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이든 시대에 걸 맞는 외교를….

인상여(藺相如):

전국시대의 조(趙)나라의 명신이자 책략가. 조혜문왕(趙惠文王)시기에 천하의 보배인 화씨(和氏)의 옥(玉: 초나라 변화(卞和)가 발견하여 초문왕(楚文王)에게 바쳤다는, 세상에 둘도 없는 아름다운 보옥(寶玉). 그 후 우여곡절 끝에 조나라로 흘러오게 되었고 그 옥을 다시 진나라의 조혜문왕이 탐을 내며 조나라를 윽박질렀다)을 두고 조나라가 당시 최강대국 진(秦)나라에게 곤란한 협박을 당했을 때 사신으로 가 용기와 지혜로 진나라 소양왕의 무리한 요구를 슬기롭게 거절함. 이후에도 위기 때마다 진나라와의 외교에서 비상한 수완과 능력을 발휘하여 진나라로 하여금 조나라를 무시하지 못하게 만들고 국익을 지켰음.

 

인상여로 인해 많은 고사성어가 생성(生成)되었지만, 그 중 하나가 하자(瑕疵)와 완벽(完璧)이라는 단어다. 보통 ‘옥에 티’를 뜻하는 하자(瑕疵)는 인상여가 진 소양왕을 설득하는 과정에서 생긴 말이고 또한 하나의 흠결도 없이 그 옥을 가지고 돌아 왔다고 완벽(完璧)이라는 말이 생겨난 것이다. 외교수단의 으뜸이 곧 완벽인 것이다.

 

안영(晏嬰):

제자백가(諸子百家)의 한 사람으로 안자(晏子)라고도 한다. 자는 평중(平仲)이며 춘추시대 제나라 이유(지금의 산동성 밀현)출신이다. 제나라의 명문가 출신으로 아버지 안약(晏弱)이 죽은 뒤 아버지의 직위를 이어 경(卿)이 되어, 영공·장공·경공을 거치면서 관직이 상국(相國, 수상에 해당)에까지 이르렀다. 그는 관중 이후 제나라가 배출한 걸출한 재상의 한 사람으로 무려 57년 동안 제나라를 위해 충성을 다했다.

 

안영 또한 수많은 고사성어를 탄생시킨 인물이다. 그 중 하나. 남귤북지(南橘北枳)또는 귤화위지(橘化爲枳)라는 성어가 있다. 강남(회수이남)의 귤나무를 강북(회수이북)에 심으면 탱자나무로 변한다는 이야기다. 사람도 성장 과정에 따라 선인도 되고 악인도 될 수 있다는 얘기다.

 

초령왕은 초나라와 패권을 다투는 제나라의 국력을 시험해 보고 싶었다. 당시 제나라엔 3대 째 임금을 모시고 부국강병을 꽤한 명재상이바로 안영이었다. 초령왕은 안영을 국빈으로 초청했다. 그런데 안영은 요샛말로 치면 루저다. 나처럼 키가 작고 볼품이 없었다. 그 기에 다리까지 절었다.

 

초궁(楚宮)에 당도한 안영이 초령왕과 수인사를 나눈 뒤 초령왕이 대뜸 한마디 한다.“제나라에는 사람이 없소? 하필 경(卿)과 같은 사람을 사신으로 보낸 이유가 뭐요?”안영이 루저인 것을 알고 모멸감을 주기 위한 것이다. 그러자 안영은 조금도 노여워 않고”우리나라에선 사신을 보낼 때 상대방 나라에 맞게 사람을 골라서 보내는 관례가 있습니다. 즉, 작은 나라(약소국)에는 작은 사람을 보내고 큰 나라(강대국)에는 큰 사람을 보내는데, 신(臣)은 그 중에서도 가장 작은 편에 속하기 때문에 초나라로 오게 된 것이 옵니다.”초령왕 완전히 한 방 먹고 입만 벌리고 있는 사이 파리가 들어가 죽었다나 뭐라나….그런데 얼마지 않아 죄인 하나를 끌고 가며 큰소리로‘이 죄인(사실은 초나라 관리)은 제나라 사람이다’라고 큰 소리로 광고를 한다. 그러자 초령왕이”제나라 사람은 도둑질을 잘 하는군.”하자, 안영은 조금도 굴하지 않고“지금 백성들 중 제나라에서 나고 성장한 자는 도둑질을 하지 않습니다. 그런데 초나라로 들어오면 도둑질을 합니다. 초나라의 물과 땅이 백성들로 하여금 도둑질을 잘 하게 하는 것입니다.”더 이상 초령왕의 표정을 알아 볼 필요는 없다. 즉‘남귤북지(南橘北枳)또는 귤화위지(橘化爲枳)’라는 성어가 탄생하는 대목이다. 그런데 이 얘기를 조금만 더 유심히 살펴보면 안영은 초나라를 아주 뭉개자는 심산은 아니었던 것 같다. 당시 초나라는 양자강 이남에 근거를 둔 강대국이니 귤이라고 체면을 세워 준 것이고, 제나라는 회수를 중심으로 한참 북쪽의 산동성에 자리를 잡고 있으며 겨우 탱자 정도밖에 안 된다고 겸손함을 보인 것이다. 이런 게 외교다.

