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하사탕 그리고 나 돌아갈래??

나이 70이 훨 넘으니 수치심이 없어진 건지 아니면 부끄러움을 모르겠다. 나는 마누라나 아들 며느리 앞에서도 청소년기 골통 짓 한 걸 가끔 얘기 한다. 그 골통 짓으로 아버지로부터 거의 초주검이 되도록 몽둥이찜질을 당하며 그 와중에“나는 장가가서 아들딸 낳으면 절대 안 때리고 기를 거라고 맹세를 했다”는…그리고 덧붙이기를“ 그 맹세 때문인지 3남매를 낳아 기르며 정말 뺨 한 대 안 때리고 너희를 길렀다.”라며 자랑(?)스럽게 얘기한다.

 

보편적으로 폭력가정의 아이들이 자라면 반드시 폭력가정이 된다고들 한다. 이를테면 폭력성DNA의 후천적 발달이라고나 할까? 이 점은 어쩌면 그 집안의 습관적 내력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이 옳지 않은 습관적 내력을 폐기 시킬 수 있는 정신적 무기가 있으니, 그게 나처럼, 국기에 대한 맹세까지는 아니더라도 나름 자신과 ‘맹세(盟誓)’를 하는 것이다.

 

생각해 보면 환갑 전까지는 나 같은 가부장적 아비(남편)도 없었을 것이다. 심지어 어찌나 내가 호통을 쳤으면 젊은 시절의 마누라는“만약 우리가 온전한 결혼생활을 못하고 헤어진다면 그건 순전히 당신의 그 깨진 호통소리 때문이다”라며 단언을 하곤 했었다.

 

확실히 남자는 나이가 들며 여성 홀몬의 과다분비로 마음이 약해지긴 하는 모양이다. 환갑 쯤 되니 살아온 길을 반추도 해보고 철이 들어갔다. 마누라에 대한 호통은 오히려 마누라의 반격으로 쫄아 들었고 그 보다 정말 다행인 것은‘철들자 망령 난다’고들 하지만 내 스스로와의 맹세를 깨트리지 않은 것에 안심을 하며 아이들과 과거사를 한담(閑談)으로 풀어 가고 있다.

 

언젠가도 얘기 했지만 고등2년 때 첨으로 가출을 시도해서 제주도로 갔다가 제주시에 있는 오현고 증축현장의 노가다(또 어떤 놈들은 일본 말을 쓴다고 토왜라고 하겠지만, 노가다는 노가다다.)를 하며 개고생을 했던 얘기…

 

문제는 가출을 안 해 본 사람은 있어도 한 번 해 본 놈은 절대 한 번에 그치는 게 아니다. 부모님의 용서와 이해로 따뜻한 품으로 돌아와 얼마간 평화로운 나날을 보내는가 싶었는데, 몇 개월 뒤 도대체 집구석이 너무 답답한 것이었다. 그놈의 가출증후군이 머리로 가슴으로 슬금 거리더니 그예 이번엔 강원도 삼척(북평: 요즘은 이 동네가 없어졌던데..)에 있는 곳으로 갔는데 또 돈이 떨어져 이번엔 카바이트(회사 이름은 모르겠고..)를 생산하는 공장에서 3~4개월. 또 어찌어찌 수소문 하여 달려오신 부모님 손에 이끌려 귀가를 했던 것이다.

 

위에서 미리 애기 했지만 가출을 안 해 본 사람은 있어도 두 번씩이나 한 놈은 이미 콧구멍으로 바람이 잔뜩 들어갔기 때문에 3.4…..또 한다. 이건 일종의 가출DNA 후천적 발달이고 습관적 내력이 된다. 3.4 가 되면 부모님도 포기 한다. 돌아 갈 곳도 없다. 그 뒤는 무소의 뿔처럼 혼자서…그런 가운데 부랑아. 조폭 똘마니. 도둑놈. 비천한 놈이 되가는 것이다. 정말정말 하늘이 구제해 준 것은 그러는 사이 군대 입영영장이 나를 구제해 주었다는 거….

