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0만 원짜리 물

 

아따! 정말 날씨 한 번 겁나 춥다. 하긴 이곳(제천)은 동절기만 되면 전국에서 철원 다음으로(시내기준으로..)추운지방으로 정평이 나 있다. 그 기에다 천등산 골짜기 바람을 오롯이 맞아야 하는 산골이니 일러 무삼 하겠는가. 4~5년 전이든가는 현관 기둥에 걸어둔 수은주가 영하 30도를 가리킨 적도 있었던 곳이다.

 

산골 살이 11년 차, 겨울에 가장 중요한 행사가 엄동설한을 위한 난방대비다. 그 난방대비가 몇 차례 바뀌었다. 처음 5~6년은 주 보일러는 화목이고 등유(석유)보일러는 부수(副率)였다. 이런 구상을 한 건 순전히 언젠가 전원생활을 꿈꾸며 농어촌 홍보 영상(TV)을 많이 본 탓이다. 이따금 산골 살이(전원생활)하는 사람들의 겨울 난방용 장작 패는 모습이 워낙 멋져 보이고 상남자 같아 매년 겨울만 되면 품질 좋은 상수리(참나무)를 20톤 사들였다. 그리고 전기톱과 엔진 톱의 굉음을 날리며 적당한 크기로 재단한 다음 잘 벼린 도끼로 마당쇠처럼 장작을 패고는 했다. 첨엔 재미도 나고 내 스스로가 멋지기도 했는데…

 

그런데 20톤(두 차 분량)을 자르고 팬(쪼갠)다는 게 만만한 게 절대 아니었다. 더구나 당시 내 나이 환갑을 지난 터였으니, 마음만 청춘 아니던가. 아무튼 #2년이 지나고 3년차부터 겨울철만 되면 팔을 들 수 없을 정도로 고통이 심했지만 얼어 죽지 않으려고 그 고통을 참을 수밖에 없었다. 결국 두어 해는 화목을 사 들이, 자르고 패는 것은 인부를 사서 도급(?)을 주며 버텼다,

 

6년 차이든가? 계산을 해 보니 그런 것 같다. 왜냐하면 면에서 팰렛(폐목을 압축한 알갱이 연료: 당시 400여만 원짜리 보일러를 150만원(?)인가 설치해 준다는…)보일러 신청을 받으며 응모자가 많으면 추천을 한다기에 헛일삼아 신청한 게 영광스럽게도 당첨이 되어 내 집 보일러 실에 떡 자리를 했으니 말이다.

 

일단 참 편리했다. 매년 팰렛3톤(약120만원+운송비20만원)을 확보하면 그런대로 버틸 수 있었다. 그런데 문제는 화목보일러가 있을 때도 마찬가지지만 등유(석유)보일러도 함께 가동을 해야 했고(지금은 크게 후회하고 있지만, 당초 집을 지을 때 아래위층 80평을 지어 난방을 그렇게 할 수밖에 없고, 10월부터 다음해 4~5월까지 반년가까이 등유가 매월 평균600L(3드럼)이 필요했다.), 따라서 좀 과장하면 겨울철 난방비가 생활비 거의를 차지하는 어리석음을 저지른 것이다.

 

그런데 더 큰 문제는 내가 난방기를 잘못 사용하는지 모르지만, 매년 사용 중 팰렛 보일러가 고장이 나는 것이었다. 한 겨울 고장이 나면 AS를 불러도 며칠 기다리기도 그야말로 요즘아이들 말로‘짱나’기에 3년 만에 용도폐기 하고 작년엔 기름(등유)보일러로만 난방을 한 결과 보름~20일 마다 600L(3드럼)의 기름을 열심히 땠지만 난방에 훨씬 미치지 못해 대형 전기난로를 동시 사용한 결과 이번에 전기요금이 만만치 않았던 것이다. 그리고 10년을 쓴 보일러(기름)는 노후화가 되어 가동될 시 탱크 지나가는 소리로 산골짜기에 공명을 울리곤 하여 이웃에 미안하고 쪽 팔리기까지 했던 것이었다.

 

하여 지난 가을 방치하고 있던 팰렛보일러를 과감히 철수(고물장수에게 그냥 주려고 하니 정부지원 물품이라 보유기간5년을 채워야 한단다. 올4월에 만료기간이다. 혹시 이 글을 보시고 보일러가 필요하신 분은 잘 모셔 두었으니 운반비만 부담하시고조립만 하면 거뜬함)하고, 국내에서 제일 용량이 큰 기름보일러를 들여오고 노후 된 보일러도 교체하며 아래위층 난방을 분리해서 설치했다.(#2층은 아이(손녀)들이나 게스트 룸이기에 별도의 난방을 하게 되면 오히려 그게 더 유리할 것 같아 완전 분리함)이제 나름 거의 완벽한 난방시설을 갖추게 되었고 따뜻하고 안락한 겨울을 보내고 있는데….

