔 수 없는 것 아니냐? 누군가가 구심점이 되어 모여야 하는 거 아니냐?

 

대가리 쪽 수도 몇 마리 되지 않는 무뇌충 벌레들이 보수(保守)라는 미명을 뒤집어쓰고 파벌이나 파당을 일삼고 있으니, 차라리 문재인 보다 너희 무뇌충들 때문에 나라가 아주 골로 가고 있다. 뭐? 박정희를 추모해? 뭐? 박근혜를 구해? ㅉㅉㅉㅉㅉ…참으로 한심한 병신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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