 

중국에 상주할 때다. 둘째딸아이와 막내가 그곳에서 공부할 때인데, 당시만 하더라도 중국 사정이 형편없던 때라 잘만 고르고 교섭하면, 우리 돈 20~30만원(당시 중국인 인건비가 2~3만원 했다. 노동자 임금 열 배)만 주면 중국 4대 미녀는 아니더라도 거의 준하는 쭉쭉빵빵 미녀를 현지처로 둘 수 있을 당시였다.

 

나라고 왜 그런 호기심과 유혹이 없었을까. 갈등이 정말 심했다. 고국에 사랑하는 마누라를 두고 싸구려 현지처를 둘 것인가? 아니면..그래서 “그래! 나는 돈을 벌어야지 계집질을 해서야 되겠는가? 돈을 벌자면 정신일도하사불성(精神一到何事不成)사업에만 정진하자!”라고 결론을 내리고 두 아이들을 학교기숙사로 보내는 대신 좀 너른 아파트를 얻어 함께 생활하는 것으로 내 욕심을 잠 재웠었다.

 

ㅋㅋㅋ…정말 죄송하다. 사실 위의 얘기는 이곳에 등장할 하등의 이유가 없지만 독자들을 끌어드리기 위한 습작(?)이다. ㅋㅋㅋ…

 

아무튼 그렇게 세 식구가 지내던 어느 날, 아들놈이 웬CD를 하나 가져왔다. 그리고 한국영화인데 재미있는 거라며 함께 보자는 것이었다. 그날 저녁을 일찍 먹고 혹시 모를 눈물 닦을 티슈도 준비하고 식탁에 적당한 거리를 두고 나. 딸. 아들 그렇게 영화를 보는데. 이런! 이런! 영화 제목을 얘기 안 했다. 영화 제목은“박하사탕”이라는 영화였다.

 

뭐..도대체 내용도 그렇고 난 이해도 잘 안 가는 그런 영화…그런데 세상에 어린 것들과 영화를 보는데…갑자기 주인공 계집이든가 아니면 조연이든가.. 아무튼 졸지에 내용과는 관계없이 질펀한 쎅스 장면이 나오는데.. 이거 어디다 눈을 둬야 할지 결국 얼굴이 새빨개진 딸아이는 밖으로 나가고 아들놈과 나는 서로 얼굴만 처다 보는데, 토끼 섹스 하듯 하는 장면이 넘어가며“선이야! 끝났다”라고 ……

 

사실 이 얘기도 이곳에 등장할 하등의 이유가 없지만 재미를 더하기 위해 살 좀 붙였다. 그렇게 영화가 종착점에 다 달았을 때 그 마지막 장면 하나가 아직도 내 머릿속에 각인 되어있다. 주인공이 철교 가운데 서서 달려오는 열차를 바라보며“나 돌아 갈래~!”라고 소리치며 영화는 끝났다.

 

 

한발 물러선 이준석 “尹측 요청 있으면 선대위 복귀 고려”

https://www.chosun.com/politics/2021/12/29/O3K7P5ICZZEPPFXOW2UUKKMZUM/

 

가출을 안 해 본 사람은 있어도 두 번씩이나 한 놈은 이미 콧구멍으로 바람이 잔뜩 들어갔기 때문에 3.4…..또 한다.

 

저 새키 저 정도면 습관적이 가출증이다. 불러 앉힌다고 집구석에 처박혀 있을 놈이 아니다. 뭣이라? 요청 있으면 선대위 복귀 고려? 아주 gr염병에 용천을 떨고 자빠졌다.

 

“나 돌아갈래”???? 어림 반 푼어치도 없는 개소리. 영화의 주인공은 “나 돌아갈래”를 외치고 장렬(壯烈)이 세상을 하직 하더라.

 

영화“박하사탕”의 마지막 촬영지가 우리 집에서 4~5km 동북쪽에 있다. 꼭 오고 싶으면 저 놈을 그 현장에 데려다 주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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