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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nstead. in /webstore/pub/reportblog/htdocs/wp-includes/functions.php on line 3620 안젤리나 졸리와 클루니의 아내 알래무딘간의 갈등 - 중동 천일야화
안젤리나 졸리와 클루니의 아내 알래무딘간의 갈등
안젤리나 졸리와 클루니의 아내 알래무딘간의 갈등

안젤리나 졸리, 레바논 女국제변호사 알래무딘 질투

알래무딘과 클루니 결혼식에 불참
George Clooney in Tanzania
미 할리우드 배우 조지 클루니(오른쪽)가 지난 3월 아프리카 탄자니아에서 당시 교제 중이던 레바논 출신 국제 변호사 아말 알래무딘을 바라보고 있다. 이들은 지난 9월 결혼했다. /뉴욕포스트

미국 배우 조지 클루니(53)의 두번째 부인 아말 알래무딘(36)과 안젤리나 졸리(39)가 최근 영국 런던의 식당에서 심한 말싸움을 했다는 소문으로 미 연예계가 시끄럽다. 클루니는 “사실 무근”이라며 부인을 변호하고 있지만, 미·영 매체들은 “화난 졸리가 그의 남편 브래드 피드(51)에게 클루니와 절교(絶交)하라고 요구했다는 설도 있다”고 후속 보도를 하고 있다.

두 여자의 불화설이 생겨난 배경엔 알래무딘에 대한 졸리의 시기심이 있다고 미 매체는 전한다. 유엔 등 국제기구에서 알래무딘의 인지도가 높아지자, 그간 국제인권활동을 왕성히 한 졸리가 자신의 입지가 줄어드는 것 같아 미워하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알래무딘은 레바논 출신 국제 변호사로, 국제분쟁 사건을 여럿 맡으면서 명성을 얻었는데, 화려한 패션 감각과 할리우드 여배우 못지 않은 외모로 단순 변호사 이상의 인기를 끌고 있다. 그는 졸리가 특사로 있는 유엔난민기구의 인권 변호사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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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래드 피트(왼쪽), 안젤리나 졸리(가운데), 조지 클루니가 2012년 미 로스앤젤레스의 영화 시상식에서 어깨를 맞대고 사진을 찍고 있다. 졸리와 피트는 지난 9월 클루니의 결혼식에 불참했다. 졸리가 클루니의 신부인 아말 알래무딘과 사이가 좋지 않다는 후문이 돌고 있다. /유에스매거진

 

졸리는 지난 9월 자신과 남편의 ‘베스트 프렌드’인 클루니로부터 결혼 청첩장을 받았음에도 식장에 가지 않았다. 클루니와 알래무딘이 한달 뒤 미처 못 온 사람들을 위해 영국에서 ‘제2차 결혼식’을 열었는데 졸리와 피트는 여기에도 불참했다. 졸리가 알래무딘이 싫어 결혼식에 안 갔다는 추측성 보도가 돌았다. 이에 피트는 월간지 GQ 매거진과의 인터뷰에서 “영화 촬영으로 바빠서 미처 결혼 축하 선물을 준비 못했고 결혼식에도 못 간 것”이라고 했다. 미 연예지(紙)들은 피트가 선물 핑계와 함께 “전(前) 아내 제니퍼 애니스톤이 클루니 결혼식에 참석한다길래 피한 것”이라는 말까지 흘렸지만, 불참한 진짜 이유는 졸리가 알래무딘을 탐탁치않아 하기 때문이라고 노골적으로 보도했다.

피트는 미 드라마 ‘프렌즈’로 스타덤에 오른 애니스톤과 2000년에 결혼했다가 영화 ‘미스터 앤 미세스 스미스’에 함께 출연한 졸리와 사랑에 빠져 2005년 애니스톤과 이혼했다. 이듬해 피트는 졸리가 자신의 아기를 임신했다고 밝혔고, 2012년 약혼, 2014년 혼인신고를 했다.

알래무딘은 무엇이 그리 유별나길래 세계 최고 여배우이자 인권활동으로 ‘지각있는 연예인’라 불리는 졸리의 시샘을 받는다는 걸까.
알래무딘은 역경을 딛고 성공한 여성이라고 프랑스 일간 르피가로는 전한다. 레바논 수도 베이루스 태생인 그는 두 살이던 1980년 ‘레바논 전쟁’을 피해 영국으로 이주한다. 그의 아버지는 베이루트 미국대학(AUB) 경영학 교수, 어머니는 아랍권 신문 알하야트의 에디터여서 레바논에선 엘리트 집안으로 경제적 여유가 있었다. 하지만 영국에선 아니었다. 알래무딘을 포함해 4남매를 키우기에 이들의 주머니 사정은 늘 좋지 않았다.