 

 

감라(甘羅):

진(秦)나라에서 승상을 지낸 감무(甘茂)의 손자다. 진나라가 천하통일 하기 얼마 전, 전국시대 합종연횡 할 당시의 인물이다. 외교적인 문제로 조(趙)나라에 사신을 파견하려 했으나 전쟁 중이라 선뜻 나서려는 사람이 없었다. 그때 어떤 자가 반열 속에서 자신이 가겠다고 자청하는데 모두 돌아보니 앳된 아이다. 문무 대신들은 기가 막혀 어린놈이 나설 곳이 못 된다고 하자“항탁은 일곱 살 때 공자의 선생이었다.”며 당차게 얘기하는 지라, 그 아이의 의기가 가상하다며 파견했다. 물론 조나라에 파견된 그는 거뜬히 임무를 수행하고 조나라가 점령했던 진나라의 5개 성(城)까지 반환 받은 뒤 무사히 귀국하여 재상의 지위에 올랐던 것이다. 그의 나이 12세 때다. 외교를

 

 

서희(徐熙),

본관 이천(利川). 자 염윤(廉允). 시호 장위(章威). 960년(광종 11) 문과에 급제, 광평원외랑(廣評員外郞)에 이어 내의시랑(內議侍郞)이 되었다. 982년 송나라에 가서 중단되었던 국교를 트고 검교병부상서(檢校兵部尙書)가 되어 귀국했다. 993년(성종 12) 거란(契丹)의 내침 때 중군사(中軍使)로 북계(北界)에 출전했다. 전세가 불리해지자 조정에서는 항복하자는 안(案)과 서경(西京) 이북을 할양하고 강화하자는 안 중에서 후자를 택하기로 했으나 이에 극력 반대, 자진해서 국서를 가지고 가 적장 소손녕(蕭遜寧)과 담판을 벌여 거란 군을 철수시켰다. 그 후 여진을 몰아내고 지금의 평북 일대의 국토를 완전히 회복했다.

 

이상 맛보기로 고대의 외교관(外交官)과 그들이 이루어 낸 외교 행적(行蹟)내지 진수(眞髓)를 열거해 보았다. 뭐, 나 자신 불학무식하고 무재(無才)하지만 이런 고사(古事)나 외교적 사례를 발굴해 내라면 얼마든지 찾아낼 수 있다.

 

외교(外交)의 사전적 의미는 국제 사회에서 한 국가가 자국의 정치적 목적이나 이익을 평화적으로 실현하기 위해 수행하는 모든 행위라고 되어 있다. 굳이 말하자면 꼭 국제간일까? 미시적 관점으로 본다면 개인과 개인끼리 서로 주고받는 의사나 거래도 외교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외교는 위의 고사(古事) 사례도 그러하지만 거래다. 외교의 기본은 호혜평등(互惠平等)의 원칙에 의해 시작되는 것이다. 그런 과정 속에 쌍방이 자신에 유리하게 밀당을 하는 것이다. 거래하는 과정에서 일방적인 거래는 없는 것이다. 그런 결과가 있다면 어느 쪽이든 굴욕적(屈辱的)인 외교라며 지탄(指彈)을 받는 것이다.

 

제갈량은 맨몸으로 오나라에 들어가 오왕 손권을 농락(籠絡)하기도 또 오나라 대신들을 모아 놓고 현하(懸河)같은 웅변으로 설득을 하여 오나라 군사를 빌려 적벽대전에서 조조의 100만 대군을 무찔렀고, 고구려의 을지문덕은 시 한 수로 수나라의 우중문. 우문술을 농락시키고 적벽대전 이상 가는 살수대첩을 성공시켰고, 서희는 말 한마디로 적장을 물리치는 쾌거를 이루었다.

 

외교(外交)엔 공식(公式)이 없는 것이다. 그런 즉 변화무쌍(變化無雙)한 것이기도 하다. 외교는 공식이 없기에 수시로 변하는 것이며, 수시로 변(變)하는 만큼 임기응변(臨機應變)이 필요한 것이다. 인상여의 직급은 처음부터 고위층이 아니었다. 미관말직의 비서 격이었다. 감라는 겨우12살의 어린애였다. 안영은 나만큼의 짜리몽땅한 루저 였다.

 

바이든 “동맹 복원할 것, 평화의 강력한 파트너 되겠다”

https://www.chosun.com/international/2021/01/21/36UW7THBLNHVZKK3S7WGZZL74A/

 

먼저 바이든 대통령의 취임을 진심으로 축하드린다. 향후 4년 미국과 미국민을 위해 선정(善政)을 베푸시겠지만, 동맹국인 우리 대한민국의 입장 또한 깊이 성찰(省察)하시고 걸 맞는 외교구상을 해 주셨으면 한다.

 

그리고 이 땅의 좌익과 일부 극우세력 및 틀딱 광신도들에게 충고 하고 싶다. 바이든 대통령이 미치광이 트럼프 보다는 이 나라를 위해 훨씬 유리한 쪽으로 동맹관계를 유지하게 될 것이다. 당신들이 걱정하는 것 보다 180도 다른 남북 그리고 미북 및 미중관계를 개선시킬 것이다. 그리고 약간의 여유가 있다면 죽창가로 선동질 당한 한일관계 또한 개선(改善)을 위해 훈수하게 될 것이다.

 

조만간 바이든 시대에 삽살개가 그동안 얼마나 남북 및 미북 관계를 엉망으로 만들었는지 여실히 드러날 것이다. 그 점을 제자리로 돌려놓는 것이 차기 대통령의 과제다. 따라서 이제 우리는 바이든 시대에 걸 맞는 외교를 구상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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