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otice: Undefined index: HTTP_USER_AGENT in /webstore/pub/reportblog/htdocs/wp-content/plugins/new-chosun-plugin/new-chosun-common.php on line 16 방약무인(傍若無人)도 모자라 영악(靈惡)한 늠 - 오병규
방약무인(傍若無人)도 모자라 영악(靈惡)한 늠

전국시대 때, 위(衛)나라 사람인 형가(荊軻)는 성격(性格)이 침착하고 생각이 깊으며, 문학(文學)과 무예(武藝)에 능했고, 애주가였다. 그는 정치(政治)에 관심이 많아 청운(靑雲)을 품고 위(魏)나라의 원군(元君)에게 국정(國政)에 대한 자신(自身)의 포부(抱負)와 건의(建議)를 피력했지만 받아들여지지 않자 연(燕)나라를 비롯하여 전국 7웅의 여러 나라를 떠돌아다니며 현인(賢人)과 호걸(豪傑)과 사귀기를 즐겼다.

 

그런 가운데 연나라(燕)에서 사귄 지우가 있는데 그의 이름을 고점리(高漸離)라고 했다. 그는 비파라는 악기를 잘 다루어 명인의 경지에 올랐는데, 두 사람은 호흡(呼吸)이 잘 맞아 금방 친한 사이가 되었다. 그래서 두 사람이 만나 술판을 벌여 일단 취기가 돌면, 고점리는 비파를 켜고, 형가는 이에 맞추어 춤을 추며 고성방가(高聲放歌)를 했다. 그러다가 신세(身勢)처량함을 서로 느껴 감정(感情)이 복받치면 둘이 얼싸안고 울기도 웃기도 했다.

 

그런 그를 연(燕)나라의 태자(太子) 단(丹)이 만나 본 후 형가의 재주를 높이 평가(評價)하여 그를 항상 지근거리에 두고 뒤를 보살펴 주었다. 사실 태자 단은 진(秦)나라의 정(政: 훗날 진시황제)에게 원한(怨恨)을 품고 있던 터였다. 그렇게 얼마동안 뒤를 봐주던 형가에게 하루는 진심을 털어 놓기를 진시황제(秦始皇帝)의 암살(暗殺)을 부탁한다. 태자 단의 부탁에 형가는 조금도 거리낌 없이 승낙을 하고 진나라로 떠났지만, 결국 시황제의 관복만 뚫었을 뿐 암살은 실패로 돌아가고 오히려 난도질을 당하여 죽고 만다.

 

 

 

“저거 금방 정리 됩니다” 이준석, 원희룡과 尹관련 통화녹취 공개

https://www.chosun.com/politics/politics_general/2021/08/17/36PVJE56NFGPBI32TI32W6W7Y4/?fbclid=IwAR3XOGw0O7rxBuSxDYsJGmJgi7SSSgPsGxFz173zv8DpzBDiS3Jt78GAZ-8

 

머리에 소똥도 덜 벗겨진 어린놈이 최고 감투를 쓰더니 눈에 뵈는 게 없나 보다. 도대체 가정교육이 제대로 돼 먹지 않은 놈이다. 당대표 선출 토론회 할 때도 그랬다. 저 보다 연세 아니 지 부모 뻘 되는 후보들은 꼬박꼬박‘이준석 후보님’이라면‘님’짜를 붙였지만, 저 싸가지 없는 놈은 다른 후보에게‘님’짜 한 번 붙이는 걸 못 봤다.

 

뭣이라? 저거???? 원희룡 지사의 전언에 의하면 지 애비 뻘 에게 저거라니? 대가리 좋아 공부 잘해 하바드인지 나왔다지만, 하바드 아니라 할바드를 나왔어도 인성이 안 된 놈이 당대표에 앉아 제 부모 뻘을 능욕하는 건 제 스스로의 정치에 몰두하고 있기 때문이다.

 

방약무인(傍若無人)이라는 성어가 있다. 형가와 고금리가 술에 취하면 비파를 켜고 형가는 이에 맞추어 춤을 추며 고성방가를 하는 모습은 아무 거리낌 없이 당당한 태도(態度)를 보임으로 생겨난 말이 방약무인인 것이다. 애당초 이 뜻은 긍정적인 의미였으나 세월이 지나며 천방지축으로 날뛰고, 무례(無禮)하거나 교만(驕慢)한 태도(態度)를 표현(表現)할 때 부정적으로 인용(引用)하고 있다.

 

인간 됨됨이 방약무인(傍若無人)한 것도 뭣한 판에 저 놈은 영악(靈惡)까지 한 놈이라 해 보는 소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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