벌써 그 5년이 시시각각 다가오고 있다.

제목: 어떤 명칼럼

 

[강천석 칼럼] ‘5년 후 또 오시겠네요’

국민을 어떻게 바꿔 어느 驛에 내려 놓으려 이러는가

권력 분산 개헌 없으면 5년마다 구치소 面會 반복할 뿐

 

아래의 칼럼은 4년 전 오늘의 칼럼이다. 워낙 명칼럼이라 나는 이 글을 아직도 보관하고 있다. 뿐만 아니라 어느 한 부분만 발췌 전재(轉載)하기엔 그 의미가 희석될 것이 두려워 전문(全文)을 전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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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구치소는 이름과 달리 경기도 의왕(義王)시에 있다. 서울구치소 나들이를 시작한 것은 1993년 여름 무렵이었다. 5년마다 전(前) 정권 사람들을 구치소에서 단체로 만나는 면회 행사가 정례화(定例化)되다시피 한 건 이때부터다. 마치 무슨 법칙처럼 현재 권력에 밉보인 순서대로 구치소에 들어왔다. 면회 몇 번 갔다 오면 ‘어떻게 국사범(國事犯)을 만나고 다니느냐’며 으름장이 날아왔다. 5년 후엔 그러던 그들 면회를 갔다.

 

오래전 어느 변호사 전화를 받았다. 자기는 경기도 어느 교도소에 있는 아무개씨 변호사인데, 전할 말이 있다는 것이다. 들어보니 ‘요즘 문득문득 당신이 그때 했던 말이 떠오른다’는 한마디였다. 그는 대통령과 가장 가까운 청와대 사람이었다. 다들 그를 통해 대통령 심기(心氣)를 살폈다. 유독 깨끗한 정치를 강조했던 대통령 인기는 하늘을 찔렀다. 겉은 멀쩡했지만 청와대는 삐걱대고 있었다. 수석비서관들이 일손을 놓아버렸다. 쥐꼬리만 한 활동비는 며칠 안 가 동이 났고 그들은 ‘국사(國事)’와 ‘청렴 정치’의 갈림길에서 대통령 눈치만 살폈다.

 

자기 돈 써가며 대통령 선거운동을 하는 사람은 적지 않다. 훗날 논공행상(論功行賞)이 따르기 때문이다. 그러나 정권이 일단 출범하면 숟가락 든 사람은 많아도 밥상 차리는 사람은 드물다. 당시 그 정권이 이 상황에 접어들고 있었다. 성질 급한 그가 나섰다. 여기저기서 물을 끌어대 청와대 가뭄을 해갈(解渴)시켰다. 대통령의 자신에 대한 신뢰를 너무 믿고, 정권의 주인이라는 사명감이 지나쳤던 탓이었을 것이다.

 

어느 날 저녁을 같이하고 그의 차를 얻어타고 귀가(歸家)하다 ‘정권 바뀌면 아마 당신이 일착(一着)으로 화(禍)를 당할 거요, 빨리 청와대를 탈출하시오’라고 했다. 절반은 술기운, 절반은 그를 위하는 마음으로 던진 이 말에 사람 좋은 그도 금방 얼굴이 붉으락푸르락했다. 얼마 후 그는 자의반(自意半) 타의반(他意半) 청와대를 떠났다. 그러나 법의 올가미를 피하진 못했다. 말이 씨가 된듯해 늘 그에게 미안했다. 변호사를 통해 전해온 ‘그때 당신이 했던 말’의 전후(前後) 사정이 이랬다.

 

원래 우파(右派)는 정치·사회 문제의 원인을 주로 사람 차이에서 찾는다. 가난의 원인을 게으름으로, 범죄의 원인을 인성(人性) 탓으로 돌린다. 좌파(左派)는 반대다. 뭐든 제도(制度)와 사회구조 탓으로 돌린다. 가난과 범죄는 물론이고 이혼 증가·학력 저하·성희롱 문제까지 제도만 바꾸면 해결될 듯 주장한다. 정권의 성격 차이는 국민 심성(心性)도 바꿔놓는다. 영국과 프랑스 국민 상대로 경제 불평등을 줄이는 방법을 묻는 여론조사를 한 적이 있다. 영국 국민의 36%가 ‘경제성장’, 프랑스 국민 36.5%는 ‘노동자에게 우호적 정권 등장’을 꼽았다. 가장 무서운 변화도 가장 반가운 변화도 국민이 바뀌는 것이다. 변화의 방향이 문제다.

 

 

한국 좌파는 이상한 좌파다. 이대로 가다간 현직 대법원장과 전직 대법원장이 검찰 수사를 받을 판이다. 검찰은 대통령이 내준 숙제를 푸느라 정신이 없다. 김일성 정권에 정통성(正統性) 있다던 논문을 쓴 교수가 국가정보원 적폐청산위원장이 됐다. 10년 전 노무현 전 대통령을 죽음으로 몰고 간 원인을 제공했던 국세청 조사국이 이번에도 전(前) 대통령 문제로 팔을 걷고 나섰다. 운동권 출신 청와대 비서관·행정관들 위세(威勢)는 전 정권 문고리 권력을 능가한다고 한다. 대통령을 100% 지지한다는 트럼프 대통령 말을 100% 믿는 국민은 별로 없다. 안보와 밀접한 주요국 대사에 현지어(現地語)를 못하는 벙어리 외교관을 계속 내보내고 있다. 여권 주도로 만든 헌법 개정안 초안에서 ‘자유민주적 기본 질서’라는 대한민국 뼈대가 사라졌다.

 

10개월 전 현직 대통령 탄핵이라는 정치 폭풍을 맞았던 그때 대통령에게 과다(過多) 집중된 권력이 사태의 원인이라는 데 누구도 이론(異論)이 없었다. ‘우리 편 대통령’ ‘우리 편 문고리’가 등장했다 해서 사라질 문제가 아니다. 해법은 현 정권이 야당 시절 주장했던 권력분산형 개헌밖에 없다. 그러나 언제부턴가 현 정권 사람들 입에서 ‘권력 분산’이라는 단어가 사라졌다. 이런 정부가 노사(勞使) 문제·최저임금 문제 등 경제부문에선 모든 걸 제도 탓으로 돌리는 것도 기이한 현상이다. 국민을 어떤 국민으로 바꾸고 우리를 어느 역(驛)에 내려놓으려고 이러는지 불안하기만 하다.

 

의왕구치소에 마지막으로 면회를 갔던 10년 전 만난 여성 교도관이 잊히질 않는다. 면회를 마치고 돌아서는데 ‘5년 후에나 다시 오시겠네요’라는 말이 비수(匕首)처럼 날아왔다. 모든 현재 권력의 종점(終點)을 꿰뚫는 섬찟한 말이었다.

 

2018년 1월 6일 옮김

 

 

北이 미사일 쏜 날… 文대통령, 최북단서 남북 철도협력 행사

https://www.chosun.com/politics/politics_general/2022/01/05/DWCP3S67ONGFJHUOP6QQBC4CHM/?fbclid=IwAR2u9Bh59Q8Kbd_fc9DEBeFUYkQozQ7Q-NdViPGahWsmV-PH82kbYZoin8Y

 

의왕구치소에 마지막으로 면회를 갔던 10년 전 만난 여성 교도관이 잊히질 않는다. 면회를 마치고 돌아서는데 ‘5년 후에나 다시 오시겠네요’라는 말이 비수(匕首)처럼 날아왔다. 모든 현재 권력의 종점(終點)을 꿰뚫는 섬찟한 말이었다.

 

벌써 그 5년이 시시각각 다가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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