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제로 일어났다던 일이다. 멕시코 수도 멕시코시티에 사는 17세 소년이 여자친구가 목에 남긴 키스 마크 때문에 숨졌다고 현지 언론이 보도했다. 소년의 이름은 후리오 마시아스 곤잘레스. 그에게 여자친구의 달콤한 스킨십은 ‘죽음의 키스’였던 셈이다.
현지 언론에 따르면, 소년은 24세의 여자친구가 해준 키스 마크 때문에 뇌경색을 일으켜 사망했다는 진단을 받았다.
연인들 사이에 흔히 하는 키스마크가 어떻게 뇌경색까지 초래했을까. 여자친구가 소년의 목에 키스마크를 남길 때, 너무 강하게 피부를 빨아들여 혈전이 생겼고, 이 혈전이 소년의 뇌로 흘러들어가, 뇌경색을 일으켰다고 의사들은 보고 있다.
소년은 여자친구와의 데이트를 마치고 귀가, 가족들과 저녁식사를 하던 중 경련을 일으키며 쓰러졌고 결국 사망한 것으로 알려졌다. 연인끼리의 키스마크는 흔히 목 부위의 멍자국으로 남아, 때로는 주변 사람들의 입방아에 오르게 되지만, 이처럼 심각한 육체적 손상을 일으키기도 한다는 것이다.
[김대중 칼럼] 이재명의 ‘포옹’이 의미하는 것
https://www.chosun.com/opinion/column/2023/10/10/JBUDCEWL2BEPLL56OYRQD32UH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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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 키스는 과학적으로’죽음의 키스’가 될 수도 있다. 자칫 살해 의도를 가진 남녀가 강하게 피부를 빨아들여 혈전이 생기고, 이 혈전이 곧 상대의 뇌로 흘러 들어가 뇌경색을 일으키게 할 수 있다는 가정을 할 수 있는 것이다.
[김대중 칼럼] 이재명의 ‘포옹’이 의미하는 것에는 대장동 특혜 사건 피의자인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재판정에서 재판장의 허락을 받고 공동 피의자인 자신의 심복 정진상씨를 포옹했다는 기사를 읽으면서 전율을 느꼈다. 피고인인 처지에 어떻게 저런 연출을 할 생각을 했을까? 어떻게 만인환시(萬人環視) 속에서 자신의 생명줄을 쥐고 있는 최측근을 끌어안고 등을 두드리며 사실상 무언의 압박을 가할 배짱을 보일 수 있는 것일까? 어떻게 그런 속셈을 옛 상사의 ‘인간미’로 포장할 여유를 갖게 됐을까? 라며 의문부호를 달지만, 그게 단순한 포옹일까?
마지막 키스든 포옹이든 상대를 껴안아야 한다. 그런데 이재명과 정진상은 남성이다. 대다수 동성끼리는 악수로 친밀감을 나타낸다. 그런데 굳이 둘은 포옹을 한다. 누가 보더라도 악수 보다 포옹이 훨씬 더 유대감과 친밀도가 높음을 강조한다.
동성끼리 그것도 결코 흔치 않은 어쩌면 전대미문의 법정에서의 포옹? 뭔가 냄새가 난다. 김대중 전 주필의 의미심장(意味深長)한 의심(?)보다 더 짙은 의심이 일어나는 것이다. 실제 마지막 키스를 나눔으로 상대는 죽음의 나락으로 떨어진다.
이재명 사건에 연관된 인사 4명이 벌써 자살을 당했다. 어쩌면 그들은 이재명과 포옹을 했을 수도 있을 것이다. 육체적 접촉이 없는 마음과 마음의 포옹을 가졌는지도 모른다. 그리고 정진상은 중인환시(衆人環視)리에 당당한 마지막 포옹을 가졌을 수도 있는 것이다. 나는 그리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