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년 전 일본에서의 ‘DNA검사’ 댓글을 달아주세요 1977년11월, 강릉과같은위도로,동해안에접한일본니이가따시(新潟市)의가을은,특히’한부부’에게는더욱추웠을터… –일본은행행원인남편과두쌍둥이아들들의엄마이기도했던아내는, 그들이13년간사랑하며키웠던중학교2학년딸이,돌연스레,밤늦도록귀가하지않아애를태우고있었다. 물론,’그밤‘부터시작된외동딸의행방추적. 그리고,20년의세월이흐른후인1997년,느닷없이,’딸이북한에의해납치되었었다‘는사실을접한다. 1987년,KAL폭파사건의범인으로일본인을위장하여탑승했던김현희의일본어선생,리은혜가 정말은,–부부의딸보다1년뒤인1978년에역시행방불명된—다구찌야에꼬(1955-?)임이밝혀지면서, 현해탄너머일본에서는,1970년대와80년대에행방불명된적지않은자국민들중,일부는 <북한에의해납치당한것>이라는의혹이일고있었다. -(이제는,누구나가–‘납치의혹‘이아닌–<북한납치‘사건‘>으로부르는사건들..) 그런중,전북한기관원이었던안명진의1997년의증언이 결정적으로,이오랜동안슬픔에젖어있던부부에게,’딸의행방불명의진상’을알게해준것. 이후,부부는<북한에의한납치피해자가족연락회>를결성,그대표로서적극적으로끊임없이‘일본정부’에읍소, 결국2002년,일본수상코이즈미(小泉純一郎,1947-)는 <일본정부도인정하는’17명의일본인납치피해자들’을되돌려오겠다>며북한을방문한다… 그때까지,<북한납치사건>은모두일본의’날조’라고비방하며,대응을거부하던북한도, 수상까지나선일본정부의강경한태도에 결국은17명의납치자중,유일한생존자라며’5명’의일본인들을’일시귀국’시키나… –다만,그중에,이부부의딸은없었다… 이미‘1994년’에사망했다는것이,북한의설명.결코납득하기어려운… (왼쪽이—납치1달전—아버지가찍었다는사진.그리고,오른쪽2장은북한에서의’딸의성장한모습’. 북한이’20여년의세월이지나서야내놓은사진들’을보며,어머니는–얼굴이아닌–, 어렸을때부터발레를배워,늘그기본자세’PositiondesPieds’-발뒷꿈치만을반듯하게붙이고선포즈에서 ‘딸’을확신했다고한다..) 그간,손녀도낳았었다는딸,요꼬따메구미(横田めぐみ,1964-?) 그리고그사이세월은, 그부부,요꼬따시게루(横田滋,1932-),요꼬따사끼에(横田早紀江,1936-)를이렇게변하게했다. * 새삼,그돌연스런’상실과절망’속에빠졌던일본인부부를떠올린이유는, 방문해온일본수상,그리고연이은일본사절단에게북한이내준것이 –딸의사진뿐만아니라–,딸의남편이보관하고있었다는딸의’유골’…