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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합지졸’ 이라크軍… ’40 對 1(이라크軍 60만명 : IS 1만5000명)’ 우세에도 IS(이슬람 극단주의 무장단체)에 10戰10敗

‘오합지졸’ 이라크軍…

’40 對 1(이라크軍 60만명 : IS 1만5000명)’ 우세에도 IS(이슬람 극단주의 무장단체)에 10戰10敗

[사담 후세인 정권 붕괴 後 10년… 왜 허약해졌나]
①자격 미달자까지 모병 – 후세인 몰락後 군부 대거 숙청
병력 공백 메우기 위해 별다른 심사 없이 서둘러 충원

②종파 분열로 主敵인식 혼란 – 이라크軍 내부에서
“너는 수니파, 나는 시아파” 상관 명령에 불복종하기도

③통일된 리더십 부재 – 前총리가 10년 장기 집권하며
情實 인사 통해 군부 장악… 병사들 反정부 세력으로 전향

④美軍의 이라크 철수 – 自力으로 치안 유지도 못할 때 미군이 철수해 이라크軍 약화

이라크군은 지난 6월 10일 제2 도시 모술을 이슬람 극단주의 무장단체 ‘이슬람국가(IS)’에 교전 하루 만에 빼앗기는 등 2개월이 지난 지금까지 주요 전투에서 10전 10패 했다. 티크리트·사마라·잘라울라 등 수도 바그다드로 향하는 길목에 있는 도시들은 나흘 만에 IS의 손에 넘어갔다. 총병력 60만명에 이르는 정규군이 자신들의 40분의 1에 지나지 않는 과격분자 1만5000명에게 사실상 ‘완패’하는 수모를 겪은 것이다. 당시 IS의 급습에 이라크군 수천 명은 군복도 입지 않은 채 운동복 차림으로 탈주하거나 집단으로 투항했다.



이라크군이 덩치는 크지만 ‘속 빈 강정’처럼 실속은 없는 약골이 됐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그 원인으로 우선 병력을 늘리기 위해 전투병 자격 미달자까지 무리하게 선발한 모병 정책이 꼽힌다. 이라크군은 2003년 독재자 사담 후세인(2006년 사망) 정권이 무너진 뒤 군 간부급을 대폭 물갈이하며 조직 개편을 실시했다. 장교 출신인 후세인은 군을 중심으로 국가를 운영했기 때문에, 후세인 정권 붕괴 이후 우선 청산 대상도 군부가 됐다. 이란·이라크 전쟁(1980~1988), 걸프전쟁(1990~1991)을 겪었던 베테랑 군 엘리트들은 ‘친(親)후세인’이라는 이유 때문에 대거 숙청됐다. 하급 병사들의 이탈도 이어졌다.



당시 이라크군이 무너질 위기에 처하자, 정부는 병력 공백을 메우기 위해 ‘18~40세의 남성’이라는 조건 외에는 별다른 자격 심사 없이 서둘러 충원에 나섰다. 안정적인 수입을 기대하고 입대하는 숫자는 늘었지만, 정작 신병을 훈련시킬 자원이 부족해 군 전투력 저하로 이어졌다. 미 전략국제문제연구소(CSIS)에 따르면 이 과정에서 군 기강도 해이해져 병사 간 가혹행위가 발생하고 무기나 군수품을 몰래 내다 팔며 ‘암거래’를 하는 병사들도 적발됐다. 군에 대한 신뢰도가 떨어지자, 중부 도시 팔루자 주민들이 대거 반군 세력에 동조하는 현상도 나타났다.



종파 분열로 군 내부에서 주적(主敵)에 대한 인식에 혼란이 일어난 것도 이라크 정부군 사기에 악영향을 끼쳤다. 수니파인 후세인 정권이 무너지고 시아파가 권력을 독점하면서, 정치권의 종파 갈등이 군으로까지 번진 것이다. 군의 단결은 주적 인식이 뚜렷해야 하지만, 이라크군에서는 ‘너는 수니파냐, 나는 시아파다’ 같은 종파적 반목 현상이 뚜렷해졌다. 미 의회 군사위원회의 보고서인 ‘이라크군 재건을 위한 지속적인 과제’에 따르면 2004년 이라크군의 수니파 병사들이 “팔루자의 수니파 반정부 세력을 공격하라”는 명령에 불복종해, 부대 자체가 전면 해체되는 사건이 있었다.



군 최고 통수권자에 대한 불신과 ‘통일된 리더십의 부재’도 군 사기를 저하시킨 요인으로 영국 싱크탱크 국제전략문제연구소(IISS)는 꼽았다. 누리 알말리키 전 총리가 10년 가까이 정권을 독점하면서, 정실(情實) 인사를 통해 군부를 장악하고자 했다는 것이다. 그는 2010년부터는 국방부·내무부·정보부 장관을 겸임했다. 이에 알말리키 당시 총리에 대한 불신이 군 내부에 팽배해 반정부 세력으로 전향하는 병사들도 생겼다. 불신은 대대·사단 등 중견 지휘관으로 이어져 전투기·헬기·탱크 등의 훈련과 운용이 제대로 진행되지 못했다. 그는 결국 지난 14일 ‘IS 사태’에 대한 책임을 지라는 정치권과 미국의 압박에 밀려 총리직에서 자진 사퇴했다.



미군의 이라크 철수가 이라크군 약화를 가져왔다는 분석도 있다. 미군은 2004년 무렵부터 이라크군 훈련 프로그램을 가동했지만, 2009년 버락 오바마 행정부의 철군 방침 발표 이후에는 점차 그 훈련을 축소했다. 미군은 수시로 발생하는 자살 폭탄 공격 같은 테러를 막기 위해 훈련보다는 치안 유지에 급급했다는 비판도 받고 있다. 이라크군이 자력으로 치안 유지를 못하는 상황에서 미군이 2011년 완전 철수를 감행했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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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합지졸(烏合之卒)의 이라크군이지만 IS를 상대로 승리를 거둔 적은 있다. 임에원에전선을 구축하며 버티고 있다. 지난 18일 쿠르드 자치정부군 ‘페슈메르가’의 도움을 받아 모술 댐을 탈환했을 때다. ‘페슈메르가’는 19세기 오스만 제국 때부터 소수민족인 자신들을 지키기 위해 목숨을 건 전투를 강대국과 해온 저력이 있었다. 그 명칭의 뜻이 ‘죽음과 맞선 자’이다.

 

이라크군은 현재 독자적으로 IS를 상대하진 못하고 ‘페슈메르가’, 미군과 연합 임에원에전선을 구축하며 버티고 있다.
/노석조 기자
/김나한 인턴기자(숙명여대 정치외교 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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