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이로 北대사 망명엔 사춘기 아들의 연애문제가 있었다

카이로 北대사 망명엔 사춘기 아들의 연애문제가 있었다

상상을 뛰어 넘는 현실

북한 정권의 ‘망명’도정말 생각치도 못한 일로 일어나지 않을까

장승길 이집트 주재 북한 대사의 망명 배경에는 그의 아들이 있다고 사건 당시 이집트 주재 한국 총영사 정태익 전 청와대외교수석이 증언했다. 지난 1994년 6월 이집트에 부임한 장승길은 2년 뒤인 1996년 7월 그의 가족 그리고 프랑스에 외화벌이 요원으로 있던 동생 가족과 함께 미국으로 망명했다. 남·북 외교사의 손에 꼽히는 충격사(史)가 벌어졌던 것이다.

장승길 이집트 주재 북한대사(사진 오른쪽)가 망명하기 전 북한대사관에서 열린 한 행사에서 참석자들을 안내하고 있다.jpg

장승길 이집트 주재 북한대사(사진 오른쪽).

장승길은 아들이 2명이 있었다. 장남은 북한에 일종의 볼모로 잡혀 있었고, 차남 장철민만이 장승길을 따라 이집트에 왔다. 철민은 이집트의 영국 학교를 다녔다. 이집트에는 미국, 독일, 캐나다 등 서방국의 교육제를 그대로 가져온 국제학교가 여럿 있다. 철민도 외교관 자녀로서 이집트에서 영국 학교를 다녔던 것이다. 그는 영특했고, 아버지는 그를 사랑했다.

그랬던 철민이 어느 날부터간 아버지와 자주 싸우며 갈등을 빚었다. 철민이 학교에서 필리핀 여학생과 교제를 하면서 귀가를 늦게 했던 것이다. 아버지는 급기야 철민을 강제로 집에 가둬두기 까지 했다. 연애도 마음대로 못하는, 하교 후 밖에서 제대로 놀지도 못하는 북한식 생활에 철민은 큰 불만을 가졌다.

1994년 가을 어느날. 현지 주재 한국 대사관으로 한 통의 전화가 걸려왔다. 이 전화는 정태익 당시 총영사가 직접 받았다고 한다.

“한국에 가면 공부를 할 수 있습네까?”

이것이 철민의 첫 마디였다. 정 전 수석은 “젊은이. 그런 중요한 일은 전화로 말하는 것보다는 직접 만나서 이야기하는 것이 현명할 것이오. 의논할 수 있는 아저씨 전화번호를 알려줄 테니 직접 연락해 보라”고 했다. 그는 자칫 쉽사리 망명을 시켰다가는 “한국이 북한 미성년자를 ‘납치’했다”고 북한이 우길 수 있기 때문에 조심했다고 한다. 얼마 뒤 철민은 극비리에 그의 여자친구와 함께 짐을 싸 요원들의 도움으로 이스라엘을 거쳐 캐나다로 망명했다.

장승길은 자신의 아들이 망명하는 ‘죄’가 있었음에도 김정일 위원장과의 친분이 두터워 카이로서 대사직을 유지할 수 있었다. 그의 처 최해옥씨가 김정일이 직접 만든 가극 ‘꽃파는 처녀’의 주연 배우 출신이라, 김정일과 가까웠다고 한다. 1995년 북한이 그렇게 뜯어 말렸던 한국과 이집트의 수교가 이뤄졌음에도 장승길이 버틸 수 있었던 이유다.

하지만 그랬던 장승길도 결국 망명했다. 1996년 7월의 일이다. 정 전 수석은 “장승길 대사 부부가 먼저 서방으로 망명한 차남 장철민을 끝내 잊지 못했던 모양이다”고 했다. 장승길 부부는 임기를 마치고 귀국하는 이날에 모든 절차를 밟은 다음 카이로 국제공항으로 가는 척하다가, 요원들을 따돌린 다음 카이로 소재 미국대사관으로 직행하였다. 망명을 시도했던 것이다. 이들은 이후에 미국에서 차남과 감격적 조우했다고 전 전 수석이 전했다.

정 전 수석은 ‘프리미엄 조선’에서 “북한에 수교와 망명이라는 이중 치명타를 가한 이 외교사건은 남북한 분단의 비극을 상징하는 또 하나의 불행한 역사를 만들어냈다. 장승길 대사는 미국에게 북한이 중동에서의 미사일 판매 활동에 대한 정보를 제공하고 신변의 안전을 제공 받아 은둔의 생활을 지금도 하고 있을 것이다. 통일만이 참담한 인간 드라마에 종지부를 찍을 것이다”고 말했다.

이같은 정 전 수석님의 외교비화를 듣다보니 모든 일이란 전혀 상상하지 못한 방법으로 이뤄짐을 다시 한번 깨닫습니다. 북한 정권의 ‘망명’도 아마 전혀 우리가 예상치 못한 방법과 과정으로 인해 일어나지 않을까 생각해봅니다.

돌새 노석조 stonebird@chosun.com

보다 자세한 이야기는 -> http://premium.chosun.com/site/data/html_dir/2013/11/21/2013112103188.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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