알래무딘은 공부를 잘했다. 영국 학교를 다니면서도 아랍어와 아랍역사를 같이 배웠다. 그는 옥스퍼드대 법학과에 장학금을 받고 입학했다. 스물 셋이던 2001년, 미국 뉴욕대 로스쿨에 들어갔다. 아랍어와 영어를 능수능란하게 할 수 있는 그의 능력은 로스쿨에서 빛을 봤다. 그는 뉴욕 로스쿨에서 우수한 실력을 보인 학생에게 주는 ‘잭 J 크래츠 어워드’를 받았다. 학생 로클럭(law clerk·재판연구원)을 할 때는 당시 미 연방항소법원 판사였던 소니아 소토마요 현 대법관과 인연을 맺었다.

그는 로스쿨을 졸업하고 26세이던 2004년부터 국제사법재판소(ICJ)에서 일했다. 레바논 전쟁이라는 분쟁을 피해 어릴 적 피란길에 올랐던 배경은 그로 하여금 국제문제에 큰 관심을 쏟게 만들었고, 그의 전공 선택에도 영향을 미쳤다. 그는 특히 아랍어와 영어를 모두 구사하는 장점 덕분에 아랍 지역에서 발생한 사건을 해결하는데 탁월성을 보였다. 국제사법재판소에 회부되는 사건 당사자 중 아랍인이 많은 것도 그의 존재감을 부각시켜 주었다.

 

George Clooney and Amal Alamuddin get married in Venice

하얀 모자를 쓴 아말 알래무딘(왼쪽)과 그의 손을 잡고 한쪽 손으론 엄지 손가락을 치켜 든 조지 클루니. 모자의 띠와 허리띠가 하얀 전체 의상을 더욱 돋보이게 한다. /스플래시 뉴스

 

그는 ICJ에서 나온 뒤 뉴욕의 국제 로펌 ‘술리반 앤 크롬웰’에서 경력을 쌓은 뒤 유엔의 레바논 특별재판소와 유고슬라비아 국제형사재판소의 검사로 활약했다. 이후 카다피 리비아 국가원수의 측근이자 대량학살 혐의로 기소된 압달라 알 세누시 전 정보국장, 폭로사이트 위키리크스의 줄리안 어샌지 등 굵직한 대형 사건 피고인의 변호의 맡아 유명해졌다. 이 과정에서 각국의 지도자와 외교관, 국제기구의 주요 인사와 친분을 쌓았다.

 

Amal Alamuddin, Julian Assange

아말 알래무딘(왼쪽)이 2011년 11월 24일 영국 런던에서 성폭행 혐의로 기소된 폭로사이트 위키리크스 설립자 줄리안 어샌지의 재판 변호를 마치고 법원 밖 거리를 걷고 있다. /AP

 

특히 그는 2013년 코피 아난 전 유엔 사무총장이 시리아 내전 해결을 위한 유엔특사에 임명됐을 때 그의 자문관 중 하나로 임명됐다. 큰 키에 눈에 띄는 의상을 즐겨 입는 알래무딘은 유엔을 취재하는 BBC·CNN·뉴욕타임스·블룸버그 등 세계 주류 언론 기자의 관심 대상이 돼 인기를 끌었다. 국제 변호사로서 실력을 인정받아 명성을 얻은 그는 국제 구호활동을 하는 클루니 등 할리우드 스타들과도 친해질 수 있었다.

유엔에서 대중성을 갖춘 여배우로서 독보적으로 관심을 받던 졸리에게 강력한 ‘경쟁자’가 생겨난 셈이다. 특히 알래무딘은 졸리와 달리 변호사로서 국제기구에서 실질적인 업무를 하다가 대중성을 얻게 된 경우여서 지적인 이미지까지 겸비했다는 평가다. 졸리로선 이런 알래무딘이 톱스타 클루니와 결혼까지 하며 신데렐라로 떠오르자 더더욱 샘이 났다는 것이다.

 

돌새 노석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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