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골일기: 윤석열을 위한 산골일기

제목: 석열아! 이느마! 정의로운 일엔 겁내지 마라!

 

그제는 마을 대동계 날이고 어제는 노인회 날이며 오늘은 부녀회의 날이다. 각각의 곗날은 1년 간 지내왔던 대소사를 반추(反芻)하고 입출금의 대차대조표를 보고하고 마감지은 뒤 떡 벌어진 주안상을 마주하고 잔치를 벌이는 날이다. 삼국지에 조조가 관운장을 제 사람으로 만들기 위해 삼일소연 오일대연하는 장면이 나오지만, 아무튼 그 정도는 아니더라도 작은 산골마을에 삼일 연장 잔치를 벌이는 것이다. 대동계 날에도 썰 풀 일이 있지만 어제 일어난 일부터 먼저 썰을 풀어야겠다.

 

 

c와 s는 우리 집으로부터 300여m 천등산 기슭 쪽으로 더 올라가 두 집이 바짝 붙은 이웃 간이다. 두 집안은 이게(바짝) 화근이 되어 10여 년째 원수처럼 지내오고 있다. c는 이곳의 원주민 그야말로 터주 대감이고 s는 10여 년 전 이주를 해오며 집을 지은 게 그렇게 바짝 지었다는 것이다. s가 이곳에 정착할 당시 경계측량을 해 보니 c가 자신의 땅 서너 평을 침해한 상태에서 집을 지었다는 것이다.

 

 

도시에서(수원인가?)온 s는 그 땅을 내 놓으라고 했지만 주택이 들어선 땅을 어떻게 내 놓겠는가. 구시대 측량으론 집을 지었던 c는 날벼락이었을 것이다. 그래서 집을 허물 수도 없고, 제안하기를 대문 앞 쪽에 주차장을 하던지 그 일대를 텃밭을 하던지 양보 좀 해 주십사 했지만 도시 깍쟁이 s는 가타부타 말도 없이 집을 지으며 그렇게 바짝 붙여지었다는 것이다. 처음 터를 닦을 때 c는 s에게 통사정을 했다는 것이다.‘혹시 불이라도 나면 서로 간 피해가 있을 터이고 당장 안방인지 아무튼 방의 창문 앞 쪽을 담벼락으로 막으면 답답하다며 사정을 했지만 무시하고 그렇게 원수가 되어 오늘날까지 앙앙불락(怏怏不樂) 지내 왔던 것이다.

 

 

세상사라는 게 정말 묘한 것이어서…그래서 이웃 간에 원수지지 말라는 것인가 보다. 두 집으로 올라가는 길(천등산 등산로 입구)이 포장이 너덜거리고 많이 거칠다. 시 사업인지 면 사업인지 그 길을 새롭게 포장하려고 측량을 해 보니 이번엔 s의 마당과 길이 중복 된 것인지(솔직히 내용은 알고 싶지도 않고 잘 모르겠다), c의 땅이 그 길을 관통하고 있어서 c가 허락하지 않으면 포장도 못 할뿐더러 s는 100여m를 우회해야 자기 집으로 들어갈 수 있다는 것이다. 이런 날벼락이… 완전히 입장이 역전되고 이번엔 s가 c에게 통사정을 하게 된 것이다.

 

 

가끔 천등산 입구 쪽에서 큰 소리가 메아리칠 때가 있다. 보나마나 두 사람의 고성이다. c로선 아야 소리 한 번 못 지르고 살아온 10여 년이 얼마나 억울하고 분통했겠는가? 예산은 짜여 있고 길은 포장을 해야 하는데 양가가 합의하지 않으면 그 사업을 할 수 없어 지금도 미완성으로 남아 있는데…

 

 

어제 노인회 곗날 주안상 받아 놓고 삼삼오오 짝지어 일배일배부일배(一杯一杯復一杯)하며 잔치가 무르익어가는 데 저쪽 건너편에서 갑자기 큰소리가 나며‘당신 어쩌고저쩌고.. 이런! c x…’하며 고성이 나오기 시작하는 것이었다. 돌아보니 c와 s가 즐거운 잔칫날 이전투구를 벌이고 있는 것이었다. 주뒝이로….

 

 

젊은 시절 객기를 부리느라 불의를 보면 못 참는 버릇이 있었다. 몇 차례 그런 객기를 부리다 파출소에 끌려가고 2.3일 구류도 살아 보고…나는 늘 정의감에 그런 객기를 부렸는데 나라 법이 그걸 허용 않고 엉뚱하게 화해를 도모한 나를 처벌하는 참으로 불공평한 대접을 받은 이래‘내 다시는 그런 비인간적 처우엔 관여 않겠다.’고 맹세를 했던 바, 그 싸움을 지켜보기만 했는데….

 

 

사실 c는 아무도 하지 않으려는 노인 회장을 6년이나 역임했을 뿐 아니라 마음이 무척 여린 양반이었다. 인간성이 여리고 착해 좀 흥분하면 말도 제대로 못하고 주먹만 쥐고 부르르 떨 정도로 순진하기까지 한 사람이다. 금년 79세니 며칠 후면 팔순을 맞이하는 노인이다. 그에 비하면 s는 나와 동갑으로 노인회 총무를 맡아 보고 있으며 젊은 시절 완력 꽤나 자랑했던 것을 은근히 내비치는 도시 깍쟁이 출신이다. 결국 c는 s와의 기 싸움에 오래 전부터 밀려 왔던 것인데 어제 술이 거나해 지자 무슨 연유(묻지도 따지지도 않았다. 그러나 물어 보나 마나 땅 문제가100%인….)인지 주안상을 마주하고 쌍방 간 고성이 터진 것이다.