 

크리스마스와 그리고 연말연시를 서울 집에서 보내고 마누라와 함께 이곳으로 온 건 지난 #2일이다. 완벽한 난방시설 속에 꿈같은 시간을 마누라와 며칠 보내고 서울 집에 데려다 주려는데(전엔 고속버스를 이용했지만 코로나 사태 이후 늘 함께 다닌다.), 췌장암으로 장기간 입원해 있던 처형이(이곳 아랫마을에 살고 있다), 더 이상은 어찌할 수 없다는 병원 측의 퇴원종용으로 집으로 온다기에 그동안 면회도 못 갔고 어쩌면 퇴원하자마자 이 세상 사람이 아닐 수 있다는 아쉬움(슬픔: 순전히 마누라 입장에서…)으로, 살아생전의 언니 마지막 얼굴이나 보겠다는 마누라의 하소연에 이틀을 더 눌러 있기로 했던 것이다.

 

그리고 이틀 뒤 과연 뼈만 남은, 문자 그대로 피골상접(皮骨相接)한 처형을 보며 슬픔에 젖어, 한동안 위로와 눈물 뿌리는 마누라를 달래 집으로 돌아와 상경 채비를 하는 가운데 전국적으로 폭설과 함께 강력한 한파가 몰려온다는 뉴스를 접하고 엎어진 김에 쉬었다 간다고 뜨끈뜨끈한 산골의 구들장을 벗 삼아 며칠 더 보내고 어제야 상경을 했다.

 

사실 서울 집은 약간 어설픈 #2층 구조로 되어있다. 실내에서 1~#2층을 오르내릴 수도 있지만, 차고 옆의 쪽문을 통해서도 아래층 출입이 가능하기에, 전. 월세 대란이 일어나며 아니 미친 부동산 정책에 따라 이런저런 세금이 폭발적으로 올라 감당불감당의 처지에 몰려 어찌할 바를 모르다가 나름의 차선책을 택한 게, 아래위층을 전세나 월세를 주고 아예 이곳으로 내려가자는 나의 제안에 마누라도 동의를 하고 지난 가을부터 아래위층 분리작업(리모델링)을 했었고, 다행히 아래층은 이미 계약이 완료되어 이사날짜가 정해져 있는 상태이며 위층도 일전에 다녀간 장래의(?) 세입자가 오늘 오후 #2시에 한 번 더 살펴봤으면 해서 약속이 되어 있는 상태다.(이 부분에서 개인적으로 잘 됐으면 좋겠다)

 

아무튼 열흘 만에 상경한 집은 보일러 온도조절을 해 둔 관계로 훈기만 있을 뿐 바닥은 싸늘한 느낌이다. 그리고 상경 길에 참았던 작은 볼 일을 본 뒤 손을 씻으려고…

 

앗! 물이 안 나온다. 하필이면 이럴 때 단수람!?(수도가 얼었다는 생각은 전혀 하지 않은 채..)그리고 옆집 뺑덕어멈과 뒷집 x교수네로 전화를 했더니 그 집들은 이상이 없단다. 아! 그러고 보니 그때서야 집의 수도가 사달이 났다는 생각에 급히 수도 계량기로 달려가 점검을 해 보니 검침바늘이 미동도 않거니와 인입(引入)손잡이가 얼어붙었지만 다행히 계량기가 동파되지는 않았다.

 

그 후로 이곳저곳‘언 수도 또는 수도 동파’수리 하는 곳으로 전화를 했더니 10여 군데가 오늘(어제)은 불가하단다. 서울 시내가 동파로 난리가 난 모양이다. 그 후 몇 군데인가 간신히 연결이 되어 한 사람이 마치 소형 콤프레샤 같은 기기를 가져와 3시간을 녹였으나 더 이상은 방법이 없단다. 그리고 마지막 방법이 있긴 한데….라며 말을 길게 끈다. 그리고 경비가 꽤 든다는 것이었다. 그러나 나와 마누라 입장에선 경비가 문제 아니었다. 아래위층 화장실 4개 중 이미 두 곳은 사용처리 했고, 과민성대장증후군을 앓고 있는 나는 벌써 아랫배가 무거워 오고 하나를 쓰고 나면 이 밤은? 마누라는? 등등….

 

거의 매달리다시피 했다. 경비가 얼마냐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무조건 물만 나오게 해 주오. 그는 공사를 시작했다. 계량기 한쪽을 절단하고 보온제가 잘 마감된 파이프를 40여m 떨어진 보일러 한 곳에 연결시키는 작업이었다. 그렇게 시간여를 뚝딱이던 그가 작업을 마쳤다며 수도꼭지를 틀어보란다. 쫘~촤~악~!! 그리고….공사를 다 끝낸 그가 80만 원을 달란다.

 

허~걱~! 순간 한숨이 절로 나왔지만 아야! 소리를 못하겠다. 솔직히 좀 깎아달라고 하고 싶었지만, 근 반나절을 추운 날씨에 콧물을 훌쩍이며 잠시 몸 좀 녹이며 하라고 권했지만(커피는 두 차례) 따뜻한데 있다가 일하면 더 힘들다며 고집을 피우던 그 우직함을 알고 깎자는 얘기를 못 하겠다. 하긴 어제 그 양반 일하는 모습을 보니 100만 원을 달래도 주었을 것이다. 내가 못하는 일을 하는 그가 부럽기도 또 존경스럽기도 했다.

 

물이 쫘~촤~악~!! 잘나오자 마누라는 자꾸 틀어 본다. 으흣~! 부인! 80만 원짜리 물이요! 아껴 쓰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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