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otice: The called constructor method for WP_Widget is deprecated since version 4.3.0! Use
__construct()
instead. in /webstore/pub/reportblog/htdocs/wp-includes/functions.php on line 3620 에볼라 환자들의 어머니 - 중동 천일야화
에볼라 환자들의 어머니

에볼라 환자들의 어머니

 돌새 노석조 

자이르(현 콩고민주공화국) 북부의 시골 학교 교장 마발로 로켈라(44)는 1976년 8월 26일 심한 두통과 고열로 병원에 입원했다. 열흘간 에볼라강(江) 일대를 동료와 여행하고 돌아온 뒤였다. 의사는 “말라리아로 보인다”는 진단을 내리고 말라리아 특효약인 키니네를 주사했다.

그의 병세는 예상과 달리 나빠져만 갔다. 고열과 함께 코·입·귀·항문 등 신체의 모든 구멍에서 피가 흘러나오는 기괴한 증상이 나타났다. 말라리아가 아니었다. 로켈라는 그가 여행했던 강의 이름을 따서 지은 에볼라 바이러스에 감염되는 첫 희생자가 된 것이다. 당시 사람들은 로켈라의 아픈 모습을 보고 “악마가 저주를 내렸다”며 다가가길 꺼렸다. 하지만 그 곁에서 떨어지지 않고 수발을 드는 이가 있었다. 어머니였다.

이름 없이 그저 ‘로켈라의 어머니’라고만 알려진 이 여성은 기력이 쇠하는지도 모르고 아들을 간호했다. 발병 14일째인 9월 8일 로켈라가 결국 사망했을 때 그의 시신을 닦은 이도 어머니였다고 미국인 의사 윌리엄스 클로즈 박사의 책 ‘에볼라’는 기록하고 있다. 클로즈 박사는 자이르 대통령의 주치의였으며 에볼라 바이러스가 발견된 초기부터 현장에서 응급팀을 총괄하며 사태 확산을 막는 데 결정적 역할을 했다.

로켈라의 어머니는 아들의 장례식을 마친 뒤 얼마 지나지 않아 쓰러졌다. 시신 수습을 거들었던 로켈라의 누이와 임신한 아내도 거의 같은 시기에 쓰러지며 출혈열 증상을 보였다. 병자를 놓고 기도하던 수녀, 진료하던 간호사 등도 뒤를 이었다. 에볼라 바이러스가 어느새 여러 사람에게 퍼진 것이다. 어머니는 며칠 뒤 아들 곁으로 떠났다. 다른 감염자 대부분도 사망했다. 로켈라의 아내는 생존했지만 배 속의 아기는 그러지 못했다. 세계보건기구(WHO)에 따르면 에볼라 바이러스가 처음 발견된 그해에 감염된 602명 중 70%가 ‘로켈라의 어머니’ 같은 여성이었다.

이로부터 38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에볼라 바이러스의 감염자 대부분(75%)이 여성이다. 라이베리아의 줄리아 덩컨 카셀 여성개발부 장관은 이 같은 현상에 대해 지난 14일 워싱턴포스트 인터뷰에서 “보살피는 자가 여성이기 때문”이라며 “‘아프면 엄마에게 가라’는 말이 있다”고 했다. 세계 여느 곳처럼 아프리카도 집안에 환자가 발생하면 어머니가 먼저 일차적 치료와 간호를 맡는다. 어머니들은 서슴없이 맨손으로 자녀의 아픈 곳을 어루만지고, 피나 땀이 묻은 옷과 이불을 빨래하다 보니 전염병에 쉽게 걸린다는 것이다.

WHO나 전문가들은 아프리카 어머니들의 ‘무모한 사랑’을 막도록 에볼라 바이러스가 체액(體液)을 통해 전염된다는 교육을 더욱 강화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합리적인 말이다. 하지만 어머니들이 뭘 몰라서 아파하는 아들딸의 병상을 마냥 지켰을까. 무엇보다 ‘가난한 나라가 필요한 약은 만들어도 돈이 안 된다’는 제약사의 ‘합리적’ 계산의 벽을 넘어 제대로 된 치료제가 하루빨리 아프리카 땅에 보급됐으면 하는 바람이다.

2014080100339_0

Leave a Repl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