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골일기: 밥은 먹여가며 싸워라.

직업상 그렇게 비행기를 타고 해외를 다녔어도 그 게 지겹지 않았던 모양이다. 퇴직을 하고도 1년에 최소한 2~3회는 해외여행을 나간다. 그 중에 한 번은 여행지에서 한두 달 살다오기도 때론 제주도에 석 달씩 임대를 하여 무시로 드나들기도… 여행이 그리도 좋은 모양이다. 추위를 많이 타는 아이라 특히 겨울방학이면 손녀까지 데리고 따뜻한 남태평양이나 동남아로 여행을 떠나는 것이다. 항공사 승무원이었던 며느리 얘기다.

 

 

그런데 가만히 보면 제 친정식구들과 꼭 함께하는데 그러면서도 제 남편인 내 아들놈은 쏙 빼고 다니는 걸 알게 되었다. 그래서 어느 날은 일부러 아들놈을 불러 앉히고‘예로부터 여자와 바가지는 함부로 바깥으로 내 돌리는 게 아니라고 했느니라’라고 했더니 충고하는 애비 보기를 원시인 취급을 하는 것 같았다. 그리곤 달다 쓰다 긴 말 없이‘이 생활이 좋다’란다.

 

 

(속으로)어쭈구리! 이 놈 봐라! 부부 간에 무슨 문제가 아니면 애정에 균열이..?? 그런데 둘이 하는 모습을 보면 또 한 없는 원앙이다. 도대체 이 시츄에이션은 뭘까? 아무리 내 자식이고 며느리지만 이해불가다. 그리고 계속 여행, 홀아비 생활은 이어진다.

 

 

지금이야 많이 완화 되었지만, 서울에 있으면 3남매 즉 우리부부 슬하의 식솔 모두를 매 달 한두 번은 동원령을 내린다. 이를테면 식솔끼리 우의를 다지는 단합대회 같은 것이다. 아무리 바빠도 참석해야 한다. 그리고 음식을 장만 하던 아니면 외식을 하던.

 

 

하루는 외식을 하던 어떤 음식점에서 두세 잔 소주에 거나해진 내가 며느리를 불렀다. 그리곤“숙영아! 너 현섭(아들)이가 그렇게 몰랑하게 보이냐 아니면 자신감이냐?”, 인생을 덜 살아 본 우리 며느리 내 얘기가 뭔 소린지‘뻥(멍)’일 수밖에….“아버님! 도무지 무슨 말씀인지..”.

 

 

언젠가 아들놈에게 한 얘기“예로부터 여자와 바가지는 함부로 바깥으로 내 돌리는 게 아니라고 했단다. 그런데 그 얘기가 어디 꼭 여자뿐이겠니? 내 말은 네 신랑 비쥬얼 되지 재벌은 아니더라도 경제력 되지..현섭이가 아무리 애처가래도 홀로 있는 남자를 노리는 여자 없겠니? 그것 보다는 원래 수컷이라는 동물은 생물학적으로 홀로지내기 힘든 것이다. 특히 젊은 수컷은..” 긴 얘기 하면 잔소리고…내가 알기로는 며느리의 여행 중독증은 그 이후로 고쳐졌고 둘은 손녀 예솔이와 함께 정말 행복하게 잘 지내고 있다.(다만…에이그~ 손자 하나 있으면 좋으련만…이젠 40을 넘겼으니..쯔~읍)

 

 

왜 그랬을까? 그날따라 며느리의 목소리가 듣고 싶었다. 나와 저 사이엔 가끔 교차해 가며 안부를 주고받는다. 전화를 받기는 했는데 평소처럼 날아갈 듯 받는 게 아니라는 느낌이 든다. 왠지 부어 있다거나 낮잠에서 깨어난 듯한…아무튼 평소와는 다른 촉이다. 다짜고짜“싸웠냐?”그런데 대답이 없다.“싸운 거구나?”순간 “아버니~임!”하며 통곡을 한다.

 

 

처음 당해보는 며느리의 통곡에 난감, 난처,(내가 죽은 것도 아닌데…왜 저런다냐?) 자칫 이러다간 전화기 잡고 나까지 통곡하게 생겼다. 그리고 성질이 벌컥 난다.“아~! 울지만 말고 말을 해!!!!!(느낌표를 다섯 개 때린 건 그만큼 데시빌이 높았다는 것이다)”그리고 전화기를 애꿎은 마누라에게 던졌다. 물론‘내가 감당하기 어려우니 당신께서 마무리 지으시오’하는 부탁 아닌 부탁이다. 그리곤 내 방으로 들어 왔으니….

 

 

잠시 후 마누라의 전언에 의하면 둘 사이에 싸움이 일어난 것은, 코로나가 한참 기승을 부리는 이 난국에 아들놈이 골프 약속이 있다고 고집을 부리더라는 것이다. 결국 그 놈의 골프 때문에‘아무리 약속이라도, 소녀 지금은 서방님을 보낼 수 없사옵니다.(뭐 이 정도는 아니었어도)’라고 한사코 말리다 싸움이 벌어졌다는 것이다.

 

 

부부싸움에 시아비가 나설 일은 아니고 또 그래서 안 되지만 급히 아들놈에게 전화를 했다. 놈이 안 받는다. ‘전화해 이xx야!’문자를 띄웠다.

 

 

뭘 잘못 먹었나? 문자를 보내고 얼마 뒤 배가 살살 아프다. 화장실에 앉아 있었고 그 사이 아비의 협박에 전화기가 울리고 내 대신 마누라가 받았고, 사실 며느리가 통곡할 때 놈은 그 모습을 지켜보고 있었던 것이다. 다행인 것은 부부싸움은 했지만 결국 며느리의 말을 따르고 골프 약속을 파기했다는 것이다.

 

 

그 다음 날 며느리에게 또 전화를 했다. 어제와는 달리 전화를 냉큼 받는다.“네~ 아버님!(원래 승무원 출신으로 항공서비스업에 오래 종사한 아이라 그런지 남다른 친절도가 있다)”, 다짜고짜“얘! 니들 밥은 먹고 싸우니?”시아비의 얼토당토않은 질문에 어제의 통곡 대신 그야말로 짜파구리 잡수시며 앙천대소 하시던 어떤 여인네의 웃음소리가 들려온다. 안심이다. 다행이다.

 

 

아주 가끔 하는 부부싸움은 오히려 활력소가 된다는 거, 부부싸움은 끝이 길면 안 되니 24시간 넘기지 말 것, 그리고 반드시, 절대로, 결단코 밥은 먹여가며 싸우라고 충고를 해 주었다. 부부싸움하고 밥을 안 먹이면 외식을 할 거고, 외식을 하다보면 집에 들어오기 싫을 거고, 결국 바깥으로 나 돌다 보면…..점점 너 보기가 역겨울 거고… 그리고 뒷얘기는 하나마나 아니겠니? 그래서 하는 얘긴데“밥은 억지로라도 먹이고 싸워야 한다.”, “네~에! 아버님!”다시 들려오는 짜파구리 잡수시며 앙천대소 하시던 어떤 여인네의 웃음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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