 

 

남녀 70여 명이 모였지만 누구도 말릴 생각 않고 두 사람을 지켜만 보고 있는데, 듣자하니 s가 c에게‘당신’이라는 호칭을 써가며 다그치자 c는 그 기세에 밀려 말도 제대로 못하며‘c x’만 찾는 것이었다. 그런데 그 순간 수십 년 감추어 두었던 나의 객기가 슬그머니 아래쪽으로부터 꿈틀거리더니 뒤 꼭지까지 돋아나는 것이었다. ‘저런! c발름! 머 저런 기 다 있어!?’라며 중얼거리자 나와 한 상을 받은 뒷집 최공 아우가“아! 왜이래요? 형님”하며 내 옷깃을 잡았지만 뿌리치며 그곳으로 갔다.

 

 

그리고 대갈일성(大喝一聲)으로“손 형!(평소 나와는 서로 그렇게 불렀다) 너무 하는 거 아니요? 당신이라니? 아무리 객지 벗 10년이라지만 한 마을에 살며 이웃 어르신께 당신이 뭐요?”라고 한 방 갈길 것처럼 소리를 질렀다.

 

 

그런데 사실 내가 그럴 수밖에 그렇게 큰 소리를 낼 수밖에 없었던 사연은 두 사람의 싸움을 지켜 볼 때 c가 주장하는 것은 나이도 어린 사람이‘당신 당신’하는 게 불편한 듯 들렸고, 그걸 무시하고 s는 완력 비슷하게 제압하려는 느낌을 받았기 때문에 속으로 그 싸움을 충분히 멈추게 할 자신이 있었다.

 

 

그렇게 냅다 소리를 지른 후“형님도 좀 참으세요!(사실 나의 c에 대한 호칭은 첨부터 형님이었다.)”라고 한 뒤 “손 형! 두 분의 앙금 간단히 끝 낼 수 있는 방법이 딱 하나요. 손 형 이 자리에서 호칭만 바꿔도 두 분 벌어진 사이 봉합 할 수 있을 거요. 나이 드신 분에게 당신이 뭐요 당신이..”

 

 

거짓말 같지만 내 말이 떨어지자 말자 c형님은“맞아! 내가 저 놈의 입 버르장머리가 얄미워서 여태 하우(화해)를 못 했다니까. 차라리 아저씨라던가..뭐..”라신다. 나는 c형님의 말에 자신감을 더 얻고“보쇼! 형님 소리가 그렇게 안 나오쇼?”

 

 

그 장면을 연속극처럼 다 세세히 표현할 길은 없고,,,,아무튼 어제 두 집안이 손을 맞잡고 10여 년 앙앙불락을 일순간 해결했던 것이다. 그 장소에서 돌아서는 내게 마을의 남녀 노인네들이 엄지 척으로 반겨주는 쾌거를 이루고 영웅(?)이 된 어제다.

 

 

덧붙임,

 

나는 산골일기를 쓰며 수십 번도 더 강조했다. 귀농이든 귀촌이든 산골 살이 하려면 내가 먼저 원주민들에게 다가 가라는 것이다. 그게 비굴한 것인가? 난 나 보다 한두 살만 더 먹어도‘형님, 선배님’호칭을 붙여 준다. 그게 그렇게 안 되나? 그런다고 자신의 인격이 낮아지나? 도시에서 산 게 무슨 훈장도 아니고 그것을 표 내는 인간들이 있다. 환경이 달라 서로 살고 살아온 곳이 다를 뿐 그게 무슨 자랑꺼리고 티 낼 꺼리 인가?

 

 

s는 나 보다 훨씬 덩치가 장대하게 큰 사내다. 완력으로 한다면 맞아 죽을 수도 있을 만큼. 내가 대갈일성 그를 꾸짖을 때 그가 벌떡 일어나 나를 마을회관 바닥에 매다 꽂을 수도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그도 인간이다. 그럼에도 내가 그에게 큰 소리 칠 수 있었던 것은 나는 정의감에 불타 있었고 그런 정의감을 알아주는 이웃이 있다는데 자신감을 가졌던 것이다. 만약..만약 s와 단 둘이 있었다면 그런 용기도 나지 않았을 것이다. 내가 막무가내도 아니고 내가 머리를 좀 쓰걸랑….

 

BY SS8000 ON 12. 22, 2017 씀

 

덧붙임,

석녀라! 야이! 돌대갈빡아! 아무리 돌대갈빡이라도 대갈빡은 굴리라고 있는 것이지 도리도리 하라고 있는 게 아니다. 생각 좀 하며 살자. 오늘의 글제가 뭣이더냐? “석열아! 이느마! 정의로운 일엔 겁내지 마라!”아니더냐?

 

너는 본시 정의. 공정. 평등으로 몸과 마음이 다져진 늠 아니더냐? 그기에 덩치는 남산만큼 장대하고…무엇을 겁내느냐? 이느마! 정의로운 일엔 겁내지 마라! 국민이 있고 내가 있다. 이 足가튼 느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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